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의 무게를 줄이시오

글이 어려워지는 이유들

by 현우주


[논술] 다음 단어 중 2개를 골라 관심 있는 사회적 문제와 관련지어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


병든 광장 (코로나19, 홍콩)


광장을 빼면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없다. 역사를 살펴보면 그렇다. 권력이 제 몸뚱이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날 때마다 민중을 도끼 자루 위 손을 덧대었고, 나란히 어깨를 붙인 채 권력을 해체했다. 민주주의는 아주 넓은 땅 위에 세워진 이념이다. 오늘날의 광장은 평방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중략) 광화문 집회를 보라. 양편으로 갈라져 어느 때보다 크게 민주주의를 외치는 그들의 요구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자기 편의 독재다. 맹목적인 믿음으로 뒤범벅된 여러 진영의 싸움은 그들이 딛고 선 땅을 오염시켰다. 광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오히려 광장은 제 모습을 회복할 시간을 벌었다. 우리로서는 타성에 젖은 생각들을 내려놓고, 정녕 함께 모여 부르짖는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볼 기회다. 저 신성한 광장의 이념을 만든 것은 수많은 개인들의 합이었지만, 이제는 광장이 거꾸로 우리에게 민주주의 본연의 뜻을 묻고 있다. 그것은 마침내 바이러스가 잠잠해진 뒤에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학보사에 지원할 당시 내가 제출한 필기시험 답안지의 일부다. 읽으면서 놀랐고, 브런치로 옮겨 적으면서 한 번 더 놀랐다. 이게 내가 쓴 글이라고. 어색한 표현도 있지만 주장하는 바가 명확했고, 무엇보다 패기가 실린 글이었다. 특유의 단정적인 어법으로 변화를 요구한 점도 좋았다. 내 기억으로 당시 마감기한은 하루 남짓했다. 짧은 마감기한 적절한 독선, 무지가 한데 어우러져 탄생한 용감한 글. 이제는 다시 쓰라 해도 못 쓸, 그런 글이라고 할 수 있다. 학보 활동을 하다 보면 글발이 더 날카롭게 설 줄 알았다. 아무래도 기사 형식의 글은 보다 높은 완결성을 요구하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가 돼버린 것 같다. 요새는 통 글을 안 쓴 탓인지 글발은 무뎌질 대로 무뎌졌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도 전보다 더 무거워졌다. 그러다 편집국장이나 돼서 이렇게 글을 멀리 해도 되나 싶었다. 왜 글이 어려운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남의 글을 평가하기 시작하며 작문에 대한 부담도 자라났다. 보통 학보사 회의는 써온 기사를 함께 읽고 그에 대해 피드백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크게는 전체적인 방향, 작게는 맞춤법과 표기방식까지 조목조목 따져가며 더 나은 기사가 되도록 다 같이 머리를 쥐어짠다. 일 년간 열한 명의 출중한 동료 기자들과 피드백을 하다 보니 보는 눈은 높아졌다. 하지만 글발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눈만 높아진 탓에 글을 쓰는 속도는 전보다 훨씬 줄었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됐고, 점점 글을 멀리하게 됐다. 글에서 무언가를 주장하는 방식도 소극적으로 변했다. '주장은 어렵고, 냉소는 쉽다'라는 말을 체감했기에 그런 걸까. 주장에 실패할 때 찾아드는 부끄러움과 무력감을 많이 봤다. 차라리 안전한 문장들로 누군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편이 나았다. 두툼한 글러브를 낀 채로 허락된 곳만을 때리는 복싱처럼, 틀에 갇힌 글을 쓰게 됐다.


글을 쓰는 이들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읽고 반응해줄 때, 인정해줄 때다. 하지만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에서 이런 즐거움을 얻기는 쉽지 않다. 일기장에서 블로그로, 블로그에서 브런치로 옮기는 과정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고픈 욕구의 발로 아닌가. 학보 활동을 하다 보니 다른 글을 쓸 시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렇지만 내 글이 기록으로 남아, 더 많은 사람들 앞에 드러난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으려 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학보 열독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동안 이렇게 해왔다는 이유로 금방 흘러 잊힐 글을 써야 한다는 점은 뒤늦게 알게 됐다. 학보에 싣는 글은 투자 대비 만족, 즉 효용성이 낮은 글이었다. 매 호 고심이 반복될수록 글쓰기에 대한 흥미도 줄어갔다. 나를 표현하는 행위였던 글쓰기는 일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마음이 떠나고 멀어지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기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다. 그동안 브런치에 올린 글을 보면 알겠지만 어딘가 우울하고, 나약한 면을 드러낸 글이 많았다. 나는 열패감과 그에 따른 우울감을 원동력으로 삼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더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더 멋있고, 더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글에 소홀했다. 이제는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그런 모습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지금껏 해온 대로, 때로는 진한 한숨이 묻어 나오는 글도, 때로는 희망을 노래하는 글도, 때로는 차갑게 세상을 바라보는 글도 써야겠다고. 조금은 더 편한 마음으로 발행 버튼을 눌러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될 내 모습들이다. 이들을 보다 정제된 언어로 미리 풀어낼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요즘 글을 잘 안 쓰는 이유에 관한 장황하고도 얄팍한 변명이었다. 한마디로 부담이 된다는 말이었다. 높아진 내 눈이, 읽히지 않을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 그 외에도 펜 위에 덧댄 무게들은 많았다. 다만 언제까지나 빈 종이를 바라만 볼 수도 없었다. 맡은 직책이 있기에 글을 써야 했고, 인정에 대한 욕구가 강한 인간이기에 제 자신을 표현해야 했다. 남은 건 오로지 '어떻게'에 관한 고민뿐이다. 어떻게 하면 펜의 무게를 줄이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우리는 답을 이미 알고 있다. 진부하지만 결국 더 많이 써야 한다. 시시각각 쌓여 드는 변명거리들을 보다 현란한 펜놀림으로 털어내는 수밖에 없다. 다시 마음을 다 잡고 글을 쓰며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기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내일도 펜을 잡겠다.

keyword
현우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경제부 직업 기자 프로필
팔로워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