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양처를 꿈꿨던 나는 왜 워킹맘이 되었나
육아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단연코 '자유의 박탈'과, 내 의지로 조정이 불가능하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루틴 되는 육체노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와 연동되면서
가장 크리티컬 한 한 가지가 더 있는데 그건 바로 감정 문제다.
“나의 바닥을 마주하는 일
영아일 때, 그리고 기관을 다니기 전에는
자유의 박탈, 루틴 되는 육체노동과 의지로는 전혀 조절이 되지 않고 어떤 타협이나 대화가 불가능한 대상과 씨름하면서 가장 힘든 정신적인 문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밑바닥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어느 시점이 되면 아이가 기저귀를 떼면서 변기에서 소변을 누는 법을 가르치고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지가 젖고, 실수를 한다.
우리는 다그치거나 혼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무엇보다 이건 "당연한"것이고, 아이가 잘못한 일이 아니다.
이런 범주에서 보면, 아이가 저지레 하거나 끊임없이 집을 어지럽히는 것도
모두가 '당연함'의 범주이며 '탐색'의 과정이며,
공공장소가 아닌 집안에서 이런 행동들을 가지고 야단치거나 화를 내선 안된다는 것을
대부분의 엄마들은 알고 있다.
(그저 함께 정리하면서 아이에게 하나씩 생활 규칙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참았다. 나 또한 꾹꾹 누르며, 내 한계가 올 때까지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임계치에 다다르면 폭발을 하곤 했다.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 아니었음에도 이미 참을 만큼 참았기 때문에 터지고 만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폭발을 하고 나면 다시금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내 밑바닥을 경험한 그 느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이전에 그래도 꽤 괜찮은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가장 나약한 존재에게 감정을 퍼붓고 난 후에 오는 자괴감은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이런 나의 밑바닥과 마주치는 게 힘들었고,
이 경험이 내가 둘째를 낳는 것을 망설이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다.
아이가 기관에 다니면서 부딪힌 또 하나의 감정 문제는 '불안함'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몇 개월을 보내고, 시간을 그냥 흘러 보내지 않게 하고
여기저기 아픈 몸, 저질 체력을 위해 미루고 미뤄왔던 PT를 주 4회 했을 때는 그나마 나았다.
그러다 이사와 코로나가 함께 터지고, 운동도 친구들과 만나는 것조차도 할 수 없던 나는
극강의 불안함을 경험했다. 생활리듬은 무너졌고 한번 시작한 넷플릭스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나의 잉여스러움을 견딜 수 없던 날을 보내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쩌면 나의 평생이 이러면 어떡하지?라는 물음이었고,
지금이 내가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극강의 불안함과 위기감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경력단절을 끝내고 복귀한 후
나는 정말 육아와 집안일이 안 맞는 사람이었구나 라는 걸 느꼈다.
66 사이즈가 55 사이즈를 억지로 껴입을 수는 있지만 주기적인 소화불량을 경험하는 거 같다고 해야 하나.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주로 참다가 터지곤 했던 루틴 되는 식사 먹이기(보통 한 시간 정도 걸린다 OMG!)와 도망가는 아이를 붙들고 씻기는 일을 이모님 외주를 주고 나니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사실 저녁이나 주말에도 피곤해서 역할놀이를 잘해주지는 못하지만 퇴근하고 마주친 아이는 너무 예쁘다. 그저 만지고 안고 뽀뽀하면서 놀려고 도망가는 아이를 붙들고 오늘 하루를 물어보는 역할을 주로 하게 됐고 (교육이라는 또 다른 고민과 마주한 것이 함정) 많은 육아 루틴 업무에서 벗어나다 보니 오히려 정서적인 지지는 더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라는 나의 위안일지도.)
그리고 일을 하며, 특히 외부 미팅이 많은 나는
그 과정에서도 오갈 데 없던 나의 에너지를 많이 쏟아내게 되는 것 같다.
나의 밑바닥과 마주하던 자괴감이든, 내가 배부른 돼지가 된 것 같은 잉여로움이든
정신적 불안함의 끝을 맛본 후에 다시 찾은 내 일은 더없이 소중했고,
이전과는 마음가짐이 달랐던 것 같다.
어렵게 다시 잡은 기회에
마치 그간의 억눌렸던 에너지를 뿜어내기라도 하듯
혹은 나의 존재를 증명이라고 하고 싶었는지
정말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성과를 내고 싶었고, 성과를 내면서 받은
칭찬, 인정, 보상들이 사실 너무 달콤했다.
'한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동반하는 데에 비해
즉각적인 성취나 보상은 너무 멀리 있는 '육아'와는 달랐기에.
그래서, 육체노동에 극복하기 힘든 정신적 문제가 더해져
단연코 일을 하는 것보다 육아가 훨씬 힘든 일이었던 내게 전업주부는 존경의 대상이며,
그 와중에 부업이나 공부, 재테크까지 하는 주부는
경외의 대상이며,
남편의 말처럼 아이 둘을 훌륭하게 키워내는 엄마는
사회적으로 매우 성공한 사람과 견주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혹시, 나처럼
육아를 하며
해결되지 않는 정신적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면
그냥 뭐 더 잃을 게 있나 하는 마음으로 취업의 문을 두드려봐도 어떨지.
세상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는 거니까.
그리고 부딪혀보지 않으면 내가 해낼 수 있을지,
혹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를 수 있으니까.
나 또한 4년여의 공백을 깨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두렵고 무서웠기에.
결국 불안함이 두려움보다 더 커진 지점에서야 나 또한 그 두려움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
오롯이 아이를 키우고 집'안'의 일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가?
당신은 누구보다 큰 인내와 보이지 않는 성취를 만들어내는 위대한 사람일 것이다.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가?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양쪽을 저글링 해가며 일도 육아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위대한 사람일 것이다.
어느 쪽이 되었든 무거운 책임과 나의 바닥과 한계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모든 엄마들을 비로소 이해하고 응원하게 된 그때쯤, 그렇게 나는 워킹맘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