쉬이 지워지는 낙서가 되고 싶다.
의도치 않게 내용을 알게 되었는데 애인의 친구들은 나를 정신병자로 여겼고. 그들은 애인에게 '정병 페티쉬' 라는 농담을 했다. 애인은 나와 싸울 때 그들에게 상담 또는 하소연을 했고... 당연하게도 걔는 가스라이터다, 걔가 만난 사람들 중에 네가 제일 똑똑할 거다, 안 먹히니까 관종짓하는 거다, 그런 말들로 애인에게 맞장구를 쳐 주고 있었다.
이딴 기억은 잊는 편이 나으니까 눌러버리고 애둘러서 나를 모르는 이들이 당신의 말만으로 날 판단하는 것이 싫다고 하니 그들을 직접 대면하는 건 어떻겠냐고 했지만 얼굴을 보면 필시 저 말들이 떠오를 테다. 속이 뒤집힐 것 같은데 죽어도 이런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의도하지 않게 내 눈에 보여버린 것이라도 그에게는 그냥, 내가 훔쳐 본 것밖에 더 되나. 가만 있어도 혹시 내 카톡을 봤냐며 경계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얼른 혀를 깨무는 게 낫겠다.
애인은 뒤섞인 기억으로 나를 혼란스럽고 당황하게 만들고는, 그 감정은 내게서 나온 것이니 혼자 처리하라고 했다. 본인은 혼란을 풀고자 최선의 답을 했고 사과했다는 것. 그럼에도 내가 그 감정을 유지했다는 게 이유였다.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나는 사과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 [김려령, 우아한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