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성인식

월세방을 구하다 생긴 일

by 현우주


별생각 없이 점퍼를 두르고 집을 나섰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눈 깜짝할 새 봄은 지나갔고, 겨우내 보드라워진 맨살을 드러내야 하는 계절이 왔다. 목덜미에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학교 주변을 걷다 문득, 2년 전 월세방을 구하기 위해 분투했던 어느 여름 날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그 힘들었던 날의 기억을 꺼내봤다.




대학 발표만큼이나 떨리던 기숙사 발표. 결과는 탈락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지만, 집이 수도권으로 분류되는 걸 어쩌겠는가. 마침 동생도 같이 탈락했으니 투룸을 구해 한 학기만 버텨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는 이런저런 앱을 설치하고 임대 매물로 나온 방을 탐색하고 후보군을 추렸다. 며칠 뒤 늦여름 무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우리는 직접 학교를 찾았다.


도착하자마자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4개월 단기로 받아준다고 했던 집주인 할머니가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는 말을 들었다. 출발하기 전, 확인 전화까지 한 터라 배신감이 배로 들었다. 1년 이상은 살아야 받아주겠다고 하시네요. 중개인은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장장 두 시간 넘게 운전한 탓에 기진맥진한 엄마는 픽 전화를 끊어버렸다. 집주인 할머니의 변심이든, 중개인만의 영업 노하우든 사기를 당한 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무작정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일단 2년 계약을 하시고… 나중에 임차인을 구해 만기 전 해지를 하는 방법은 어떠세요? 도저히 단기 임대로는 받아주는 곳이 없어 포기하려던 찰나, 작은 희망의 불씨가 피어올랐다. 만약 새로 거주하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몇 달이고 쭉 살아야 하는,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반드시 되팔 수 있다고 단언하는 중개인의 목소리에는 힘이 바짝 실려 있었다.


우리는 그의 듬직한 충고를 따라보기로 했다. 계약기간을 2년으로 늘리자 방금 전까지 빈 방이 없다며 중언부언하던 할머니의 태도가 마법처럼 변했다. 일단 계약을 하면 바로 몰아낼 수 있다나. 벌써 두 번이나 손바닥 뒤집듯 쉬이 변해버린 할머니의 마음은 차마 갈대로도 비유해낼 수 없었다. 하지만 불평은 금물이었다. 집주인 할머니는 갑이었고, 중개인은 을, 우리는 병이었으니. 방을 구경이라도 할 수 있게 돼 감사할 따름이었다.


할머니를 따라 외진 골목을 걸었다. 그런데 집은 밤이면 벽에 손을 짚으며 찾아가야 할, 미로와도 같은 골목 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할머니의 배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진 속 넓고 아름다웠던 집은 어느새 좁은 일자형 집으로 변해있었다. 현관과 두 방, 화장실이 차례차례 연결된 집에서 남매는 사생활을 일절 포기해야 했다. 엄마는 우리를 이런 곳에 둘 수 없다고 했다. 멈출 줄 모르는 할머니의 회유를 뿌리치며 체력은 급격하게 방전되어 갔다. 골목은 우리를 다시 뜨겁고 눅눅한 거리로 토해냈다. 다시 원점이었다.


다음으로 찾은 집은, 학교와는 멀지만 얼마 전 신축해 인테리어와 내부 상태가 깔끔한 집이었다. 무엇보다 지리적으로 안전하다는 점이 큰 메리트였다. 집은 큰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직전에 크게 데인 탓일까.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다만 내 방이 너무 작다는 점이 유일한 문제였는데, 대각선으로 누워야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정방형의 방이었다. 해리포터는 더 좁은 방에서도 잘만 살았다고 농담을 날려봤지만 엄마는 영 마음에 걸리는 모양새였다. 한두 군데만 더 돌아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잠만 자는 곳’이라는 부제를 가진 조그마한 하숙집이었다. 이름을 참 잘 지었다고 인정하게 되는 그런 집이었다. 보증금은 고작 5만 원. 학교 바로 앞에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쿠쿠한 냄새와 벽에 슨 곰팡이,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따라 들어올 수 있는 허술한 집 구조가 우리를 다시 밖으로 내몰았다. 나오니 날은 이미 저물어 있었다. 우리만큼이나 고생한 휴대폰도 방전되기 직전이었다. 정해진 건 하나도 없는데 결정의 시간은 점점 다가왔다. 뜨거운 한숨으로 한여름 밤에 열기를 보탰다.


아쉬움이 남아, 보이는 공인중개사마다 고개를 들이밀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밤새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새로 눈에 들어오는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직접 보지 않고 결정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우리는 두 번째로 본 집을 선택했다. 돌아보면 잘한 선택이었지만, 당시엔 피폐한 마음에 대충 정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사람에 치이는 경험은 혼을 쏙 빼놓기 충분했다. 이래서 다들 집을 구하다 우는구나. 부동산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꿈들의 종착지가 건물주가 돼버린 이유를.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앞으로 결혼을 하든 독립을 하든 스스로 집을 알아보고 구해야 했다. 한때 대기업 입사나 공무원 시험 합격만을 바라보는 사회를 안타까워하던 내 모습은, 철없는 아이의 착각일 뿐이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갖고 한 걸음씩 내딛는 삶이 진정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이제는 그마저도 요원한 꿈이 돼버렸지만. 반드시 건물주가 돼 보이겠다는 농담으로 지친 엄마와 동생을 위로했다.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고 나서야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때 아닌 늦여름의 성인식을 무사히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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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경제부 직업 기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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