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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나영 Aug 06. 2023

'정말 맛있어요'라는 한 마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긍정적인 한 마디에서 힘을 얻는다.

올 여름은 더위를 타지 않는 내게도 숨이 막힐만큼 더웠다. 그늘 하나 없는 길을 걷던 어느 덥고 습한 날, 나는 여느 때보다 열심히 빙수집을 찾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검색하자 근방에는 수없이 많은 카페가 빙수를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중 이름이 가장 마음에 드는 가게로 방향을 잡았다.



자그마한 규모에 테이블 몇 개가 놓인 평범한 가게였다. 밝게 칠한 벽면에 인테리어 소품 몇 가지가 놓인 아담하고 깔끔한 카페는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고 포근했다. 우리는가게 주인이 틀어놓은 플레이 리스트에도 푹 빠져들었다. 그 날 이후, 이 작은 동네 카페는 우리에게 사흘이 멀다 하고 그리운 빙수집이 되었다.


무엇보다 빙수 맛이 최고였다.



갈아넣은 얼음 만큼이나 부족함 없이 한라봉이 들어있는 한라봉 빙수는 감히 전국에서 최고라고, 어디에나 자랑하고 싶어진다. 하얗고 동그랗게 갈아넣은 얼음 위에 소담하게 올려진 한라봉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한데 먹다보면 얼음 안에 숨겨진 더 푸짐한 한라봉과 향긋한 연유가 어우러진 맛은 상상만으로도 상큼하고 달콤하다. 내년 여름이 되어야 다시 한국으로 가 그 맛을 볼 수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 날, 빙수를 자리에 가져다 주시는 사장님의 미소 띤 얼굴을 보며, 나는 말했다.


"여기 빙수는 정말 최고에요. 제가 먹어 본 빙수 중 제일 맛있어요."


그 말에 상냥하고 단정한 사장님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흔들림이 느껴졌다. 약간의 머뭇거림 뒤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정말요?"

"저희가 공을 많이 들이긴 해요. 재료는 모두 제주에서 직접 구매해요."



그 말 끝에 느껴지는 성취감과 뿌듯함에서 나는, 그녀가 이런 칭찬을 거의 듣지 못했음을 확신했다. 그녀의 가게는 평점도 좋고 늘 손님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손님에게서 "맛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짧고 단순하지만, 진심이 담긴 한마디의 칭찬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지, 나는 잠시 그 의미에 생각이 머물렀다.


그러고보니 같은 경험을 작은 시골 마을의 커피숍에서도 한 적이 있었다. 시댁에 갈 때면 근처에서 장을 보고 커피를 두어 잔 사들고 가곤 했다. 작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어서 처음 깔끔한 인테리어의 그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보고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근방에는 큰 아파트 단지가 없을 뿐 아니라 직장인들이 드나들 회사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곳에 스무 평은 족히 넘어 보이는 번듯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있었다. 주변에 커피숍이 없던 탓에 그 곳에서 커피를 사기 시작한 것이 인연이 되어 수년 째 주말 단골이 되었다.


그곳의 커피는 맛있었다. 선택지가 없어 드나들기 시작한 커피숍의 커피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가 된 덕에 나는 주말마다 향하는 시댁가는 길이 기분 좋게 설레이기도 했다.



나는 문득 커피를 건네는 직원에게 말했다.


"커피가 정말 맛있어요."


직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얼굴을 붉히며 기쁜 속내를 숨기지 못하고 내게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사장님이 커피에 공을 많이 들이세요."


그녀 역시 커피가 맛있다는 칭찬을 처음 들어본 듯 했다. 커피숍에서 커피가 맛있다는 칭찬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내게 새삼스레 낯설고 의아한 일이었다. 오랜 기간 공을 들이는 일이 인정 받지 못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리 없다. 내게도 늘 공기처럼 곁을 맴도는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최고의 자리에 있는 소설가의 산문을 읽다보니, 그는 본래 천문학과에 지원하려던 전형적인 이과생이었다. 그런 그를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최고의 자리까지 이끈 것은 어느 시인의 '글을 잘 쓰니 시인이 되어보라'는 한 마디였다고 말한다.


지금은 200만 명에 가까운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유튜버 또한 단 200여 명의 구독자가 전부였던 시절, 유튜브를 포기하려던 자신을 붙잡아준 것은 첫 구독자의 '정말 재밌게 보고 있다. 앞으로도 기대한다'는 말이었다고 했다. 성공한 사람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대중의 관심과는 먼 주제인 소상공업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나 또한 첫 책을 읽고 격려의 이메일을 보내 준 첫 독자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장 큰 원동력이다.


사람들은, 또한 가게들은 모두 누군가의 칭찬의 한 마디, 감사의 한 마디가 절실히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돈도 공도 들지 않는 짧은 한 마디가, 가게들에게는 지난한 노력에 대한 보상이 될 수도, 더 정성껏 가게를 꾸려갈 원동력이 될 수도,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희망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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