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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Feb 20. 2024

(일기) 내가 시작하지 않은 전쟁을 매듭지은 날

2014.02.19. 성본변경 재판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0년 전

법원에 성본변경 신청서 낼 준비를 한다. 소명서를 쓰며 맨바닥에 굴렀던 지난 7년을 생각한다. 이제 막 스물일곱 살이 됐는데 거쳐간 알바랑 직장만 열 셋. 최저 시급이 삼천원 후반대였을 때는 오천원까지만 오르길 얼마나 바랐었는지. 편도 두 시간 걸려서 학교 가면서 1교시부터 4교시를 우겨듣고 점심도 먹지 못하고 오후엔 알바하러 나가고 주말엔 주말알바를 또 따로 했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다보니 같은 방 쓰는 동생이랑 싸웠다. 가방 내려놓고 앉으면 다시 일어나기 싫을 것 같아 가방을 맨 채로 설거지하곤 했다. 오 분이면 마치는 설거지 하나가 얼마나 서럽던지.


정말 누가 손가락으로 찌르면 나는 식칼이라도 들고 찌르려고 덤빌 만큼 독기 충만해서 머리 푼 미친년처럼 살아온 지난 세월들이었다. 내가 얼마나 보기 안 좋았을지 안다. 내가 상처입힌 사람들도 많다. 그 세월들에 용서를 빌고 또 용서하면서... 다시는 그 증오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련다.


사실 별로 달라진 건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가 나를 책임지기가 그 때보다 쉽잖아. 상고를 나와서 대학 진학을 결정하기까지 했던 고민들, 내 자리에서 평균적인 위치를 점하기 위해 쳤던 발버둥들.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버지 없이 사는 게 어떤 의미인지. 스물이 되자마자 나를 내가 완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게 어떤 무게였는지. 아빠가 보고싶었던 적도 있지만 여기까지 와 놓고 보니 나도 그를 내 인생에서 흔적까지 지우는 게 공평하지 싶다. 그도 그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아무런 앙금 없이 서로의 삶에서 사라지도록 하자. 나는 이제 가부장의 의자에서 일어난다.


(10년 전 일기다. 5년 전 일기를 다시 보니 5년 만에 평화를 찾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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