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혁진 『누운 배』
배가 쓰러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서 있던 배가, 자동차와 화물 트럭 수천 대를 싣고 대양을 누빌 만큼 거대한 배가 하룻밤 새 누웠다. 배는 왜 쓰러졌을까. 모른다.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밝히는 일보다 시급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돈 문제다. 임원진의 말 한마디에 배가 누운 이유는 '천재지변'으로 결론 나고 보험사로부터 손실 보상을 최대한 많이 받아내는 게 회사의 지상 과제가 된다. 직원들은 한마음으로 뭉쳐 보험사와의 한판 승부를 준비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드러난 건 그동안 회사가 얼마나 엉망으로 운영돼 왔는지였다. 문제는 배가 아니었다. 배를 만드는 회사였다. 회사의 우두머리들이었다. 『누운 배』는 배와 함께 누워버린 회사를 일으키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술술 읽히는 문장과 빠른 전개 덕분에 몰입감 있게 읽었다. 한겨레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장강명이 단번에 반한 작품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문체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내용이 풍부하고 고증이 탄탄하다는 점이다. 당시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심사 직후 작가가 실제로 조선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지 궁금해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조선업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그걸 작품 전반에 잘 녹여냈다는 뜻이겠다. 아니나 다를까. 이혁진 작가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잡지사와 조선소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누운 배』를 집필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작품 중간중간 깊은 통찰이 묻어나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자신도 평소 책을 읽을 때 이야기보다도 지혜와 통찰이 담긴 부분을 더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런 취향이 작품에서도 잘 드러났다.
몰입감 있게 읽힌 1부에 비해 2부는 느슨했다. 1부에서는 보상의 범위를 두고 회사와 보험사가 수싸움을 벌이는 내용이 박진감 넘치게 전개된 반면, 2부에서는 황 사장이 회사를 올바른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나열되며 지루함을 자아냈다. 황 사장이 유능한 인물이라는 걸 강조하는 데 그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해야 했을까. 또한 어렵게 전손 보상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책의 1/3에 걸쳐 그렸는데, 임원의 한마디에 합의가 무산된다. 주인공의 탄식 뒤로 더 언급도 없다. "결국 이런 끝을 보려고 그렇게 많은 밤을 야근하고 낙심하고 그래도 할 수 있다고 서로 북돋워가면서 일해온 걸까?" 보험사와의 긴장 구도를 마지막까지 끌고 갔다면 좀 더 탄탄한 구성을 가진 작품이 됐을 거라 생각한다.
Q. 임원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온다. 자신을 돌아봤을 때, 당신은 등장인물 중 누구와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가.
바로 떠오르는 인물은 없다. 다만 꼭 한 명을 꼽아야 한다면 주인공을 꼽겠다. 안정적이지만 젊음을 착취당하는 조선소에서의 삶과 불안정하지만 젊음을 실현할 수 있는 한국에서의 삶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의 모습에 특히 몰입이 됐다. 졸업과 취업 준비를 앞둔 상황이기에 이상과 현실, 모험과 안정이라는 두 선택지로 내몰린 주인공의 감정이 더욱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나 같은 취준생들도 이럴진대, 직장에서 매일 일에 치이는 이들은 얼마나 절실하게 공감이 됐을까. 작중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돈이다'라는 문장이 수많은 직장인들의 마음을 울렸다고 한다. 작가는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을 법한 생각을 투박하고도 적실한 비유로 드러냈다. 만족을 하든 안 하든 우리는 헐값에 젊음을 내다 팔고 있다.
Q. 주인공은 끝내 조선소를 떠나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더는 젊음을 허비할 수 없다며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모험을 떠났다. 당신이라면 주인공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겠는가.
망설임 없이 모험을 떠나겠다. 주인공의 나이는 서른이다. 충분히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 수 있는 나이라 생각한다. 또한 독신이기에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다. 당장은 미래가 그려지지 않더라도, 젊음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누구나 비슷한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혹자는 처음부터 원하는 꿈에 도전하면 되지 않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처럼 부딪혀보고 판단하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대게 경험해보기 전까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나이가 더 많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정을 꾸리거나, 더는 다른 일을 시작할 능력이 안 된다면 회사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곳이 된다. 그 역시 자신의 선택이라면 어떤가. 한때 회사에 '매인' 삶을 멸시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아니다. 어떤 삶이든 그만의 행복과 그만의 불행이 있다고 믿는다. 중요한 건 직접 선택하는 일이다.
Q. 故 황현산 시인은 이 책이 붕괴의 사회구조를 말한다는 점에서 재난사고의 형이상학을 갖는다고 평한다. 당신은 우리 사회에도 '누운 배'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배가 눕기 전에는 아무도 배가 누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배가 누운 뒤에야 저 거대한 배가 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거대한 건 안전하다고 믿는다. 어느 정도는 합리적인 믿음이다. 웬만해서는 집채만 한 배가 넘어가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안일함이 쌓여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대형사고가 일어난다. 거대한 몸집만큼 그 대가도 크며, 모두의 잘못이기에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결국 희생되는 쪽은 잘못을 수습하는, 수습되기를 기다리는 이들뿐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들었다. 얼마 전 광주의 아파트 외벽이 붕괴되며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시공사의 부적절한 공사 방식이 속속 드러나는 중이다. 우리는 왜 일이 잘못돼야만 잘못된 곳을 보는 걸까.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 광주의 아파트. 시인의 말대로 붕괴는 모두 같은 형이상학을 공유한다. 우리 주변엔 누운 배도, 아직 누울 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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