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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원 Mar 07. 2024

요양병원으로 보내는 날

혼자 있으면 뭐든 잘할 것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2024년 2월 2일 금요일 

평택에서 내려온 두 아들과 함께 온천으로 향했다. 날씨가 추웠기에 갈아입을 옷으로 파카를 챙기고 속옷과 양말을 싸서 아들 손에 들려주고 남자 셋은 가족탕으로 보내고 딸과 둘은 온천탕으로 갔다. 두 시간을 정해놓고 이후에 만나기로 했다.

여유롭게 씻고 사우나하고 맘 편하게 나왔더니 아들에게서 전화가 여러 통이 와있다.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주인이 없어서 쉬운 음료를 주문해서 먹었다고 하는데 남편은 입에 맞지 않은지 마시지 않았다. 아까워서 내가 마시는데 이런 대추차였다. 입맛이 애처럼 바뀌었는데 당연히 대추차는 안 마시지.

점심은 뭘 먹을까? 가까이 있는 닭백숙은 먹지 않겠다고 해서 미리 전화해서 예악해 놓고, 인동에 있는 한정식집으로 갔다. 도착하니 바로 먹을 수 있었다.

마주 보고 앉아 있으니 오늘이면 요양병원으로 가는구나! 생각하니 맘이 아팠다.

차려진 한상을 맛있게 먹어주니 다행이었다.

아들도 아빠랑 마지막으로 나온 외출이다 보니 같이 사진을 찍는다. 걷기 힘들어해서 차를 타고 입구로 내려와서 태우고는 미래로 병원으로 갔다.

진료의뢰서를 떼 오라고 하기에 금요일에 전화해 보고 담당 선생님 계신 월요일에 오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월요일을 선택한 것이다. 선생님께서 설은 지내고 보내지라고 하며 고생 많았다며 건강하게 잘 사시라고 인사말을 건넨다. 너무 지치고 밤마다 힘들어서 단 하루도 더 지체하고 싶지 않았기에 진료확인서를 사진 찍어 요양병원에 전송해 주고 집에 도착해서 엠블런스 오기를 기다렸다. 

시댁식구들에게 알리지 않아 맘이 찜찜했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 엠블런스는 도착했다.

남편은 타지 않으려고 한다.

작은 아들과 내가 먼저 타고 들어오라고 한참을 실랑이를 했다. 억지로 태우고 가는데 맘이 아파서 등뒤에서 토닥여줬다.

그런데 너무 불안해하고 아들이 말을 시켜도 멍하니 덥다는 말만 했다.

40여분 이상을 달리는데 가는 동안 너무 길었다.

도착하니 시골의 나지막한 병원이 눈에 들어오고 남편은 내리지 않으려고 한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들이 휠체어를 가지고 와서 타라고 하니 불안해하며 억지로 타고 검사를 진행했다.

엑스레이 찍고, 혈액검사 하는 등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내내 불안했다. 소리 지르고 힘들게 할까 봐.

둘째 아들이 같이 다니며 아빠를 돌봐주고, 난 입원 서류 작성하였다.

시간이 지나 검사 마치고 입원실로 들어가는 걸 보니 짠했다.

이사님이 걱정 말라며 위로해 주었고, 한 달이 지나야 면회가 가능하다고 그때 연락하고 오라고 하였고, 간식비는 넣어주면 먹고 싶은 거 사 준다고 해서 알겠다고 하며 요양병원을 뒤로하고 나오는데 눈물이 흘러 앞을 가렸다. 아들과 딸은 이제 맘 편하게 지내라고 하는데 오히려 더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 좋아하던 이프랜드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정리를 시작했다. 나의 비밀번호 수첩이 없다. 온 집안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수시로 옆구리에 끼고 다니더니 도대체 어디에 뒀단 말인가 ㅠㅠ

쓸만한 거는 당근에 싸게 내놓거나 무료 나눔 하고 옷을 산다는 명함을 보고 전화를 했더니 별 걸 다 산다고 해서 정리를 해서 가져가라고 했다. 옷만 가져갔는데 64킬로 24,000원을 받았다. 몇 해를 두고 입지 않는 정장이며 깨끗한 옷을 정리했다. 한 벌에 당근에 올리면 몇천 원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귀찮아져서 그냥 다 줘버렸다.

다른 유리그릇이나 플라스틱도 받는다고 하기에 안 쓰고 쟁여둔 접시나 그릇, 컵 등 모든 걸 정리해서 내놨다. 차에 다 못 실어서 설 지나고 온다며 갔다. 

설에 시댁식구들 마주치기 싫었기에 되기 전에 딸과 아들 집으로 피신했다. 다음날 동서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디에 있냐고 평택으로 왔다고 하니 남편이 잘 계시냐고 묻는데 거짓말을 하지 못해서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고 하니 힘들었는데 잘했다고 한다. 시머어니께는 잘 말해 보겠다고 한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언젠가 신부님께서 강론시간에 다시 10년으로 돌아간다면 하던 말씀이 생각나서 아들한테 이야기하니 넷플릭스에 볼 수 있다고 한다. 켜 달라고 하고는 1회부터 12회까지 홀딱 밤을 새우며 다 보았다. 10년 전으로 되돌아가면 난 다시 뭘 할 수 있을까? 완전 몰입이 되어서ㅠㅠ 아침이 되니 작은 아들이 놀다가 들어온다. 설날 아침인데 떡국은 끓여 먹어야겠기에 넣을 것이 없어 라면 수프를 넣고 끓여 줬다. 명절연휴 끝날 때까지 오래 있으려고 갔는데 이틀을 자고 나니 집으로 가자고 딸이 졸랐다. 집으로 오니 또 눈에 보이는 것이 있어 정리 정리 또 정리 구석구석 오줌자국이며 닦아내고, 이불 세탁하고, 화장실 거울에 붙여둔 것 떼내고 벽이며 문에 남은 흔적들을 보며 또 눈물짓고. 

뒤치다꺼리 하던 남편만 없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모든 게 손에 잡히질 않았다.

사람 만나는 것도 싫고 나가기 싫어서 성당에도 주일 외에는 나가질 않았다.

뭘 하고 살지?

남편 연금과 가족요양비로 살았는데 막막하기만 했다.

병원비에 간식비까지 내고 매달 부족한 걸 뭐로 막을 수 있을지......

난 운전하는 걸 좋아하니까 병원동행서비스 할 수 있는 자격과정을 신청했다.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해야 될 것 같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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