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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Dec 10. 2021

대학가의 시한폭탄

노리스크 하이리턴, 민간투자사업


대학가에 민간자본 유치 열풍이 불어닥친 건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이다. 건국대 민간투자(민자) 기숙사 '쿨하우스'를 시작으로 수도권 사립대가 잇따라 행렬에 합류하며 수많은 민자 기숙사가 세워졌다. 대학과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민자 기숙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우선 대학은 잃을 게 하나도 없었다. 자산운용사에서 알아서 사모펀드를 조성해 민간에서 투자금을 끌어들이고 건물을 공짜로 지어줬기 때문이다. 물론 2-30년 동안은 관리운영권을 민간사업자에게 넘기고, 대주단의 허락을 받으면서 운영을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민자사업이 완료되면 완전히 대학의 소유가 됐다. 투자자 역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대학이 망하지 않는 이상, 대학 기숙사가 망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이자율은 7퍼센트, 많게는 8퍼센트 이상이 제시됐다. 말 그대로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인 조건. 저금리 시대에 놓치면 안 되는 이상적인 투자였다.


문제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며 발생했다. 대부분의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며 학내 유동인구가 감소하고 기숙사 이용률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우려했던 리스크가 터졌고, 투자자들은 돈을 잃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투자자들이 잃은 돈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답은 대학이 투자자들과 체결한 계약서에 있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민자사업은 경악할 만큼 투자자들 쪽으로 기울어진 사업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투자에는 반드시 리스크가 있다고 배웠지만 민자사업은 아니었다. 사업이 잘못될 경우 투자자들의 부담액은 0원, 모든 손해는 학교와 학생들이 메꿔야 하는 말도 안 되는 계약이었다.


투자자들이 대학가에 불어닥친 코로나19발 재정난에도 안전하게 수익을 챙길 수 있었던 리스크를 떠넘기기 위한 '안전장치'를 여러 겹 마련해둔 덕분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민자사업의 구조를 알아야 하므로 세 겹의 안전장치가 무엇인지는 후술하겠다) 당시 대학들은 무료로 건물을 지어준다는 말에 혹해 위험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민자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대가는 10년이 지난 지금, 학생들이 치르게 됐다. 그런데 정작 학생들은 이러한 막돼먹은 사업에 반발하지 않는다. 우선 그 내용이 너무 어렵고, 대학들이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보통 20년 이상 초장기로 사업기간을 설정하기 때문에 학생 일인당 돌아가는 부담은 크지 않다. 나눠서 내기에 심리적 부담이 적다. 할부의 메커니즘이자, 민자사업의 핵심이다.


투자자들의 안전장치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민자사업의 주체와 시행 과정을 알아보자. 민자사업의 종류는 다양한데, 대다수의 사립대학에서 선택하고 또 위험성이 제일 큰 방식인 BTO(Build-Transfer-Operation)를 들여다보겠다. 과정은 이렇다. 우선 건물이 필요한데 돈은 없는 대학이 교육부에 민자사업 승인을 받는다. 교육부의 승인을 얻으면 자산운용사와 합작해 특수목적법인(SPC)를 설립하고, 민간 투자금을 끌어모은다. SPC는 모은 투자금으로 건물을 짓고, 준공한 직후 소유권을 대학에 기부채납의 형식으로 넘긴다. 그 뒤 대학으로부터 관리운영권을 넘겨받아 투자금 회수를 위한 사업을 시행한다. SPC는 보통 기숙사, 주차장, 상가시설을 운영한다. 학생들로부터 시설 이용료를, 입점한 상인들로부터 임대료를 받아 투자금을 상환한다. 상환을 모두 마치면 SPC는 해체되고 관리운영권이 대학으로 넘어오며 민자사업이 종료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투자금을 상환하는 주체가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4년 전 정보공개 청구소송에서 패소한 고려대가 민자사업 정보를 일부 공개했는데, 민자 기숙사 수익금 중 80% 이상이 투자금을 상환하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민자 기숙사가 비싼 이유가 오로지 투자금 상환 때문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민자 기숙사의 월세가 대학가 주변 원룸의 월세보다 비싸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대학알리미가 공시한 자료를 보면 민자사업을 시행하는 모든 대학이 민자 기숙사로부터 대부분의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이 같은 구조를 잘 이해하면, 현재 대학가에 파다한 민자사업이 왜 부당한지 알 수 있다.


민자사업은 설계 당시 물가인상률 등을 모두 고려해 예상 운영수입을 책정하기 때문에 대학이 망하지 않는 한 사업이 실패할 일도 없다. 이미 리턴(8퍼센트 이상의 금리)에 비해 리스크는 매우 낮은 상황. 하지만 투자자들은 그마저의 리스크도 지기 싫어했다. 세 겹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첫 번째 안전장치는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Minimum Revenue Guarantee: MRG)'다. 민간사업자의 실제 운영수입이 예상 운영수입의 75퍼센트에 미치지 못할 때, 대학이 이를 보전해줘야 한다는 조항이다. 마치 주주들의 손해를 회사가 대신 메꿔주는 일이나 다름없는, 매우 기이한 조항이다. 정확히 밝혀진 통계는 없지만 당시엔 MRG가 트렌드였다고 하니, 대부분의 대학에서 피 같은 등록금으로 MRG 비용을 대고 있을 게 분명하다.


두 번째 안전장치는 대환 대출이다. 대환(對還)이란 더 낮은 이자율을 제시하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투자금을 조기상환하고, 이자율 상환 부담을 더는 일종의 '대출 갈아타기'다. 대환 대출을 받으면 이자율이 달라지며 매년 수십 억 대의 차익이 생긴다. 이게 어떻게 투자자를 위한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을까. 대학들이 대환으로 발생한 차익을 어디에 쓰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알려진 정보에 따르면 민간은행, 한국사학진흥재단 등으로부터 저금리로 대환 대출을 받은 대학들은 차익을 코로나19발 손실을 보전하는 데 들이붓는 중이다. 이게 왜 문제냐면, 투자금 상환을 위한 돈 거의 대부분이 학생들로부터 나오는 만큼 대환 차익 역시 기숙사비 인하 등 혜택으로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민간사업자가 자기 손실 복구하는 데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유를 하자면 국제유가가 내려갔는데 주유소가 기름값을 그대로 받고 차익을 가로채는 일이나 다름없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힘든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돈을 챙겨 떠날 수 있으니 만사 오케이다.


마지막 안전장치는 실시협약 변경이다. 민자사업 기간을 연장해 연상환 부담을 줄이도록 하는 전략이다. 교육부가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승인을 잘 안 해준다고는 하나, 민간사업자가 '대출금을 못 갚겠다' '파산하겠다' 사정하면 받아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투자자들은 상환기간이 늘어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약속한 돈만 잘 받을 수 있으면 그럭저럭 참을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고통받는 건 학생들이다.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학생들이 비싼 기숙사비에 시달릴 텐데, 대다수는 왜 그런 요금을 내야 하는지도 모를 것이다. 최후의 안전장치도 실패하면 SPC는 파산하는데, 그 끔찍한 결말이 궁금하다면 부산대 사례를 검색해보길 바란다.


이렇게 다양한 안전장치들로 투자자들은 아무런 리스크 없이 하이 리턴을 챙길 수 있었다. 남은 5-6년 동안에도 코로나19가 얼마나 활개를 치던 투자자들은 약정된 고금리를 매년 어떻게든 상환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계약의 부당함을 인지하고 이에 맞설 수는 없을까. 두 가지 이유에서 불가능하다. 첫째, 민자사업은 실시협약을 체결하는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다. 건물을 먼저 짓고 돈을 나중에 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 당시 사립대학들을 감시·견제할 장치가 부족했기에 벌어진 참사였다.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둘째, 그럼에도 실시협약 변경과 같은 사안에 관해서는 학생들이 충분히 의견을 낼 수 있고 그래야 한다. 하지만 대학과 민간사업자는 비밀유지조항을 방패로 관련 정보를 꽁꽁 숨기는 실정이다. 실제 수익형 민자사업 표준 실시협약서 제83조 '비밀유지'는 운영·재정 등 민감한 정보에 대해 원칙적 비공개, 예외적 공개 허용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3월 민간투자법을 개정해 경영상·영업상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정보를 제외한 실시협약을 각 대학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했다. 표준 실시협약과 정반대로 원칙적 공개와 예외적 비공개를 천명한 것이다. 그럼에도 만자사업에 실패한 부산대 말고는 아직 공개한 대학이 없다.




민자사업의 부당함에 관해 두서없이 적었다. 올해 마지막 학보를 내는 과정에서 취재한 내용들인데, 내가 속한 대학에 국한된 내용을 빼고 보편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아쉽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공론화가 잘 안 됐다. 그래서 길고 어려우며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지만, 취재를 하며 문제라 생각한 부분을 기록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훗날 대학가에서 민자사업이라는 시한폭탄이 터지기 전,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될 거라 믿는다. 실천은 그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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