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우주 Mar 29. 2022

대학기자상을 받다

[시사IN] 제13회 대학기자상 취재·보도 부문



두 해의 학보사, 두 번의 대학기자상



아마도 내가 처음일 거라 했다. 2년 연속 대학기자상을 받는 건. 대학 언론사의 임기는 보통 2년 안팎이니 그럴 만했다. 한 해도 빠짐없이 받아야 이룰 수 있는 성과였다. 시사IN이 창간 당시부터 운영해온 대학기자상은 대학 언론인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상이다. 대학 언론은 물론, 기성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다 보니 매년 많은 출품작들이 몰린다. 시상은 취재·보도, 사진·그래픽, 방송·영상, 뉴커런츠, 특별상 총 다섯 부문으로나뉘어 진행되며, 이중 한 부문에서 대상과 부문상이 나온다. 나는 지난해 특별상을 받았고, 올해는 취재·보도 부문상을 받았다. 상금은 100만 원씩이었다.


특별상은 지난해 우리대학 내 언론사들이 뭉쳐 총장 선출 과정과 재단 이사회의 문제점을 취재하고 보도한 기획에 대해 주어졌다. 나는 총 네 개의 기사 중 이사회 구성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기사를 맡았다. 이사회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외부에서 개방이사를 초빙해 방만 운영을 감시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을 견제할 사람을 이사들이 직접 뽑다 보니, 몰래몰래 지인들을 그 자리에 앉히려 한다. 우리는 SNS를 뒤져가며 이사들이 인과 연으로 단단하게 뭉쳐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동문, 사제지간, 심지어는 부인과 친분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원팀' 이사회는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는 게 요지였다.


올해 취재·보도 부문 수상작으로는 대학 내 민자유치사업의 현황과 구조적인 문제점을 다룬 내 기사가 선정됐다. 민자유치사업은 10년 전 대학가에 열풍이 불었던 건축사업으로, 수많은 대학기숙사와 부대시설이 해당 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됐다. 민자사업의 구조를 요약하면 이렇다. 먼저 대학과 은행이 손을 잡고 민간인들로부터 투자금을 끌어모아 민간시행사에 넘긴다. 시행사는 그 돈으로 건물을 지어 대학에게 바치고, 대신 20년간 이를 관리·운영할 권리를 얻는다. 시행사는 임대료와 이용료를 걷어 투자자들에게 상환한다. 문제 삼은 부분은일이 틀어질 경우, 학생들만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되는 불공정한 구조였다.


슬픈 건, 이렇게 대형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정도로 날카롭고 탄탄한 취재였는데도 정작 학교는 무시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비리에 연루된 총장이 압도적인 표차로 선출됐고, 법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민자사업 일정을 연장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수상은 도리어 대학 언론의 낮은 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어떻게 해야 듣는 척이라도 해줄까. 얼마나 해야 잘못된 부분을 바꿀 수 있을까. 학교의 탄압과 무관심 속 대학 언론은 더 완전한 침몰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시사IN 같은 언론사가 견인줄 역할을 자처한 건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다. 다만 그 힘이 충분한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이숙이 시사IN 대표이사가 상패를 건네고 있다



당선작: 학생들은 여전히 '비싼' 기숙사비를 낸다



당선작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처음 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봤지만 부족했다. 관심 있는 독자는 이를 더 잘게 풀어쓴 이전 글(대학가의 시한폭탄)을 참고해주면 좋겠다. 대학생이라면 구글에 대학 이름과 '민자기숙사'라는 단어를 검색해보길 바란다. 해당 대학이 민자사업으로 기숙사를 건립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 만약 민자기숙사에 살았다면, 당신은 원래 내야 할 돈보다 많은 돈을 냈다고 할 수 있다. 기숙사비는 대부분 투자금을 상환하거나 코로나19 적자를 메꾸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즉, 당신이 건물을 지은 셈이다. 부당해도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10년 전 건물을 이미 받아버렸다. 또 투자자들은 협약에 여러 불공정 조항들을 추가해 자신들이 질 리스크를 0으로 만들어버렸다. 대학은 공짜로 건물을 받고, 투자자들은 위험부담 없이 고금리를 빨아먹고, 학생들은 높은 기숙사비에 시달리고. 그런 내용을 취재해 보도했다.


https://sgunews.sogang.ac.kr/front/cmsboardview.do?currentPage=2&searchField=ALL&searchValue=&searchLowItem=ALL&bbsConfigFK=3606&siteId=sgunews&pkid=875668



부문 심사평과 취재 비하인드



취재·보도 부문 심사평은 한국기자협회장님이 맡았다. 심사평에 따르면 제13회 대학기자상 출품작은 총 288편으로, 어느 때보다 많았다. 취재·보도 부문은 그중에서도 제일 치열한 부문이었다. 218편이 몰렸고 여기서 대상도 나왔다. 심사위원들은 총 세 차례의 심사를 톻해 부문 수상작을 선정했다. 많은 기사들 중 내 기사가 돋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에 대한 집념이 돋보였다는 게 공통된 견해였다. 정보에 대한 접근이 완전히 차단된 상황에서 '우회적 취재를 통해 총체적 진실을 밝혀낸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학생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보편적 사안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문제의식 역시 수상 배경으로 꼽혔다. 운도 좋았다. 시상식 때 들은 이야긴데, 정통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좋아하는 정치팀장이 심사에 참여해 단번에 내 기사를 찍었다고 했다. 그 스타일이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기자의 필수 소양으로 꼽히는 스트레이트로 인정을 받아 좋았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111

 

분수 넘치는 심사평 옆에는 취재 비하인드가 실렸다. 사전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비하인드였는데,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은 교육부 직원의 말실수로 중요한 단서를 얻었을 때와 함정 취재(?)를 통해 은행 직원로부터 원하는 정보를 알아냈을 때다. 마지막으로 모든 열쇠를 쥔 학교 관계자 A씨와 연락이 닿아 퍼즐을 완성했던 순간도 생생하다. 


취재는 마감 사흘 전 시작됐다. 시간이 부족해 일단 무작정 전화하고 찾아가 부딪혀야 했다. 수업도 모두 빠지면서 백방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발품을 팔았다. 내게 간절히 찾던 정보는 우리 학교가 '대환 대출', 즉 대출 갈아타기를 했는지 여부였다. 대환 대출은 기숙사비 인하 문제와 직결되기에, 매우 중요한 정보라 할 수 있었다. 먼저 교육부 대학기숙사 담당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떤 점이 문제라 생각하는지, 꼭 필요한 정보는 무엇인지 조목조목 짚었다. 그는 학생이 그런 내용도 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학교 당국의 허락 없이 정보를 줄 수 없다며 난감해했다. 집요하게 졸랐다. 절대 안 된다고 잡아떼던 그가 결국 말실수를 저질렀다. "그 부분은 저희도 확인을 했습니다" 대환 대출을 받았다는 뜻이었다. 말실수인 척했지만, 실은 그가 일부러 정보를 흘렸다는 걸 안다. 분위기가 그랬고, 연기가 어색했다. 아무튼 그는 기사에서 교육부에 대한 언급을 빼 달라고 부탁했고, 다른 방법으로도 그 사실을 확인해보라고 조언했다. 곧바로 학교 안에 위치한 은행으로 달려갔다.


우리 학교의 대출 업무를 담당한 직원에게 학교가 얼마 규모로 대환 대출을 받았는지 물었다. 그는 "원하는 게 뭔지는 알겠는데, 그 정보는 못 준다"고 했다. 취재 끝. 액수는 몰라도 대환 대출은 받았다는 뜻이었다. 그는 중요한 정보를 지켜냈고, 나는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흡족한 미소를 날렸다. 물론 기사 안에 '학교 관계자 A씨'라 명시한 취재원을 통해 전말을 듣긴 했지만, A씨가 없었더라도 대환 대출 여부는 알릴 수 있었을 테다. 취재란 이렇게 퍼즐조각을 하나씩 맞춰가는 일이었다. 퍼즐조각은 결코 한군데 뭉쳐 있지 않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으로 취재를 마칠 수 있었고, 다행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런 재밌는 비하인드도 일부분일 뿐이다. 이번 '민자사업' 취재를 통해 내가 얻은 건 이보다 훨씬 많다. 무엇보다 언론인의 꿈을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그 즐거움과 뿌듯함, 쾌감과 보람이 얼마나 큰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잡스는 나중에 인생을 돌아본 뒤에야 그 변곡점이 보인다고 했지만, 이번 만큼은 돌아보지 않아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다. 비로소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은 순간이었다고 말이다.



마지막 한방, 상금을 기부하다



일 년 전, 특별상을 받았을 때 팀장을 맡았던 친구는 상금을 전액 학교에 기부하자고 했다. 수상 인원이 워낙 많아 나누기 애매하다는 문제도 있었지만, 학교 발전을 위해 시작한 취재인 만큼 마무리까지 그 정신을 이어보자는 뜻이었다. 학교의 부조리한 면면을 취재해 얻은 돈을 다시 학교에 기부하다니. 당시 이런 아이러니가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다. 올해 단독 수상을 했는데 전액 기부를 결정한 이유도, 그를 향한 동경 때문이었을 테다. 그런데 여기에 좋은 마음만 담겨있는 건 아니다. 복수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대학 언론에 몸 담은 2년 동안 제일 서러웠던 건 학교의 무시였다. '너네가 해봤자지' '또 귀찮게 하네' '굳이 상대 안 해도 돼'. 협조해준 분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대학기자들를 무시했다. 이번 기부는 그런 인식이 변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결정했다. 물론 이런 수상 사실마저도 철저하게 무시됐지만 말이다.


막상 통장에 꽂히니 아쉽긴 하더라



다시, 기자의 꿈을 향해



대학기자상을 두 번이나 받은 건 언론사 입사 시험을 볼 때 분명 어필할 만한 포인트다. 메이저 언론사 인턴도 하고, 어학점수도 따놨으니 이제 필기시험만 공부하면 되겠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번아웃이 온 걸까. 요즘에는 물리학 전공수업을 하나도 안 듣고 브런치 글만 발행하고 있다. 시사IN 정치팀장님에게서 '학점은 하나도 필요없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일말의 죄책감과 위기의식마저 사라졌다. 그게 팽가팽가 놀라는 말은 아니었을 텐데. 논술과 작문 시험을 준비해야 하지만 뒤숭숭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글은 자랑도 할겸, 확실한 매듭을 지어볼 목적으로 썼다. 이제 대학 언론에 대한 미련과 향수를 버리고 다음 걸음을 딛자고. 다시, 기자의 꿈을 향해 달려보자고!

작가의 이전글 슬럼프 벗어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