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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Jun 19. 2023

(어피티 북클럽) 6월의 책 독후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센델

어피티 북클럽 6월의 도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에 대하여 어피티가 마련한 독후감 질문 리스트와 답을 공유합니다. 1~4번까지는 사전에 만들어둔 질문이고 5번은 혼자 덧붙여본 건데요, 답하면서 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건 두 배 쯤 즐겁기 때문에 기대를 크게 하고 있답니다.


1.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거래되는 사례를 관찰하거나 경험한 적이 있나요? 그러한 모습을 통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1997년 여름이었어요. 국민학교 1학년이었는데(바로 다음 해부터 초등학교로 바뀌었어요) 어느날 담임선생님이 교실에서 제 책상을 복도로 빼고 교단 앞에 무릎 꿇린 후 바닥에 엎드려 수업을 듣도록 하시더라고요. 저는 고작 여덟 살이라 깊이 있는 추론은 할 수 없었고, 내가 뭔가 잘못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제 자리는 없었어요. 정말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내내 별 생각은 없었고요, 엄마한테 말씀 드릴 생각도 안 했는데 어느날 엄마가 아시더라고요. 그 다음날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셨고, 그러고 나니까 다시 자리가 생겼어요. 


그날 학교 일과를 마친 후 선생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어머님이 그간 너를 맡겨두고 한 번도 안 찾아오셔서 아이 교육에 관심이 없으신가 했는데 어제 방문하셔서 말씀을 많이 나눴다. 오해해서 죄송하다고 말씀 전해라.’ 그러시더라고요. 가서 곧이곧대로 전했는데 엄마가 촌지 주셨대요. 어린 나이였지만 우리 담임 선생님은 돈으로 사랑을 사고 파는 교육자구나 싶었네요. 당시 정년퇴임을 얼마 앞두지 않은 분이셔서 옛날 분이시라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긴 했어요. 도대체 어떤 사건과 환경이 저 분을 저런 노인으로 늙게 했을까,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선생님들도 그럴까, 바닥에서 공부하면 딴짓하기 편한데 돈 아깝다 같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해 학교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배고플 때 교무실에 그 선생님 찾아가서 선생님 작년에 우리 엄마가 준 돈으로 짜장면 사달라고 해서 짜장면 얻어먹었어요. 저는 특이한 일이 있으면 ‘이거 진짜 먹어주는 이야깃거리다’ 하면서 즐거워하는 편이라 그냥 넘겼는데 나중에 커서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촌지 때문에 상처 받은 친구들이 많았더라고요.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1990년대만 해도 나이 드신 분들은 그런 관행에 익숙하셨었나 봐요. 돈으로 학생에 대한 마음과 태도를 결정하는 관행이요. 요즘 교권 침해 논란에서 우리 세대와 바로 윗세대 학부모들이 보이는 교사에 대한 불신이 여기서부터 비롯됐구나 싶었습니다.



2. 나에게 ‘돈’이란 무엇인가요? 내가 생각하는 ‘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화폐로서의) 돈‘을 포기했던 경험이 있다면 함께 소개해 주세요.


2010년이었던가, 2011년이었던가. 이건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아요. 당시 유명 정치인의 자서전을 대필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지금은 대필작가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20대 초중반이고 직업세계를 잘 몰라서 자기 이야기는 자신이 쓰는 것, 남이 써주는 건 기만이라고 생각하던 때였어요. 공식적인 통로로 요청받은 것도 아니었고, 이런 식으로 써달라고 제게 준 자료라는 게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라서 대학생으로서는 꽤 큰 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했습니다. 


남한테 받는 돈은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정직한 노동의 대가 외에는 다 수상한 거잖아요. 남을 속인 대가로 받는 돈은 두고두고 제 발목을 잡을 거라고 여겼어요. 그런데 단칼에 거절하는 멋진 모습은 보이지 못했고요, 일단 써보겠다고 하고 대충 아무 말이나 한 다음 써봤는데 안돼서 못하겠어요 이러고 마무리했답니다. 제가 지키고 싶었던 건 돈의 가치, 그리고 제 노동의 가치 둘 다였어요. 돈은 교환권 같은 건데, 교환 대상의 가치와 늘 붙어다니지 그 자체로 가치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3. 나에게 ‘도덕’이란 무엇인가요? 내가 생각하는 ‘도덕’을 지키기 위해, 내가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이나 기회를 포기했던 경험이 있다면 함께 소개해 주세요.


하나. 나의 이익 때문에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지는 말자. 둘. 요행은 우연이니까 한 번을 넘기면 반드시 걸린다, 걸리면 혼날 일은 혼날 각오를 하고 하든가 말든가 하자. 그게 제 도덕의 정의예요. 사실 제가 썩 도덕적인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얽힌 사람이 없는 부분에서는 굉장히 개방적이거든요. 이를테면 길거리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 빤스만 입고 달려가고 있다…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사정이죠 뭐. 그 외에는 2번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갈음할게요. 



4. 도덕적 행동과 돈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일까요? 도덕적 행동과 돈의 관계를 이상적으로 지켜가고 있는 사람, 기업이 있나요? 있다면, 어떤 이유에서 이상적이라고 판단했나요?


2번에서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돈은 교환권이라서 교환기능에 대한 가치 이상도 이하도 없다고 생각해요. 도덕과 무언가 대립한다면 돈이 아니라 돈이라는 교환권을 최대한 많이 쟁이고자 하는 욕망일 거예요. 욕망을 한없이 추구하다 보면 선을 넘는 어느 지점, 반드시 파멸하더라고요. 문제는 그 선이라는 것이 인간의 기준으로 예측하기가 너무 어렵고, 회사 같은 집단은 책임이 희석되어서 선이 하염없이 멀리 그어지고, 또 잘라낼 수 있는 꼬리인 개인 몇몇을 파멸시킨 후 계속 유지되곤 하니까요. 


세상에 완벽한 기업은 없지만(기업이라는 집단은 얼마나 욕망의 총체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유한양행 미담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매일유업도요. 상속 문제부터 시작해서 제품 라인 일부에서는 이득을 포기하는 등, 욕망을 제어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해요. 그리고 믿음이 간답니다.


5.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146p.에서는 직접 고른 선물과 돈을 비교하는 내용을 언급하는데, 그렇다면 가장 가치있는 선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손편지요. 짤막한 메모 말고, 한 바닥이 넘어가는 손편지 말이에요. 손편지를 쓰려면 편지지와 펜부터 세심하게 골라야 해요. 선물을 받는 저 또한 그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어요. 글씨체에서도 당사자를 느낄 수가 있고요. 게다가 글을 쓰려면 생각을 완벽하게 정리해야 하는데, 나를 위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오랫동안 정돈하고 매만져서 밖으로 끄집어내는 행위만한 노력과 정성을 달리 어디서 느낄 수가 있겠어요. 특히 일대일로 건네는 글은 진심이 없으면 절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나오더라도 행간에서 다 티가 나기 때문에 결코 돈으로 살 수 없고, 같은 사람이 두 번 주더라도 순간에 따라 모두 달라져서 언제나 유일무이해요.


(첫 결혼 기념일 선물로 올해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과 그 책에 대한 독후감을 토대로 손편지를 써달라고 했는데 제발 그냥 돈으로 떼우게 해달라며 기각당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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