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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첨지 Mar 03. 2022

그대가 원하는 대로

두통

평범한 사람들도 살다 보면 여러 종류의 두통을 경험해보기 마련. 

차디찬 팥빙수를 먹고 나서 느끼는 심한 두통,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생기는 통증 등. 

이런 통증을 가지고 병원에 오지는 않는다. 

아침에 거울을 보고 어? 코에 코딱지가 있었네 하고 파버리고 시원스레 숨을 쉬며 이내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는 그런 종류의 통증.


한 편으로 시도 때도 없이 두통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어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많다. 신경과 교수들이 두통 전공하면 니 클리닉은 문전성시할 거라고 강조를 하더라. 쉽지 않을 거라는 사족이 붙기는 했지만...


그렇다. 

신경과 의사로 생활하면서 많이 볼 수 있지만 베테랑들도 까다로워하는 바로 만성 두통 환자들이다. 

기본적으로 수년의 통증을 가지고 살아간 세월에 약이란 약, 민간요법들을 시도를 한지라 치료하기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다년간의 경험을 가지고 노련미가 넘치는 신경과 의사조차 리스트에서 이 환자들 이름을 보게 되면 얼굴이 굳고 무언가를 상상하는 듯한 얼굴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기합을 다진다. 


그날도 24시간 당직이었다. 

토요일 아침 7시부터 시작해서 일요일 아침 7시에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는 2년 차 신경과 전공의의 관례이자 살아남아야 하는 혈투! 전공의는 커다란 병원에 밤새 혼자 남아 안이든 밖에서든 오는 모든 신경과 관련 환자들을 케어한다. 미국 병원은 전부 1인실로 되어있어서 병원의 크기가 한국 병원보다 훨씬 크다. 그 거대한 900 병상의 건물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군분투! 


초창기의 흥분이 많이 사그러 들고 24시간 당직도 익숙해져 가던 그날. 

새벽 길거리에서 제정신이 아닌 채로 발견된 30대 남성의 얼굴 반쪽에 마비가 있어 급하게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수소문 끝에 와이프가 전화로 저 양반은 어릴 적 다친 적이 있어 술 많이 먹으면 저렇다 라는 확인을 하고 맥이 빠져 있었던 때였다. 


응급실 한편에 앉아있던 인턴 한 명이 쭈뼜이며 다가왔다. 


"닥터 임,  한 명 더 봐주셨으면 하는 환자가 있는데요..". 

'저거 이름이 브래드였던가 뭐였지..'. 

"물론이죠! 누굽니까? 몇 번방이고 뭔 일이에요?". 


2년 차 초반의 내가 아니다. 

넓은 도량으로 기쁘게 응대해준다. 

초창기 환자가 밀려들 때면 짜증이 솟구치던 적이 많았다

응급실 교수한테도 적당히 매너 하자고 타박을 주자 교수가 미안하다며 환자 좀 봐달라 나를 달랜 적도 있다. 

여하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난 베테랑이닷! 


"아 예 선생님. 응급실 18번 방에 조지나 36세 여성이고요. 두통으로 응급실 어제 내원했었는데 약 받고 퇴원했다가 다시 심해져서 오셨습니다."


?!. 익숙한 그 이름 조, 지, 나. 안 그래도 동아시아인으로의 작고 날카로운 나의 눈이 더욱 예리해져 마치 응급실 인턴 목의 장식일 뿐인 청진기를 잘라버릴 것 같았다. 흠칫, 둔한 미국 인턴도 눈치를 챘는지 급히 다른 환자를 보는 척을 한다. 


신경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frequent flyer, 한국말로 단골손님이라 불리는 두통 환자 이름들이 암암리에 전해진다. 교수가 전공의 었을 때부터 존재했던 전설들.. 특히 이 조지나라는 환자는 기이한 풍모로 잘 알려져 있었다. 


상식적으로 두통으로 응급실에 간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일반인은 그럴 일이 거의 없다. 

두통이 그야말로 '특별한 이상이 없이 발생하는 머리의 통증, 보통은 편두통' 인지 아니면 '다른 의학적 이유가 있어서 발생한 머리의 통증' 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CT나 MRI도 찍는 등 검사를 거친다. 하지만 우리 '단골' 분들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검사는 사치임을 서로 잘 알고 있다. 

이에 걸맞은 예우를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조지나 씨는 분위기가 있었다. 

강렬한 첫 만남도 아니었고 금방 기억에 없어져 버릴 만한 조우 역시 아니었다. 응급실에서 입원 시 병이 중한지에 따라 병실이 배정이 된다. 중환자실이 될 수도 있고 증상이 경미하면 observation unit, 관찰 병동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조지나 씨를 관찰 병동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는 콜로라도의 스키장에서나 쓸 법한 갈색으로 짙게 코팅이 된 스키 고글을 쓰고 있었다. 어둡고 작은 관찰 병동 32번 방영양 상태가 좋다 못해 조금은 소홀히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신체에 식자층이 가진 종종 풍기는 우수가 담겨있는 어딘가 슬퍼있는 얼굴. 통증으로 인해 찡그린 표정과 새벽의 어두운 병실이 조화를 이루었다. 


옆에는 해리포터에 나온 엄브릿지 교수와 비슷하게 생긴 아담한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조지나 씨와 콤비를 이루어 한 층 풍요로운 명성을 만드는 분임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당시 위에서 상기한 '명성에 걸맞은 의전'에는 익숙지 않았던 뜨내기였기에 정공법을 구사하고 말았다. 


"예에 안녕하세요 신경과 닥터 임입니다. 두통이 있으시다고요?". 


이 말을 내뱉고 직관적 위험을 느꼈다. 마치 유치원을 갓 졸업하고 초등학교에서 무서운 6학년 형들을 만났을 때의 존재감, 향후 수분 간의 운명이 내 손에 달려있지 않다는 걸 처음 깨달은 순간 같이. 


엄브릿지를 닮은 부인이 쾌활하지만 조금 신경질적인 중부 악센트로 말했다. 


"처음 뵙네요. 이 애가 두통이 원체 심한 아이라서요." 


엄브릿지를 닮은 부인은 자세하게 두통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십 대 후반부터 발병, 밝은 빛에 고통을 느끼며 어지러움증과 구역질을 동반. 굉장히 똑똑한 아이라 대학에서 물리치료 공부를 하고 대학원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두통으로 인해 사회생활을 아예 못함. 약을 시도해보고 많은 신경과 의사들을 봐왔지만 한 번씩 이렇게 심한 통증이 온다. 지금 통증은 최대로 심한 걸 10으로 했을 때 9나 10 정도 된다. 깔끔히 정리된 노트를 읽는 것 같이 군더더기 없는 설명이었다. 


조지나 씨는 짧은 대답과 고갯 짓으로 우아하게 어머니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해주고 눈을 감았다. 정리를 하고 병실을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그럼 누베인(마약성 진통제)을 바로 맞을 수 있을까요?". 


미국의 환자들은 한국 환자들에 비해 약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있다. 특히 자신이 복용하거나 반응하는 약물은. 


신출내기 전공의는 고민에 빠졌다. 두통 환자에 있어서 첫 번째 원칙: 마약성 진통제는 쓰지 않는다. 통증 환자에 있어서 9나 10은 매우 심한 통증이고 무언가 주어야 한다. 이 환자는 9나 10 정도 통증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새벽 3시에 두통에 무슨 약을 줄지 교수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며 바보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


중독자처럼 보이지 않는 절제된 감각과 깔끔한 두통에 대한 묘사, VIP와 같은 호방한 기상에 모르게 오케이를 해버렸다. 다음날 교수님께 다시는 두통에 마약성 진통제를 주지 않는다는 레슨을 제대로 배우고 말았지만. 아마 두통에 마약성 진통제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초짜라는 걸 알고 시도를 해봤던 것 같다.


우아한 조지나 씨와 엄브릿지 닮은 부인과의 조우는 몇 번이나 이어졌고 나는 명성에 걸맞은 의전을 맞추어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마주치면 자잘한 말없이 눈빛 하나로도 의견이 일치했고 고갯짓으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손짓 하나로 약이 골라졌다. 약을 처방하고 받고 두통으로부터 해방되어라. 

(당연히 해방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쉽게 될 거였으면.) 


두 모녀는 나를 예우를 갖추어 대했다. 비록 신출내기 시절 그녀들에게 한 번 당해버리고 말았지만 충분히 이해한다. 통증이 얼마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그대들만 알겠지.


교수님께 누베인을 주었다고 하자 선배 전공의들이 잠시 멈칫하더니 서로를 바라보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내게 말해주었다. 


"Dr. Lim! Welcome to Neurology!"


전 세계의 두통환자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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