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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나영 Aug 16. 2023

별이 쏟아지는 세상의 끝, 살롱드북

그리운, 그 밤의 단골 서점 '살롱드북'

날고, 지상에 잠시 머물다 또 날고, 이젠 버스로 한참을 달려서야 내 삶의 터전으로 돌아왔다. 24시간을 꼬박 날고, 걷고, 달리고를 반복해야 올 수 있는 이 먼 이국땅에서 이제야 느긋해진다. 시차 적응의 주간을 지나고 제법 편안해진 어느 금요일 밤, 큰아이가 어울리지 않게 칭얼댄다. 


"아, 살롱드북 가고 싶어요."



가족 중 가장 미국 생활을 즐기는 큰아이는 미국 국경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화색이 돌았다. 어릴 때부터 미국의 한가한 시골에서 자라 순박하고 웃음 많은 아이들은 우리말보다 영어가 편할 뿐 아니라 다정한 미국 시골 사람들에게 익숙한 아이들이다. 특히 큰아이는 방학 동안 잊고 있던 친구들에게 문자하고 전화를 하느라 로밍이 갓 풀린 전화기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그런 큰아이가 서울의 단골 동네 서점 '살롱드북'에 가고 싶어 했다. 금요일 밤이었기 때문이다. 별이 없는 서울 하늘 아래, 유일하게 우리를 향해 쏟아지는 별무리를 느끼게 해 준 금요일 밤의 살롱드북.


금요일 밤이었기 때문이다


매주 금요일이면 학원 수업이 끝난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단골 서점, 살롱드북으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서울 독립서점 지도를 펼쳐 들고 집에서 가까운 곳 중 하나를 골라 찾아갔었다. 그곳이 유명한 독립서점인 것은 이후에 알았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 저녁, 열심히 일주일을 보낸 지친 몸을 이끌고 우리는 늘 그곳을 찾았다. 


문을 열면 카운터 뒤에서 음료를 만들던 아름다운 사장님의 과하게 친절하지도, 과하게 덤덤하지도 않은 "안녕하세요"가 느리게 흘러 닿는다. 독특하고 오묘한 그녀의 목소리는 녹초가 된 우리를 깨우는 듯했다. 


와야 할 곳으로 온 느낌...
그녀가 우리에게 건네는 '안녕하세요'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그리고는 익히 잘 알고 있다는 듯 학원에서의 안부를 묻고,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고 사는 이야기를 천천히, 느릿느릿, 고요하게 묻는다. 음료를 정성껏 만들고, 책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어른의 시선도 아닌, 아이의 시선도 아닌 적당히 철학적인 시선으로 책에 대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고등학생이 된 큰아이가 살롱드북 사장님과의 대화에 푹 빠져드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지적인 대화의 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로 유난히 반짝거리는 책들. 


카운터에 산더미같이 쌓인 책들, 서가에 꽂힌 책들, 구석구석 무심하게 놓아둔 책들은 모두 반짝거렸다. 대체 왜, 살롱드북의 어둑어둑하고 잔잔한 조명 속 책들은 그처럼 반짝거렸을까. 그 좁은 공간에 놓인 테이블은 왜 그처럼 아늑하면서도 하염없이 널찍해 보였을까. 책을 읽는 두엇의 손님들은 왜 그리 지적으로 보였을까. 마법의 공간처럼, 살롱드북은 책과 사람이 모두 반짝거리는 공간이었다. 살롱드북의 공간에는 별처럼 쏟아져 내리는 책들이 있고, 별처럼 반짝이는 사장님의 책 이야기가 있고, 귀 기울여 들으며 책을 고르는 독자이자 손님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있었다. 살롱드북은 그렇게 반짝이는 공간이었다. 


살롱드북의 공간에는 별처럼 쏟아져 내리는 책들이 있고, 
별처럼 반짝이는 사장님의 책 이야기가 있고,
귀 기울여 들으며 책을 고르는 독자이자 손님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있었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대형 할인마트를 가면 가격도 더 싸고 쇼핑 환경도 더 좋은데 작은 가게에서 쇼핑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특별한 이득이 있겠느냐고.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긴 이야기가 필요하겠지만 나는 그저 한마디로 답했다. 


작은 가게는 '공간'이라서 중요해요. 

작은 가게는 동네 사람들을 연결하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다. 그 자체로 커뮤니티이고 모임이다. 우리에게 별이 쏟아지는 금요일 밤을 선사하던 살롱드북은, 작은 가게는 '비즈니스'가 아닌 '공간'임을 알려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곳이었다. 가게에는 '공간'과 '사람들'과 '이야기'가 있어야 함을 살롱드북은 여실히 보여주었다. 



금요일 밤이면, 여전히 우리에게는 별빛 가득한 살롱드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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