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 주민자치회 취재 경위서
누구나 실패를 경험하고, 실패에서 배우며 성장하니, 너무 낙담하지 말아라. 주변에서는 이렇게 위로했다. 얼마간은 나도 그렇게 마음을 먹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됐다. 사건을 돌아볼 때마다 명치에 돌이 얹힌 듯 답답했다. 이 세상 모든 실패가 성장의 발판으로 삼자는 식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남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며 얻은 유해한 실패는 그렇게 넘길 수 없었다. 잘못한 부분은 반성하고, 사과해야 했다. 강동구 주민자치회 기획이 오마이뉴스에 발행된 지 열흘이 넘었다. 더 일찍 경위를 알려야 했으나, 당시에는 수많은 항의전화에 시달리며 분간이 흐려진 상태였다. 앙금이 가라앉은 뒤에야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잘못하지 않았는지 판단이 섰다. 반성의 차원에서 정리한 내용을 공개적으로 남긴다. 이번 일로 상심한 분들에게 먼저 용서를 구한다. 악의는 없었으나, 자질이 부족했다. 아래 항의전화 때 받은 질문을 토대로 경위를 정리했다.
① 강동구 주민자치회 취재 경위가 궁금하다. '상상나루래' 기획의 연장선인가.
암사동 상상나루래 취재를 시작한 건 4월 1일이다. 16일 상상나루래 ①편을 오마이뉴스에 송고했고, 19일 발행됐다. 지인에게서 한국일보 취재공모전에 대해 들은 건 8일이다. 상상나루래 취재 도중 알게 된 주민자치회를 주제로 기획을 준비해보기로 했다. 대략적으로 내용을 구상한 뒤, 16일 정식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이후 약 열흘 정도 취재를 진행해 총 세 편의 기사를 완성했다. 4월 24일 한국일보에 출품했고, 5월 5일 탈락 메일을 받았다. 주말 동안 퇴고해 오마이뉴스에 송고(5월 9일)했다. 같은 날 주민자치회 ①편이 발행됐다.
암사동 상상나루래 연재와 강동구 주민자치회 연재가 시기상 겹치다 보니, 연장선에서 읽힐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상상나루래 문제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강동구 주민자치회를 끌어들였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용상의 접점은 없으며, 말머리를 통해 두 기획을 분명히 구분했다. 상상나루래 기획은 암사1동만을 배경으로 한다. 주민자치회 기획에서 암사1동은 한 차례만 언급됐다. 상상나루래에 관한 언급도 아니었다. 단지 상상나루래 취재 과정에서 주민자치회라는 조직이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뿐이다.
② 강동구로만 범위를 한정하고, 마치 강동구에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먼저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진행한 지역(종로구 등)에도 문제가 있다는 건 자료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 전국 보편적인 문제인데 굳이 강동구로 범위를 한정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강동구는 지난해 주민자치회를 전동으로 확대하는 원년을 맞았다. 전환의 과도기에서 생기는 문제를 취재하기에 최적이라 판단했다. 둘째, 주민자치회 사업단 위탁계약이 6월 말 종료될 예정이었다. 지원체계의 큰 변화를 앞두고 있는 만큼, 그동안의 운영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앞으로 어떤 점을 개선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헤드라인과 편집자주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주민자치회 내부에서 벌어진 문제가 마치 강동구에만 해당되는 문제인양 편집하는 우를 범했다. 전국 보편적인 문제라는 부연설명 없이, 강동구 주민자치회를 전면에 내세워 마치 강동구에 새로운 문제가 터진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본문에서는 범위를 좁힌 이유와 당위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하지만, 기사를 최종적으로 다듬는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어떻게 비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파급력 욕심에 과장한 측면이 없지 않다. 반성하고 있으며, 재차 편집부에 수정 의사를 밝혔다.
③ 취재 당시 고지한 매체(한국일보)와 다른 매체(오마이뉴스)에 발행됐다.
한국일보 공모전에 탈락했을 때, 아쉬움보다도 기사를 완성하는 데 도움을 준 분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녹음 분량만 30시간에 달했다. 바쁜 와중에도 열정적으로 답을 해준 취재원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탈락이 확정된 순간 그들의 노력도 같이 묻혀야 했다. 또 취재 당시 대부분의 취재원은 기획 취지에 공감한다며 응원을 보냈다. 좋은 일 한다고, 주민자치회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취재 내내 그런 지지에 둘러싸이다 보니, 어떻게든 알려지면 좋은 기획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큰 고민 없이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다.
문제는 매체 변경에 대한 사전 고지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취재원들의 항의는 이 부분에 집중됐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순수한 학생인척 접근해 취재원을 '속였다'고 항의했다. 오마이뉴스에 실릴 걸 알았으면 취재에 응하지 않거나, 다르게 답변했을 텐데 당혹스럽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공모전에 출품할 목적이었으니 엄밀히 말해 속인 건 아니었다. 또 어떤 매체와 인터뷰하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진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인간적으로 잘못한 건 맞지만, 취재 윤리 위반인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언론사와 전문기관에 문의했다.
오마이뉴스 측은 취재 윤리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애당초 기사화를 전제로 취재했고, 실명·익명 게재 여부를 사전에 고지했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사전고지가 의무는 아니지만 ⓐ특정 매체에 싣는 게 인터뷰의 전제조건인 경우 ⓑ매체의 성격이 크게 다른 경우 동의를 구하는 게 맞다고 했다. 또 동의가 없었더라도 공익성에 따라 취재 윤리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실무적인 판단은 이렇지만, 취재원들에게 당혹감을 안긴 점에 대해서는 도의적인 책임을 느낀다. 미리 알리지 않고 매체를 변경한 점 사과드린다.
④ 전체적인 기사 내용을 설명해주지 않고, 악의적으로 발언을 편집·왜곡했다.
취재할 때 기사의 내용과 방향을 모두 밝힐 의무는 없다. 다만 취재원의 멘트가 왜곡되지 않도록, 본래 의도와 다르게 읽히지 않도록 확인할 의무는 있다. 강동구 주민자치회 사업을 이끈 관계자에게 멘트를 받았다. 일 년 동안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정착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유의미한 성과였다는 평가였다. 발언 자체를 왜곡하진 않았으나 맥락을 간과했다. 사업단 멘트 아래로 주민자치회 내부 갈등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 어떤 단체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운영주체의 문제로 귀결된다. 결과적으로 관계자들을 우회적으로 공격한 셈이 됐다.
원래는 주민자치회라는 껍질은 그대로 두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대립을 다룰 생각이었다. 주민자치회 제도와 운영 문제보다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신구 위원들의 갈등이 핵심이었다. ①편에서 지적한 문제는 단체 출신 위원들의 텃세, 자체회비를 둘러싼 신구의 갈등, 젊은 위원들에 대한 배려 부족이었다. 이어 발행된 ②편과 ③편에서도 중간지원조직 관련 논의는 등장하지 않는다. 맥락을 더 세심하게 살펴, 중간지원조직과의 선을 더 뚜렷하게 긋거나, 익명으로 처리했어야 했다. 사업단 측의 대응이 끝나는 대로 재차 수정을 요구하겠다.
⑤ 취재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항의 내용 중에서 가장 뼈아프게 반성하고 있는 부분은 취재원 보호에 대한 부분이다. 여전히 신원을 밝힐 수 없지만 부족한 익명 처리로 피해를 본 취재원들이 있다. 자신이 발언한 내용이 아닌데 괜히 의심을 받았다는 분들도 있었다. 내부고발의 성격이 강했던 만큼 더욱 철저하게 신원을 보호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주민자치회라는 조직이 얼마나 좁은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나는 한번 기사를 내고 떠나지만, 취재원들은 동네에서 활동을 지속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번 일로 주민자치회 내 견제의 목소리가 위축될까 우려된다.
취재원 공개에 관한 나만의 원칙이 있다. 실명이 어렵다면 성과 나이라도, 최소한 소속과 직급이라도 자세히 밝혀야 한다는 원칙이다. 취재원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보여야 기사 신뢰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이 익명성에 기대 취재원을 지어내기도 한다는 풍문에, 익명처리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탓도 있다. 하지만 완성도를 높이는 일에만 경도된 나머지, 제일 중요한 요소를 놓쳤다. 용기를 내 발언해준 취재원을 보호하는 일이 최우선이 돼야 했다. 조치가 부족했던 점을 반성하며,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았다. 배우는 학생인 만큼 더더욱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파급력과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취재원 보호에 실패했다. 촉박한 시간에 데스킹마저 없었다는 점이 변명이 될지 모르겠다. 항의전화를 건 어떤 분은 '몰상식한 기자'라고 나무랐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며, 더한 비난도 달게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자의 문제와 기사의 문제는 별개다. 기사 내용에 대한 반박을 넘어, 폄하의 말을 쏟아낸 분도 있었다. 노력하지 않고 대충 썼다는 말과 악의적인 의도를 품고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을 들으니 힘이 쭉 빠졌다. 공모전이라는 동인이 있기는 했지만, 정말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이 잘 정착하길 바라는 마음도 작지 않았다. 그 마음과 치열한 고민이 세 편의 기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다면 이 역시 내 필력이 부족한 탓일 테다. 늦게나마 전말과 진심이 잘 전해졌길 빈다. 앞으로도 잊지 않고 반면교사 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