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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Apr 13. 2022

알람이 안 울린 아침

사소한 소수의 불편


8시 59분에 눈을 떴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첫 수업은 9시에 시작했다. 비대면 줌 수업이었지만, 끝나고 약속이 있었기에 학교 주변에서 들어야 했다. 등교하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렸으므로 늦잠을 자버린 순간 파투를 낸 거나 다름없었다. 알람은 분명 7시에 맞춰뒀다. 설정에는 이상이 없었다. 알람은 잘 작동했고, 단지 진동이 울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서 부재중 전화도 8통 와 있었다. 그 난리를 치는 동안 휴대폰은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친구에게 알람이 고장 났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누가 봐도 변명 같았다.


부랴부랴 노트북을 열고 수업에 들어갔지만, 지각이었다. 출결 점수가 나갔다. 화가 치밀었다.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이폰 알람 안 울림' '아이폰 알람 버그' 등. 글은 많았지만 대부분은 '알람 설정을 제대로 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라'는 내용의 영양가 없는 글뿐이었다. 정말 사람들이 이런 걸 몰라서 검색을 했을까. 헛걸음을 하게 만든 그들에게 싫증이 옮아갔다. 몇 번 키워드를 바꾸고 나서야 동일 현상으로 고통받은 사람의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글이 작성된 건 2017년, 무려 5년 전이었다.


글쓴이는 그날 오전 중요한 미팅에 참석해야 했다. 하지만 알람이 울리지 않아 한 시간이나 늦게 일어났다. 예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어 알람에 타이머도 맞추고 잤는데 둘 다 작동하지 않았다. 미팅 시간이 연기되며 다행히 늦진 않았지만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글 아래에는 댓글이 여럿 달려 있었다. 알람이 울리지 않은 이유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제일 그럴듯한 가설은 '알람-전화 충돌설'이었다. 알람이 울릴 타이밍에 전화가 오면 오류가 생긴다는 주장이었다. 부재중 전화가 걸려 온 시간을 확인했다.


알람이 울려야 할 시간과 부재중 전화가 찍힌 시간이 얼추 비슷했다. 정말 그 문제가 맞았을까. 혹시 내 휴대폰만 이상한 건 아닐까. 비슷한 사례가 있나 찾아봤지만 더는 발견할 수 없었다. 절망스러웠다. 위에서 본 글은 5년 전 작성된 글이었다. 그 말은 5년 동안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는 뜻이었고, 앞으로 해결될 가능성도 낮다는 뜻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례가 너무 적었다. 품질 개선도 비용이 드는 일인 만큼,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르는 건 당연했다. 어찌됐든 휴대폰을 바꿀 때까지 알람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내게만 해당하는 지극히 사소한 불편이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국내 OTT 사이트에서 영화를 보는데 버퍼링이 심했다. 와이파이는 빵빵했고, 데이터로 바꿔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영화를 볼 때마다 네댓 번씩은 앱을 재시작해야 했다. 속은 타들어가는데 마땅히 항의할 곳이 없었다. 내 작은 목소리를 본사에 전할 방법은 앱스토어 리뷰밖에 없었다. 답변이 수년째 달리지 않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불편은 곧바로 해결되지만, 나만의 불편은 감내해야 할 고통이 돼버린다.


문득 전장연 지하철 시위가 떠오른 건, 평소 그런 쪽으로 많은 공감을 해서도 아니고, 이 짤막한 일상 글에 교훈을 욱여넣기 위함도 아니다. 오히려 불법 시위로 다수의 불편을 야기하는 행태를 안 좋게 보는 쪽이었다. 그런데 일련의 경험을 통해, 어떤 방법으로도 목소리를 전할 수 없을 때의 좌절감을 맛볼 수 있었다. 아이폰 알람 버그, 동영상 버퍼링이야 그나마 참을 만한 불편이지만, 제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없는 불편은 얼마나 더할까. '오죽하면'이라는 단어가 불법의 당위가 돼서는 안 되지만, 공감의 토대는 될 수 있었다.


너무 사소한 탓에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불편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또는 시위자들이) 이재용 회장처럼 돈이 많았거나, 방탄소년단처럼 인기가 많았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이게 불편하다, 한마디 내뱉는 순간 일사천리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까. 다수는 아닐지라도 다수를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면 당신의 목소리는 들을 만한 게 된다. 따지고 보면 돈, 명예, 권력은 영향력을 얻기 위한 수단인지도 모른다. 그 영향력에는 자신을 둘러싼 불편을 모두 제거할 수 있는 힘, 완전한 편리(便利) 뒤따르기 때문이다.



Title Image by makabera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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