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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Apr 04. 2022

현장에서 만납시다

인턴기자가 만난 인연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인턴기자 활동이 끝났다. 일할 땐 활동이 끝날 날만을 꼽았는데 막상 사원증을 반납하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언제 또 이렇게 현직기자에게 친절한 지도를 받아보겠나. 브런치에 구구절절 인턴기자 활동기를 올린 건 그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돌아보면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자정이 한참 지나 잠들었다. 출근하면 서너 시간에 한 번씩 보고를 올려야 했다. 발젯거리를 고민하다 밥시간을 놓치기 일쑤였다. 여기에 학보사 활동까지 맞물리니 죽을 맛이었다. 이렇게 해서 얻은 게 고작 150만 원의 활동비라면 분명 손해겠다. 하지만 내가 얻은 건 그보다 훨씬 많다. 돈을 받아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정도로 값진 시간이었다. 인턴 교육은 적자 장사라고 농담하던 총무팀장의 말이 맞았다.


일단 메이저 언론사에서 활동한 경험 자체가 좋은 경력이 됐다. 나중에 공채를 볼 때 인턴기자 활동이 평가에 반영되며, 그렇게 한 기수에 네댓 명씩은 다시 회사로 돌아온다고 했다. 자신의 적성이 신문 기자와 맞는지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턴기자를 마지막으로 기자의 꿈을 포기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내게는 긴가민가했던 꿈을 확고히 다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정량적으로는 내 이름이 바이라인에 들어간 3개의 기사가 남았다. 선배기자들과 나눈 대화와 받은 피드백이 SNS에 남았고, 오리엔테이션 때 들었던 강의들의 필기를 고스란히 보관해뒀다. 무엇보다도 큰 수확은 사람이었다. 현직기자, 인턴동기, 취재원 등등.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언젠간 현장에서 마주치게 될 소중한 인연들이 남았다. 


언론 쪽은 굉장히 풀이 좁다고 한다. 한두 다리만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내게도 업계가 얼마나 좁은지 직접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인턴활동 도중 언론고시에 관한 조언을 듣기 위해 현직기자 두 분에게 연락을 드렸다. 한 분은 대안학교 선배였고, 다른 한 분은 학보사 선배였다. 두 분에게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언론사도 달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서로 아는 사이였다. 비슷한 시기 언론계에 발을 들인 탓에 수습시절 마와리(경찰서를 돌며 취재거리를 찾는 일)를 같이 돌았다고. 수많은 사람 중 딱 두 명을 찍었는데 서로 알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언론 직군에서는 낮지 않아 보였다. 그렇기에 평판이 중요하다고 했다.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될지 모르니 현직기자들과 동기들에게 잘 보이라고 선배는 충고했다.


인턴기자는 나를 포함해 총 18명이었다. 대학도, 전공도, 나이도, 천차만별이었지만 모두 같은 꿈을 꾸는 만큼 마음의 벽을 허무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취재는 대부분 선배기자와 진행하기에 동기들과 따로 만날 시간은 없었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도움을 주고받을 일이 많았다. 특히 취재원을 구할 때 그랬다. 예를 들어 '물가가 올라 서민들이 힘들어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려면, 실제로 물가상승으로 괴로워 하는 사람의 증언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턴들은 인맥이 넓지 않았고, 취재원을 구하는 일에도 서툴었다. 그래서 '주변에 이런 분 있으면 연결 부탁드린다'며 서로 의지하게 됐다. 또한 중간에 부서 이동이 있었는데 먼저 그 부서를 경험한 동기들이 꿀팁들을 공유하는 등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러한 '협업'은 실제 현장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한 정치부 선배에게서 '꾸미' 문화에 대해 들었다. 꾸미는 언론사는 달라도 부서(주로 정치부)는 같은 기자들이 뭉친, 일종의 비밀 서클이다. 아직도 전국에 몇 개의 단체가 있는지 집계가 안 됐을 정도로 폐쇄적인 모임이라고 한다. 그 안에서 중요한 정보들이 오가고, 취재원들과의 만남도 주선하기에 좋은 꾸미에 들어가는 건 필수적이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알음알음 멤버들을 충원하다 보니, 평판과 더불어 인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어놓은 쪽이 확률이 더 높다는 뜻이겠다. 물론 그런 의도로 인연을 쌓는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다만 현장에서도 인연은 중요하니, 지금부터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잘 하자는 교훈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아무리 짧게 본 사이라도 인연은 인연이다.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었다는 건 언제든 손을 뻗어 도움을 청할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고작 며칠 뵌 선배도 나중에 자기소개서 첨삭을 봐주겠다고 했다. 다른 선배에게서 취재원을 구하는 연락을 받은 적도 있다. 동기들은 더욱 각별하다. 입사시기도, 언론사도, 부서도 모두 다르겠지만 올챙이 적 시절을 함께 했다는 사실만으로 유대는 충분하리라, 훗날 현장에서 만났을 때 터울 없이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리라 믿는다. 브런치에 이런 글을 남기는 이유도 나 또한 그런 인연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반가운 연락을 해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물론 없지 않다.



Title Image by minanfotos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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