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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Jan 31. 2023

(영화) 김윤석의 미성년

원숙한 비겁함과 얄팍한 순수함

부모의 불륜을 자식들이 수습해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불륜이라면 보통 치명적인 파멸이나 삶의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격정, 해질녘 늪보다도 더 질척질척한 드라마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함박눈이 내리는 방학 때의 중학교 교정 같다. 지평선에 본시 주택들도 있고 먼 데 빌딩 그림자도 높고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어린아이들 소리도 나고 확성기를 매단 트럭이 돌아다니고 모퉁이 돌면 있는 번화가에서는 상가마다 유행가요가 울려퍼지기도 하는 동네인데 굵은 눈발이 뿌린다고 갑자기 있던 것들이 모두 가려서 사라지는 고요한 세계다. 여기서는 아무도 눈물바람을 일으키거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울분을 토해내지 않는다.


현실은 그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김윤석이 사람의 마음을 잘 들여다 보았지 싶다. 현실에서, 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관계나 재산이나 상태가 어느 순간 사실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을 만큼 불안정했음을 깨달으면 사람은, 무척 조심스러워지곤 한다. 아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남은 부분이라도 그러쥐고 차근차근 살을 붙여나가며 깨달음을 얻기 이전의 근사값으로 돌아가고 싶으니까. 이미 온전함을 잃었지만 이 빠진 몫이라도 내 손에 들고 있는 게 낫지 변기에 넣고 내려버리는 것이 이 험한 세상 공짜란 아무 것도 없는 인생에서 가당키나 한가…. 보통 울고 소리치며 진흙탕에 뒹굴 수 있는 사람은 대단히 용기 있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이미 끝을 받아놓은 사람이다. 그러니 참고 사는 사람더러 비겁하달 것도 없다.


제목은 영화 내용을 굉장히 잘 반영하고 있다. 제목이 관객들로 하여금 함박눈 내리는 방학 교정이 아니라 들불이나 늪자락을 떠올리게 만드는 일이야 영화보단 사람들 탓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성년자들이다. 아직 온전한 제것이 없으므로 아무리 비겁해지려고 해도 비겁해질 수조차 없는 그 나이대만의 힘이 있다. 이 힘을 영화의 알맹이로 잡으니 어른들의 비겁함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김윤석의 시선에 깊이가 있다는 것은, 그렇다고 아이들 편을 들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왜냐면 어른들의 비겁함에는 깊이가 있고 아이들의 힘은 얄팍하기 그지 없기 때문이다. 원숙한 비겁과 고작 몇 해면 변하지 않고는 못 배길 순수함이 교차하는 그 부분에 눈이 내린다. 시종일관 내가 저라면 분명 그리했겠지 싶어서 그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거기에 내도록 함박눈이 내리는 것이다. 그런 현장에 서서는 누구든 목소리를 높여 한 쪽 편을 들 수가 없다. 먹먹하고 고요해진다.


누구 편을 들 수 없어진다는 것이 책임소재를 지워도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분명히 잘못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만 산다는 게, 법정에서처럼 잘잘못을 가려내는 일만은 못 되어서 그렇다. 불륜의 어려움도 거기에 있다. 서로 사랑한 적이 없다면, 생계로 얽혀 있지 않다면, 눈동자 같은 자식새끼가 사이에 없다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잘못한 연놈은 배상을 하고 피해자는 침을 뱉고 돌아서서 원풀이를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꽤 불의하고 구조는 불합리하고 인간은 그 사이에 끼어 있고 서로 사랑을 하고 먹고 사는 일이 달려 있고 내가 책임져야 할 자식새끼가 벌써 저도 사람 된 노릇을 한답시고 머리가 굵어졌고…. 


그래서 그 지점에서 자꾸 눈을 내리는지도 모르겠다. 눈일랑 허물을 다 덮어주는 것 같아도 곧 녹아서 원래 허물의 배로 추저분하게 보이게도 한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드는 순간들 아닌가. 그래서 이 영화는 사람 노릇 못하는 어른들이 사람 노릇을 해보려고 기를 쓰거나 도망을 가거나 사람도 아니거나 아직 사람 노릇을 못하게 되는 사정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힘껏 사람 노릇을 하는 시간 위에 눈이 내리는 영화다. 


성년이 된지도 십이 년이 훌쩍 지나가고 있지만 내 손에 잃어버릴 수 있는 것들이 들어온지는 고작 삼사 년 정도다. 아직은 미성년자에게 더 이입이 되는데, 그래도 수 발자국 비겁함 쪽에 가 있는, 그리고 앞으로 완전히 옮겨갈 나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관객들도 비슷했지 싶다. 여운이 너무 길어서인지 크레딧 올라가는데 아무도 일어날 생각을 못 하더라고.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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