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에 대한 오랜 염원
우리 사회는 공정한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불만을 들어보면,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공정성을 외치는 목소리가 크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공정한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국어사전에 따르면 공정하다는 건 하는 일이나 태도가 사사로움이나 그릇됨이 없이 당당하고 떳떳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감정의 치우침 없이, 팩트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내린 결정이 공정하다는 말이다. 공정한 사회는 이런 결정이 보편적이고 당연시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결정이 내려지는 곳은 다양하다. 법정, 면접장, 대학, 고사장 등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판결과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이 중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 문제도 많고, 그런 경우에는 반드시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고, 모든 팩트를 객관적으로 분석해내지도 못한다. 따라서 완전한 공정성을 이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인간은 최소한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원칙과 기준을 만들었다. 공정한 판결을 위해 법을 재정했고, 공정한 채점을 위해 평가 기준을 세웠다. 이로 인해 흉악범이라도 지은 죄 이상의 처벌은 면할 수 있었고, 교수의 자녀라 할 지라도 노력 이상의 성적은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정성이 짓밟히는 현장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분식회계를 벌여 수천 명을 경제적인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난 경제사범,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다음날 버젓이 회사에 출근한 국회의원의 딸, 난데없이 나타나 문·이과 1등을 나란히 갈아치운 고등학교 교감의 쌍둥이 딸 등, 인간이 세운 원칙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사람은 항상 나타났다. 인간이 평가의 주체가 되는 시스템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겐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방안이 대두되고 있다. 과연 인공지능은 인간을 대신해 공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공정함을 담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인공지능의 두 가지 특성을 근거로 삼는다. 첫째, 감정이 없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은 감정의 동요로 잘못된 선택을 내릴 우려가 없다. 둘째, 단시간에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판례들 혹은 모범 답안들을 분석해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물론 인간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더 합리적인 원칙을 세울 수도 있다. 즉 감정의 치우침 없이 주어진 팩트만을 바탕으로 일도양단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공지능이다. 앞서 살펴본 공정함의 정의에 비춰봤을 때, 인공지능이야말로 공정함의 화신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이러한 기술의 도입을 시도한 바 있다. 인공지능 판사로도 불리는 알고리즘 COMPAS가 대표적인 사례다. COMPAS는 범죄자의 여러 데이터를 분석해 일정한 기준으로 재범 가능성을 판단하는 알고리즘이다. 범죄 전과, 대인관계, 생활 방식, 성격, 가정환경 등 여러 가지 변수를 평가하는데, COMPAS가 내린 결론을 토대로 인간 판사가 양형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판결이 이루어진다. 아직 부분적인 도입이고 보완해야 할 오류가 있지만, ‘인공지능 판사’들은 인간이 꿈도 꾸지 못한 수준의 공정성을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도 관련 기술의 도입이 시급해 보인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경쟁 사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신, 입시, 학점 등 무수한 평가를 받으며 자랐다. 대부분 상대 평가 방식이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부었다. 이러한 다년간의 노력이 폄하되는 듯한 기분이 들기에 우리는 공정하지 못한 평가에 분노한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대학 입학사정관 제도가 점차 축소되어 가는 건 이러한 맥락에서다. 능력보다는 다른 정성적인 요인으로 인해 입시의 승패가 갈리고, 노력보다는 집안의 경제력이 성공을 좌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극심한 박탈감에 시달린다. 이처럼 의도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평가는 편파적이고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인공지능은 어떻게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 어느 대학의 교수가 글쓰기 실력을 평가해 점수를 매기려 한다. 한 학생은 논설문을, 한 학생은 수필을 써왔다. 교수는 과연 이 두 학생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글의 장르에 따라 평가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논설문은 논리성, 수필은 문학적 감수성이 주요 평가 지표가 된다. 따라서 두 학생을 동일선 상에서 평가하는 일은, 정밀하게 장르별 가중치를 설정하지 않는 이상,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주관적인 판단은 억울한 사람을 낳는다. 인공지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무수히 많은 글을 읽고, 작문 능력이 각 장르에 어떤 식으로 녹아 나오는 지를 파악하고, 환산값을 제시할 수 있다. 작품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장르의 난이도를 고려해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는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공정한 사회의 한 단면일 뿐이다.
공정한 사회는 인간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인간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더 억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고, 우리의 노력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변화는 이뤄져야 한다. 공정함을 부르짖는 우리의 요구는 점차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대한 염원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날에 인공지능이 제시할 사회의 모습은,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공정한 사회의 모습일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