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빠짐없이 내게 묻는다.
오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이후로 나는 줄곧 작은 가게 이야기를 썼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경험했던 가게들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가게 이야기를 쓰는 데에는 그 어떤 구체적인 목표도, 계획도 없었다. 어느날 문득 나는 낯선 이국땅에서 만났던 단골 가게 이야기들을 써내려갔다. 쓰려고 하니 마치 오래 전부터 마음을 먹었던 양 글이 써졌다. 작은 가게들에 늘 마음이 쓰이기는 했다. 미국 중소도시의 시장 상황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내가 사는 작은 다운타운의 거리에도 작은 가게들의 폐업 표지가 붙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길을 지나며 가볍게 인사를 나누던 사이었는데 말이다.
마치 예정되어 있던 일인 것처럼 가게 이야기들을 써내려갔고 이내 책을 출간하겠다는 출판사를 만났다. 검증되지 않은 작가의 처녀작에 선뜻 손을 내밀어주는 출판사를 만난 것은 다시 돌아봐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작은 가게 마케팅에 대한 강연을 하고, 컨설팅을 하고, 재능기부를 하고, 원고를 투고하고, 두 번째 책의 출판사를 만나는 드라마틱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사람들로부터 늘 같은 질문을 받는다. “왜 작은 가게 이야기를 쓰세요?” 책을 쓰는 중간중간 그 답을 미리 생각해 보기는 했다. 하지만 정확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문득 나조차도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졌다. “나는 왜 가게 이야기를 쓰는 것일까?”
내 이력은 그럴듯해 보였다. 학계에서 십여 년을 보낸 후 세상으로 나오고 보니 사람들은 내 이력에 우선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내가 그럴듯한 이력으로 작은 가게 이야기를 쓰는 이유를 궁금해 했다. 그 이력으로 왜 작은 가게 이야기를 쓰느냐고 솔직하게 묻는 이들도 있었다. 작은 가게는 그렇게 사람들의 우선 순위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연구를 하는 학자도, 성공한 사업가도, 경영전략의 대가인 컨설턴트들도, 정부기관의 전문가들도, 유명한 작가나 공인들도 관심이 없는 분야. 그 분야가 작은 가게인 듯 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가게를 열고 가게에서 일하면서도 동시에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 이 아이러니한 존재이자 애매모호한 정체성에 나는 왜 관심을 갖는 것일까.
작은 가게들이 있는 세상이 내게는 자연스럽다. 보다 구체적이고, 다소 거창하며, 뭔가 그럴듯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자연스러워서. 나는 작은 가게가 있는 동네가, 이름도 없는 작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리가 자연스럽다. 그런 동네의 풍경에 익숙하다. 내가 자랄 적 동네는 그런 모습이었다. 집 앞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사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책이 잔뜩 들어찬 동네 서점에서 책을 보고, 학교 앞 문구점에서 친구들과 용돈으로 받은 잔돈으로 살 만한 것들을 샀다. 어머니는 동네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며 이웃 아주머니들과 동네 이야기를 나눴고 아버지는 기원에서 바둑을 두시곤 했다. 오랜만에 잡화점에 들르면 어머니는 머리핀을 하나 사주셨다. 이처럼 일상 속에 작은 가게가 있는 풍경은 그 무엇보다 자연스러웠다.
그렇다면 실제로 작은 가게는 우리 경제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던 것 만큼 경제를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까? 미국 중소기업청 (U.S. Small Business Administration)이 2019년에 발표한 자료(1)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미국 전역의 2/3에 달하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 경제 활동의 44%를 차지한다. 시장 점유율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지만 여전히 경제 전반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작은 가게, 즉 독립 소매업체와 식당이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2013년도 논문(2)에 따르면 이들은 총 판매액 1,000,000달러당 450,000달러를 창출하며 체인점에 비해 2.6배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
일반적으로 지역 내의 작은 가게들은 지역의 중산층을 강화하고, 경제적 수익이 지역 내에서 순환되게 하며, 판매 단위당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하며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급여 수준을 유지해 지역의 빈곤 위험을 낮추고, 지역 사회에 대한 지역 시민의 참여를 높이고, 더 적은 비용으로 지역의 세금 수입을 창출하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느꼈던 자연스러움은 중산층의 하나로써 느끼는 균형과 안정감은 아니었을까. 부모님과 친구의 부모님들이 느끼는 안정감은 그들의 자녀인 우리들에게도 안정감을 주었을 것이다.
구체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게 한 그 자연스러움은 작은 가게가 갖는 이처럼 다양한 역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모든 장점들이 모여 그저 자연스러움으로 느껴졌는지도. 그러나 무엇보다 내게 그들과 함께 하는 풍경이 자연스러웠던 것은 그들이 나의 소소한 이웃들이었다는 점이다. 동네를 지나면서 슈퍼 아주머니가 건네는 짧지만 친근한 인사,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미장원 아주머니의 미소, 오래도록 머물며 책을 뒤적거려도 무심한 듯 카운터에 앉아 책장을 바라보는 서점 아저씨, 그리고 슬쩍 다음 시리즈를 옆에 올려놓던 아저씨의 과묵한 친절, 500원짜리 수첩을 하나 사가도 한껏 웃어주던 학교 앞 문구점의 직원 언니.
그렇게 그들이 있는 풍경이 그리운 줄도 모르고 거리는 바뀌어갔다. 나는 어느새 그들이 내 주변에서 없어진 줄도 몰랐다. 그렇게 화려함, 편리함, 상품의 다양함들에 매혹되었고 새롭게 익숙해져갔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미국의 한 시골 도시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다시 작은 가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들과 평범한 인사를 나누고 일상을 함께 하며 나는 내가 잃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새롭게 마주한 작은 가게들과의 일상이 내게는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가게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이다. 큰 목표나 그럴듯한 계획이 없었음에도, 마치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인 것처럼 가게 이야기들을 써내려 갔다. 그랬다. 이유라면 “자연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소소한 나의 경험 속 작은 가게 이야기를 쓰고, 그들이 우리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과 경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쓰고, 그들이 마케팅에 적용할 수 있는 기법들에 대해 쓰면서 다시 작은 가게들이 나의 이웃이 되고 내가 자연스럽게 그들과의 일상을 다시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처럼, 큰 가게와 작은 가게들이 모두 함께 어울려 동네와 거리를 이루기를 바란다. “가게를 열고 장사를 하겠다” 라는 말이 또 하나의 삶의 희망을 의미하는 자연스러운 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런 긴 이유로 나는 작은 가게 이야기를 편안하게 쓰는 마케팅 에세이스트의 길을 걷는다. 그들과의 공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작은 나’는 오늘도 ‘작은 가게’에 대한 ‘작은 이야기’들을 써나간다.
<References>
1.https://advocacy.sba.gov/2019/01/30/small-businesses-generate-44-percent-of-u-s-economic-activity/
2.https://ccednet-rcdec.ca/sites/ccednet-rcdec.ca/files/ccednet/pdfs/independant_bc_small_and_the_british_colombia_economy.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