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우주 Jun 06. 2021

한국의 댓글부대

#5 장강명 『댓글부대』


장강명의 『댓글부대』는 댓글공작 대행사 '팀-알렙'을 운영하는 세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팀-알렙의 멤버들이 흥하고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며 인터넷 커뮤니티와 댓글판의 씁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여론은 어떻게 소수에 의해 형성되며 대중은 이에 어떻게 선동되는지를 그려낸 소설로, 황폐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단비 같은 작품이라고도 평할 수 있겠다. 네이버나 유튜브에서 내용은 안 보고 댓글창으로 먼저 달려가는 당신이라면 읽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길 권한다.


댓글공작 대행사 팀-알렙을 운영하는 세 청년 삼궁, 01査10, 찻탓캇은 수상한 사람들로부터 댓글공작 의뢰를 받게 된다. 진보 성향의 영화를 망하게 해달라는 의뢰였다. 이들은 영화사에게 갑질을 당한 가상의 피해자를 만들어 일을 단숨에 해결하고, 평소에 만져보지도 못한 거액의 사례금을 받는다. 팀-알렙의 능력을 확인한 의뢰인들은 더 많은 액수를 부르고 심상치 않은 일을 부탁한다. 두 번째 의뢰는 진보 성향의 커뮤니티를 내부 분열시켜 망하게 하기. 세 청년은 풍부한 상상력을 앞세워 하나둘 커뮤니티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정치적 올바름(PC)을 과도하게 주장해 이용자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수법, 분탕 글을 올려 어그로를 끈 뒤 모욕죄로 모두를 고소해버리는 수법 등을 활용해 진영주의와 유대감으로 똘똘 뭉친 철옹성을 박살 내버린다.


멋지게 두 번째 일을 마친 이들에게 마지막 의뢰가 들어온다. 바로 '빨갱이 교사에게 인질로 잡힌' 청소년들을 구출하는 일. 바이럴 캠페인을 이용해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반감을 심는 일이었다. 이들은 '나는 강하다.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걸고 어린 학생들이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추하고 약한 걸로 여기도록 만드는 작전을 펼친다. 파쿠르와 교복 찢기 등 자극적인 소재를 활용해 많은 호응을 얻지만 과도하게 몰입한 일부 청소년들로 인해 갈등이 빚어진다.


팀-알렙은 마지막 임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이들에게 수상한 임무를 맡긴 사람들은 누구일까. 제3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인 『댓글부대』는 간결한 문장과 몰입감 있는 전개로 독자를 금세 마지막 장으로 이끈다. 당신도 책을 읽으며 추악한 인터넷 댓글판의 민낯을 보게 되길 바란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내 또래들은 정말 엄청난 도구가 왔다, 이걸로 이제 혁명이 일어날 거다, 하고 생각했지. 모든 사람이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으로 대안을 찾아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했지. 인터넷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권위를 타파해서 민주화를 이끌 거라고도 믿었어. (...) 그런데 한국에서도 그런가? 인터넷신이나 블로거들이 과연 그런 역할을 하냐고. 아니지. 그냥 거대 언론이 하던 나쁜 짓을 아마추어들도 소자본으로 하게 됐을 뿐이야. 거대 언론이 점잖게 기업에 겁을 주며 광고를 따냈다면 인터넷신문들은 대놓고 삥을 뜯지. 블로거들은 동네 식당을 상대로 협찬을 요구하고. 이것도 민주화라면 민주화지. 협박, 공갈, 갈취의 민주화. 누구나 더럽고 야비한 짓을 할 수 있게 되는 민주화.

장강명 『댓글부대』 中




예전에 '숲속 친구들'이라는 만화를 본 적 있다. 욕설이 난무하는, 조금은 보기 불편한 만화지만 우리나라의 댓글 문화 실태를 아주 제대로 그려낸 명작으로 기억한다. 만화는 우리가 이미 경험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루머가 퍼지고, 조리돌림을 당하고, 팩트를 말해도 '쉴드' 친다고 욕먹고, 감성을 파는 댓글이 달리다가, 진실이 밝혀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오리발을 내미는. 작가는 우화의 형식을 빌려 이 같은 폐단을 완벽히 풍자해낸다. 한국 댓글 문화의 교과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화 '숲속 친구들'과 『댓글부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현상이 있다. 여론은, 즉 대중을 선동하는 힘은 소수의 사소한 언동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이었다. 3명으로 구성된 팀-알렙이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모습에선 비록 소설이라 해도 위화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한 동물의 작은 추측이 순식간에 숲속 동물들의 공분으로 번지는 과정을 보며 인터넷 댓글판은 '삼인성호'라는 말이 제일 잘 들어맞는 곳이라는 걸 실감했다. 


원리는 무엇일까. 인터넷 여론은 보통 처음과 그다음 달린 댓글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지금도 수많은 커뮤니티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보통 첫 댓글이 공감조로 나오면 아래엔 위로의 댓글들이, 비판조로 나오면 아래엔 차가운 댓글들이 달린다. 즉 댓글은 누구의 마음속에나 존재하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집단주의가 깊숙이 뿌리내린 한국 사회에선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피해자다. 선동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그 말에 갈대처럼 휘둘리는 사람들로 인해 사회는 병들게 된다. 이 책에서 자주 인용된 괴벨스는 "대중에게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멀리 올라갈 필요 없이, 우리는 최근 나라를 뒤흔든 몇몇 사태를 통해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괴로움 속으로 밀어 넣는지를 목도했다. 대중이 생각하기를 멈추는 순간, '댓글부대'의 활동이 시작됐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없이 공작원들이 진실을 호도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선별해내는 능력인 '미디어 리터러시'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하루 아침에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자기만의 주관을 확고하게 형성한 뒤에야 기를 수 있다. 주관이 바로 선 사람이 늘고 이들 간 건전한 담론이 형성될 때 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또한 선동의 과정과 원리를 이해하는 일도 중요하다. 사기 수법을 알면 이를 예방할 수 있듯, 선동의 메커니즘을 알면 이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댓글부대』는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단초를 제공했다. 이 소설을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이미 드루킹 댓글공작 사건과 같은 어마어마한 일이 수면 위로 드러난 까닭이다. '댓글부대'는 오늘도 어딘가에 숨어 선동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바로 지금 화면 너머의 당신을 보며 미소짓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한 걸음, 한 걸음 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