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적폐'인가요?

온라인 발행을 전면 철회합니다

by 현우주


대학 학보사 편집국장으로 일하다 보면 이런저런 다양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아무리 노력한들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전부 예측하고 대비할 수는 없다. 고도의 순발력과 판단력을 요하는 자리다. 얼마 전 발행한 신문에서 일이 하나 터졌다. 이번에는 다사다난한 대학부(대학 내 사안을 취재, 보도하는 부서)가 아닌 얌전했던 사회부(사회 현안을 취재, 보도하는 부서)에서. 취재원이 멘트 게재를 거부해 온라인 기사 발행을 전면 철회해야 했다. 문제가 된 기사는 지난달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중 '가족 다양성 인정' 부분에 대한 찬반양론을 담은 보도기사였다.


문제를 제기한 단체의 주장은 이랬다. 우선 기사의 전반적인 방향과 구성에 대해 사전 고지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마도 한겨레, 시사인 등 진보 성향 매체의 기사처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해체해야 한다는 방향을 담은 기사로 예상한 듯한데, 찬반양론을 담아 나가 버렸다. 멘트를 왜곡하지는 않았지만 맥락에 따라 함의하는 바는 달라질 수 있다. 전문적인 용어로 화용론이라고 하던가. 담당 기자도 이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고, 온라인 발행을 철회한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하지만 다른 이유는 납득하기 힘들었다. 인용된 반대 측 단체는 혐오 단체이며, 이들과 동일선상에 놓이는 걸 반대한다고 입장을 전해왔다.


모든 신문이 그렇듯, 학보도 한 명의 기자가 독단적으로 기사를 써낼 수 없다. 수차례 편집회의를 거치며 방향과 구성은 적절한지, 인용한 통계자료나 멘트가 이상하진 않은지 끊임없이 점검한다. 예를 들어 차별금지법에 관한 기사를 작성할 때 반대 측 단체로부터 받은 멘트에 종교적인 이유를 거론한 부분이 있었다. 종교는 믿음의 문제고 논리적인 영역이라 할 수 없었기에 당연히 쳐내버렸다. 하지만 이번 기사에서 반대 측의 주장은 나름 타당했다. 반대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우려를 나타낸 멘트였다. 그런데도 내용 대신 특정 단체의 입장이라는 걸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억울했다. 균형을 잃은 기사라는 말을 듣자 뒤통수가 얼얼했다.


언론의 공정성이란 무엇일까. 완전한 중립을 이룰 수 있을까. 편집국장이 되기 전에도 자주 하던 고민이다. 어떤 책에서 사람은 자신을 중립으로 설정하고 진보와 보수를 판단한다는 문장을 읽은 적 있다. 정말 그렇다면 완전한 중립은 꿈속에서 가능한 일일 테다. 공정성에 관해서도 나름 방대한 이론이 있는 줄 알지만 고작 1~2년 일하다 떠나는 학보사 기자들에게 그런 수준을 바랄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찬성과 반대 측의 입장을 비슷한 분량으로 실어주는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균형을 잃었다니. 최소한의 원칙마저 흔들리니 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함이 몰려들었다.


온라인 발행을 취소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내겐 불편한 경험이었고, 기자에겐 상처로 남았다. 학보 일이 아니었다면 그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해체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을 테다. 한순간에 적폐로 내몰리니 기분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한편 내가 불편함을 느낀 이유는 이상을 말하는 이들의 고상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이번에도 보았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에 혐오 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모든 귀를 닫아버리는 건 올바른 지식인의 태도라 할 수 없다. 이를 차치하더라도 이 세상에 정답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을 대하는 일은 조심스럽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내가 그들을 오해한 걸까. 모르겠다.


돌고 돌아 이전에 쓴 글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결론에 도달했다. 틀림이 아닌 다름, 우리는 이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이 당연하고도 진부한 말이 더는 들리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서로의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차분하게 상대를 설득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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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경제부 직업 기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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