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통증 시장 체험기; 디스크, 척추, 비수술, 시술, 실비, 도수
목 뒤에서 어깻죽지로 욱신욱신 통증이 작열한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진통제를 종류 별로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평소 일하는 자세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교 시절부터 자세는 늘 신경썼고 좋은 자세의 귀감이 되어왔다. 역시 최근에 늘어난 TV 시청 때문인가. 와이프가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혼자 집에 있기가 적적해서 75 인치 TV를 사온 것이 화근이었다. 좋지 않은 자세로 외로움을 달래려 늘 TV 앞에 있다보니 무리가 왔다. 통증이 너무 심해 응급실에서 스테로이드와 국소마취제 성분의 주사를 좀 맞았지만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진정되지 않는 나의 근육과 신경들을 부여 잡고 다시 응급실을 찾았다. 그렇게 찍은 경추 MRI에서는 선명한 디스크 탈출의 소견이 보였다. 이미지상으로는 매우 심했다! 사진을 본 동료들도 깜짝 놀라며 다들 이런건 처음 봤다는 수준.
재빠르게 지인 찬스를 이용하여 (미국이야 말로 지인찬스가 매우 중요하다! 지인이 없으면 예약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 신경외과 외래를 빠르게 겟또하여 Dr. S를 볼 수 있었다. 결론은 스테로이드 먹어 보면서 2주 정도 지켜보고 그 다음에 수술할지 얘기해보자 였다. 과연 미국스러운 교과서적인 접근 방법, 맘에 들어! 근데 당장 아픈건 어떻게 할꺼야. 그리고 뭔가 근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어서 걱정이 많이 됐다. 한국에서 찾아보니까 여러가지 비수술치료 방법이 많이 있더라. 너브 블락, 신경성형술, 수핵감압술, 고주파 열 치료술 등등. 2주 있다가 만약에 수술을 받는 대도 미국에서의 수술 비용+이후 돌봐줄 사람이 없다 라는 두려움으로 급하게 한국행을 결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도착해 격리를 마치고 그 동안 알아둔 병원 투어를 시작했다. 의사로서의 지식+인맥으로 잘 알려진 관련 병원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대학병원은 역시 예약하기가 어려워 초반에는 주로 로컬이라고 불리는 개인병원 위주로 돌아다녔다.
첫번째로 방문한 곳은 강남의 O 마취통증의학과, EBS 명의 프로그램에 다수 출연한 대학병원 교수 출신의 명의 중에 명의! 라는 굉장한 기세의 로컬 병원이었다. 네이버 카페에서도 이름이 자주 언급되고 지인이 추천해준 곳으로 기대를 갖고 방문! 과연 명성에 맞게 강남대로 큰 빌딩에 몇 층을 차지하고 앞에는 발렛파킹 서비스가지 구비하고 있었다. 아침을 맞이하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닐 뿐 생각보다 환자는 많지 않았다. 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의자에 누워있던 할머니와 옆에서 핸드폰을 하며 기다리는 아들이 있을 뿐이었다. 로비에는 화려한 이력들을 설명해주려는 듯 EBS 명의 캡쳐샷, 미국 의사들과의 사진들 (공교롭게도 내가 인터뷰를 봤던 병원에서 연수를 받으신 듯, 시골 중에 시골인데 거기까지 가서 배워오셨군), 교수 시절 내력들이 도배되어 있었다.
의사는 둘로 초진을 보는 선생님 후 메인 '명의'가 본 진료를 보았다. 초진을 보는 선생님은 남자였지만 작고 왜소해서 얼굴을 제외한다면 초등학생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신체보다 더 눈에 들어왔던 건 뭔가 의식이 사라져버린 듯한 얼굴 표정. 감정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아 컴퓨터와 일체화가 되버린건 아닌가 하는 기이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본 게임에 들어갔을 때 더욱 당황했다.
커다란 방에는 대학병원 방식의 컴퓨터 세팅이 갖추어져 있었다. 여기서 대학병원 세팅이란 전공의나 간호사들이 대신 차팅이나 오더를 다 내릴 수 있도록 따로 키보드와 모니터가 준비된 형식이다. 바쁜 대학병원의 효율성을 위해선지 교수들의 귀차니즘을 위해선진 모르겠지만 '굳이 저렇게 까지..' 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 방 안에는 광고에서 여러번 본 사람(너무 흔해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으로 광고 전에도 낯설지 않은 얼굴)이 구부정하게 허리를 앞으로 빼고 눕다시피 해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역시나 눈을 사로 잡은 것은 왜소하다 못해 집요정 도비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듯한 자그마한 체구. 작은 부위를 파고 들어가 시술을 하시기 때문에 저렇게 몸까지 작아지려고 하셨던 것일까. 그러더니 대뜸 나를 보고 호통을 치신다.
"운동 했어 안했어!"
"예?"
"했어 안했어!"
"했죠.. 웨이트 트레이닝을 오래.."
"웨이트를 하면 디스크에 압력이 올라가 안올라가!"
".."
"시술을 해야해!"
이런 식의 대화가 5분정도 이어지고 밖에 나가서 간호사와 예약을 잡으라는 말과 함께 진료는 끝. 그야 말로 황당했다. 어디가 아픈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근력은 떨어졌는지 아무 것도 물어보지 않았고 신체 검진 역시 하지 않았다. 그야 말로 사진만 보고 자기 할 말만 하고 끝. 어이가 없었다. 명의는 묻지 않아도 만져보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건가? 내가 아는 한 그딴 건 없다. 시술 가격은 300만원. 원래 15분 만에 끝나는 시술인데 하루 입원을 해야 한단다. 여러 이유를 대지만 실제 이유는 입원을 하지 않으면 실비 보험 처리가 안되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험을 여러 로컬 병원에서 하니 통증/관절/디스크 병원들의 수입 구조가 보였다. 정형외과/신경외과/재활의학과/마취통증의학과/일반의원 등 과들은 다양하지만 방식은 모두 동일.
기본적으로 검사+비수술적 시술+도수치료에서 돈을 벌고 있다.
1. 필요 없는 검사 남발
굳이 필요 없는 X-ray, CT, MRI 등을 자주 여러번 찍는다
체온열검사? 이딴 건 왜하는거지
2. 값비싸고 불필요한 시술/수술 권유
위에 열거한 여러가지 long-term benefit에 대한 근거 미약한 시술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수술
각자 자기들의 논리와 증거들이 있어서 일반인 입장에서는 설명을 들어도 판단이 어렵다
교묘하게 실비보험으로 비용이 커버 되게 끔 세팅들이 되어있어서 '어차피 내 돈 안내고 실비로 커버가 되니 해보지 뭐' 라는 환자들을 공략한다
3. 도수 치료 권유
일회에 10만원에서 30만원까지 되는 값비싼 도수치료, 물론 환자들이 이런 비용을 내기는 부담이 막중하나 역시 실비보험이 커버 되므로 '그럼 나도 한 번 받아봐?' 라는 심리를 노린다. 기본적으로 디스크 관련 문제는 장기적으로 본인이 자세에 신경쓰고 급성 염증은 약이나 스테로이드 주사로 완화 시킬 수 있다. 이런 값비싼 도수는 받지 않아도 된다.
이후 여러 대학병원을 다녀 보니 확실히 로컬과는 접근/처방이 달랐다. 미국에 비해 의사를 보는 시간 자체가 매우 짧았고 시간도 제한되어 있어 아쉬운 부분이 컸지만 로컬보단 훨 나았다 (솔직히 신체 검진 대학병원 교수들도 엉망이었다). 적어도 대학병원은 신체 검진을 해보고 물어볼 것들을 물어봤으니. 결론은 모두 수술 할 필요는 없고 잘 쉬라는 것. 시술이나 도수에 대해 물어보니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교수님 왈 "요즘 한국 로컬 시장이 엉망이예요".
환자로 소비자가 되어 바라본 한국 통증 의료 시장은 카오스, 엉터리 그 자체. 정책이 바뀌어 실비 보험이 시술이나 도수치료를 지원하지 않게 되기 전에 한시바삐 실비 보험료를 타먹으려는 병원들과 지금 당장 큰 돈, 내 돈 안내니까 부담 없이 여기 저기서 불필요한 시술이나 도수를 받는 환자들 그러나 결국 나중엔 돌아오는 건강보험 부담.
아니 그럼 아파 죽겠는데 어쩌란 말이야. 당장 아프니 시술이든 수술이든 도수든 받아야 할 꺼 아니냐고 라고 할 수 있다. 그 와중 나는 유명한 정선근 교수라는 분의 책을 접하고 읽게 되었고 그 분 생각에 상당히 공감했다.
그 분의 이론은 이러하다.
통증의 기본 컨셉은 오래 지속된 자세의 문제로 디스크에 데미지 발생>지속적 데미지 누적>디스크 탈출>디스크 내부의 물질이 특수한 신경의 부위에 닿으면 염증 발생>통증에 민감해짐 이다.
결국 염증으로 인해 민감해진 신경에 자극이 가서 통증이 발생한다. 허리든 목디스크든 원리는 같다. 통증이 아예 없는 정상인들의 척추 MRI에서도 디스크 문제들이 보이기 때문에 결국 영상만으로는 알 수가 없고 증상과 접목 시켜 해석해야한다. 그냥 눌린 신경만으로는 통증을 유발하지 않는다. 염증이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디스크가 탈출 되었으니 수술로 제거하거나 시술로 지지 거나 하는 등의 시도들이 행해졌으나 (현재진행중) 응급적 상황들 (힘이 급속도로 떨어지며 진행하거나 소변/대변 문제 등)을 제외하고는 수술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급성 염증은 약이나 스테로이드 주사 (너브블락/신경차단술 등 으로 불리고 있음)를 통해 조절하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면 결국 터진 디스크는 자연적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이 이론에 공감했고 실천했다.
결과적으로 스테로이드 복용과 주사로 통증이 많이 괜찮아졌고 좋은 자세와 맥킨지 운동(목과 허리를 뒤로 젖혀 빠져나간 뒤쪽 디스크를 앞으로 밀어주는 스트레칭)을 수시로 해주고 있다. 힘이 빠진 팔도 조금씩 괜찮아 지고 있으며 헬스장을 다니며 스스로 재활운동 중이다.
이쯤되면 나나 아니면 한국 통증 로컬 업계, 둘 중 하나는 정말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구일까 착각하는 쪽은. 누가 와서 일침을 날려주었으면 좋겠다.
"어이 자네, 뭔가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는건 아닌가? 정신차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