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브런치 조회수가 폭발했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사람들이 내 글을 읽든 말든 관심 없었다. 나만의 만족으로 삼고, 앞으로 만날 이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정도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며칠 동안 열심히 고민하고 써낸 글이 얼마 읽히지도 않고 묻힐 때면 힘이 쭉 빠졌다. 브런치는 검색보단 피드형 노출이 주가 되기에 업로드한 날에만 반짝 조회수가 올라가고 이내 잊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마저도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라이킷만 누르고 도망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나만의 공간에 글을 쌓아가는 즐거움에 집중했다. 벌써 반년 넘게 꾸준히 브런치를 할 수 있었던 건 그런 마음가짐 덕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며칠 새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서일까. 그날따라 '잘 팔리는' 글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나도 브런치 메인에 노출돼 더 많은 사람에게 글을 선보이고 싶었다. 나의 어려움에 공감해주는, 나의 글을 재밌게 읽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인정을 얻고 싶었다. 댓글과 '라이킷'을 많이 받고 조회수도 많이 찍히면 다시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한 번 해보자. 그동안 브런치 메인에서 봐온 글을 토대로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사전 준비 작업은 잘 팔리는 글들의 특징과 공통점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모든 글에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다섯 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었다.
브런치 메인에 노출되는 글들의 첫 번째 특징은 문단의 두께가 얇다는 점이었다. PC를 기준으로 3-4줄 정도. 문장 단위로 나눠준 글도 눈에 띄었다. 두 번째 특징은 글쓴이의 생각보다는 사건에 대한 묘사 즉 스토리 위주의 글이라는 점이었다. 어떤 일에 어떻게 반응했으며, 무엇을 배웠는지 말해주고 마지막에 짧게 그에 대한 감상을 덧붙인 글이 많았다. 세 번째 특징은 구성이 다채롭다는 점이었다. 사진 2-3장을 적재적소에 넣고, 대화문을 중간중간 배치해 텍스트에 대한 압박을 줄였다. 네 번째 특징은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주제를 다룬다는 점이었다. 육아, 여행, 가족, 회사 등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진 일을 다룬 글이 대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특징은 제목을 잘 짓는다는 점이었다. 클릭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헤드라인은 내용과 상관없이 감탄을 자아냈다. 쏟아지는 글의 홍수 속에서 제일 중요한 건 제목이라 할 수 있었다.
브런치 메인 글을 토대로 원칙을 세운 뒤 먼지가 자욱이 쌓인 추억 상자를 열었다. 눈길을 끌만한 이야기가 없을까 뒤져봤다. 5년 전 친구와 러시아 여행을 갔을 때 경찰들한테 둘러싸여 당황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러시아와 경찰. 이 두 단어만으로도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기 충분했다. 오케이, 주제는 됐고. 이제 내용을 채우고 대표 사진과 본문에 들어갈 사진만 잘 고르면 됐다. 독자들의 애간장을 좀 더 태우기 위해 경찰한테 붙잡힌 스토리를 반으로 쪼갠 뒤 도입과 결말에 나눠서 배치했다. 제목은 궁금증을 유발하기 좋다는 'OO한 이유' 양식을 따랐다. 그 뒤 설레는 마음으로 메인에 노출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입질이 오지 않았다. 구독자도 별로 없는 변두리 브런치라 눈에 잘 띄지 않나 보다, 그렇게 체념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새벽,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브런치를 확인하는데 조회수가 2,000을 넘겼다는 알림이 와있었다.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새벽 2시를 넘긴 시각이었는데도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조회수가 5에서 10씩 증가했다. 다음 날 일어나니 조회수는 1만을 넘긴 상태였다. 대체 어디에 올라갔길래. 찾아보니 다음 메인화면과 카카오탭에 동시 노출돼 있었다. 한 시간마다 조회수는 1,000씩 올랐다. 마침내 3만이라는 숫자가 찍힌 화면과 마주했을 때의 감정이란. 지난 반년 간 다녀간 수의 4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내 브런치를 방문했다. 난생처음 보는 5자리 숫자는 현실 감각을 아예 앗아가 버렸다.
한편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음에도 불구하고 구독과 라이킷은 많이 늘지 않았다. 물론 외부 사이트에서 유입된 사람들이, 굳이 브런치에 로그인을 하면서까지 반응해주진 않았을 테다. 하지만 뭔가 사기를 친 듯한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 글에 아무런 알맹이가 없다는 걸 잘 알았다. 항상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위로가 될 만한 내용을 담으려 노력했는데 이 글엔 온통 '이랬다 저랬다' 뿐이었다. 길거리에서 맥주를 마시다, 무단횡단을 하다 경찰한테 한 번 경고 먹은 일을 있는 힘껏 부풀린, 속된 말로 '어그로 끄는' 글이었던 셈이다. 의도한 바를 이루긴 했지만, 찝찝한 기분이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당분간 조회수에 대한 집착을 버리긴 힘들 듯하다. 특히 이런 경험을 한 뒤로는 더더욱. 인정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쓰던지, 어그로를 끌되 그만한 알맹이를 가진 글을 쓰던지. 어느 쪽이든 글쓰기에 대한 흥미만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튼 울적한 마음을 환기해준 값진 선물이었다. 브런치 팀 고마워요~ 앞으로도 글 열심히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