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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May 24. 2022

발렌시아에서 온 기자

진실 앞에 게으른 자의 최후


종군기자로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 헤밍웨이가 마드리드에서 겪은 일화다. 어느 날 헤밍웨이는 간밤에 발렌시아(스페인 남동부의 항구도시)에서 넘어왔다는 한 종군기자를 만났다. 그 기자가 소속된 신문사는 평소 헤밍웨이가 존경하던 신문사 중 한 곳이었다. 그 기자는 마드리드에 도착한 뒤 하루 종일 호텔방에 머물며 스페인 내전에 관한 기사를 썼다. 그리고 곧 미국으로 돌아갈 동료 기자에게 자신의 기사를 해외로 반출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부탁이었다. 내전 당시 독재 정권은 언론을 적극적으로 검열했고, 해외통신원도 검열 대상에 포함됐다. 정부 비판적인 기사를 반출하다 적발될 경우, 간첩 혐의로 총살될 수도 있었다.


발렌시아에서 온 기자를 믿을 수 없었던 헤밍웨이는 여기자 대신 검열국을 찾아갔다. 확인 결과, 기사는 순 엉터리였다. 기사는 마드리드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었다. '마드리드는 공포에 빠져 있다. 수천 구의 시체가 발견됐다' 수개월째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도시에서 흔히 나올 법한 보도였다. 하지만 헤밍웨이가 전한 실상은 달랐다. 헤밍웨이는 전선이 고착화되며 마드리드는 평온한 일상을 되찾았고, 어디에서도 공포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반박했다. 헤밍웨이는 기자에게 증거가 무엇이냐고, 시체 안치소에는 가봤냐고 물었다. 기자는 "어딜 가든 그런 증거가 보인다"며 답을 피했다. '얼굴을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헤밍웨이는 회상했다.


진실을 보도하려는 신문 기자가 검열에 부딪혀 국외로 추방될 가능성을 무릅쓰고 송출 시도를 할 수는 있다. 검열의 손이 미치지 않는 나라에서 자유롭게 기사를 쓰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 기자는 마드리드에 점만 찍고 가면서 모든 위험 부담을 남에게 넘긴 채 용감한 진실 폭로자라는 공로만을 채가려 했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마드리드에서 공포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기자에게는 너무 따분한 현실이었으리라. 『더 저널리스트: 어니스트 헤밍웨이』中


발렌시아에서 온 기자는 진실 앞에 게을렀고, 결과적으로 현실을 왜곡했다. 상식적으로,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도시의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을 게 당연했다. 언제 포탄이 집으로 날아들지 모르니 말이다. (실제 마드리드 시내의 호텔에서는 방이 내전 지역을 향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방값이 달랐다고 한다) 하지만 때때로 현실은 '당연한' 상식을 넘어선다. 마드리드의 일상은 평온했다. 오랫동안 도시에 머물러온 기자들은 그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고, 자신들을 거짓말쟁이로 매도하는 기사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화의 교훈, 즉 진실 앞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는 교훈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나는 최근의 한 사건을 통해 이를 곱씹게 됐다.




내가 오마이뉴스에 낸 강동구 주민자치회 기획이 지역 내에서 논란을 빚었다. 기획의 취지, 내용과는 별개로 발행하는 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고, 주민자치회 관계자들은 이를 근거로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 하지만 편집부는 기사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 이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주민자치회 측은 대응을 예고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거나, 명예훼손 등으로 고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대응은 오마이뉴스 측에서 맡겠다고 했지만, 무책임하게 던져놓고 나만 쏙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전 글에서 강동구 주민자치회 기획을 작성한 경위를 자세히 전했다. 잘못한 점은 반성하고, 잘못을 넘어선 비방으로부터 스스로를 변호했다.


앞선 글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이 있다. 기사 내 삽입된 멘트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감정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항의였고, 돌아볼 때마다 후회와 억울함이 올라오곤 한다. 항의를 한 사람은 주민자치회를 지원하는 민간 사업단 소속 지원관이었다. 기사 내 □□동 주민자치회 위원이 지난해 열린 정기회의의 분위기에 대해 "절차와 방법이 강압적이어서 실망했다"고 증언한 부분이 있는데, □□동은 그 지원관이 담당하는 동이었다. 기사가 발행된 뒤로 그는 □□동 주민자치회 위원들의 항의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는 내가 위원 한 명의 증언을 듣고 현실을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절차와 방법이 강압적이었는지,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는 지적이었다.


변명부터. 정황상의 근거는 충분했다. '자체회비' 안건은 강동구 내 18개 전동에서 상정됐고, 대부분 반발에 부딪혔다. 하지만 안건이 무산된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다수결로 안건 의결이 이뤄지는데, 자체회비 수합을 바라는 주민자치위원회(주민자치회의 전신) 출신 기성 위원의 비율이 높은 까닭이었다. (자체회비는 주민자치위원회 시절의 관행 중 하나다) 새롭게 주민자치회에 합류한 위원들은 굳이 매달 3만 원가량의 회비를 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고, 합당한 근거를 들어 반발했지만 목소리는 묻혔다. 신규 위원들은 당연히 절차와 방법이 강압적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을 테다. 실제로 나는 반대표를 던진 위원으로부터 증언을 받아냈다.


눈치빠른 독자라면 앞에서 헤밍웨이의 일화를 전한 이유를 눈치챘을 테다. 발렌시아에서 온 기자와 내게는 공통점이 있다.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 현장에 대한 기사를 썼다는 점이다. 그 결과 마드리드가 공포에 빠져 있다는 말과 □□동 회의 분위기가 강압적이었다는 말 모두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에 부딪혔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발렌시아에서 온 기자는 허위사실을 바탕으로 기자의 판단을 전했고, 나는 실제 주민자치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이의 증언을 전했다. 만약 발렌시아의 기자가 '마드리드의 상인은 "도시가 공포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라고 적었다면 헤밍웨이의 눈밖에 나지 않았을 것이다. 감상은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잘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취재가 부족했던 점은 반성한다. 주민자치회에는 50명의 위원이 있고, 다른 위원들의 생각은 달랐을 수 있다. 충분한 토의와 설득의 프로세스가 있었는데도 강압적이었다고 증언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정황상의 근거와 (내 수준의) 상식을 바탕으로 증언이 타당하다고 판단했고, 그대로 보도했다. 추가 취재와 반론 보장은 없었다. 이에 대한 지원관의 비판은 합당하며, 다른 위원들의 반론을 싣는 방향으로 시정이 이뤄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는 반론 보도 대신 멘트 삭제를 요구했다. 내용이 객관적이지 않으며 현실을 왜곡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의견이 다른 경우에나 반론이지, 이 경우에는 아니라고 했다.


발언 자체가 허위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일화로 돌아와서. 마드리드에 시체 수천 구가 널브러져 있다는 말은 시체 안치소를 확인해보는 방식으로 검증이 가능하다. 하지만 도시가 공포에 빠져 있다는 말은 그렇지 않다. 수 킬로미터 근방에서 정부군과 반군이 대치 중인 상황이었다. 헤밍웨이도 치안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고, 평온한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묘사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도시가 여전히 공포에 휩싸여 있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이런 형식의 주장은 애초에 진위 확인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동의 위원이 회의 분위기가 강압적이었다고 느낀 게 사실이라면, 그의 발언을 인용한 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문제는 주장의 타당성이다. 주장이라 해도 아무 주장이나 실을 순 없다. 따라서 근거들을 토대로 타당성을 검증해야 한다. 일부 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수결로 안건을 의결한 곳이 많다는 게 내가 제시한 근거였다. 다수결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고, 어떤 위원은 강압적이라 느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원관은 근거가 부실하다고 반발했다. 여기서부터 논의가 공회전했다. 그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주장인 만큼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정황상의 근거가 충분히 확보된 주장이니 삭제할 수 없고, 대신 반론을 달겠다고 했다.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오마이뉴스 측은 허구의 발언만 아니라면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지원관은 반론 보도가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부당한 소문을 퍼뜨리고 '너도 아니라고 하면 되잖아' 하는 건 옳지 않다며, 다른 합당한 조치를 요구했다. 옳은 지적이다. 단, 부당한 소문이라는 전제 하에 그렇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발언자를 포함해 일부 주민자치회 위원들에게 절차와 방법이 강압적으로 와닿았을 개연성은 충분했다. 반대를 했는데 묵살됐으니까. 없는 말을 만들어낸 게 아니며, '마드리드 시체 발견설'처럼 허와 실을 일도양단할 수 있는 발언도 아니었다. '의견이 다른' 문제가 맞았다. 따라서 반론을 덧붙여 균형을 맞추는 게 합당한 해결책이라 생각한다. 이를 거부한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변명을 늘어놨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답인데, 항변이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다. 물론 받아들여진다고 해서 내가 잘못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달라지지는 않을 테다. 나는 반론 가능성을 간과하고, 추가 취재를 게을리했다. 민감한 내용임에도, 오직 일부의 의견을 듣고 보도했다. 부족한 취재로 균형을 잃은 점을 반성하며, 이번 일로 불쾌했을 분들에게 사과드린다. 또 지원관과 연락하는 과정에서 다소 무례한 언행을 보인 점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한다. 이번 일을 단순한 해프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매일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이다. 그 파급력을 고려했을 때, 단 한 문장일지라도 쉽게 써서는 안 됐다. 펜의 무게 또한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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