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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Jul 07. 2022

공백기를 보내다가

글쓰기를 방해하는 마음들


요근래 발행이 뜸했다. 절필을 한 건 아니다. 꾸준히 단상을 정리해 블로그에 올렸고, 매일 일정한 분량을 정하고 쓰는 연습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집필에 대한 욕구를 충족해주지 못했다. 역시, 브런치를 안 하니 이 찜찜함을 해소할 길이 없다. 동시에, 언제부턴가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게 너무나도 막중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매일 몇 문장이라도 써야지, 다짐을 해도 막상 빈 화면과 마주 앉으면 한숨만 푹푹 나왔다. 대충 끄적이다 홧김에 지워버린 글이 열댓 편이 넘었다. 백 편에 넘는 글을 내왔는데, 갑자기 발행 버튼이 천근만근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서랍을 비우고, 글쓰기를 방해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돌아봤다. 그걸 정리하는 걸로 이 기나긴(그래 봤자 한 달이지만) 방황을 끝내려 한다.


먼저는 글이 쌓이면서 생기는 부담이 있었다. 예전에 오랫동안 관리해온 블로그를 폭파해버린 적이 있는데 그때도 이와 같은 마음이었다. '전보다 나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글쓰기를 멈추게 만든 거였다. 쓴 글의 양과 글쓰기 실력이 정비례하리라고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브런치에 백이십 편의 글을 발행했고, 매 글마다 많은 정성을 쏟았는데 필력은 그만큼 늘었는가. 자문해봤을 때 대답은 '글쎄'였다. 글을 얼마나 내든 출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 작가의 말처럼, 글쓰기에는 실력이 없고 퇴고만이 존재하는 까닭이었다. 초고는 늘 엉망이고, 따라서 퇴고의 고통도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딛고 설 토대 없이, 매번 지난한 퇴고를 해야만 좋은 글이 나온다는 글쓰기의 당연한 특성과 더 나은 글을 내야 한다는 부담이 펜을 무겁게 했다.


뜻밖의 보상에서 온 부담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가 제일 편하고 즐거웠던 순간은 아무것도 이룬 게 없을 때였다. 그때는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할 필요 없이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글쓰기와 관련해 몇 번의 보상을 받으며, '다음 글'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어려운 필기시험을 뚫고 언론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됐고, 학보사 취재기사로 대학기자상을 받았다. 필력으로 누군가에게 제대로 인정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방에 모아둔 상패와 상장들을 보면 뿌듯했지만, 한창 써야 할 시기에 그런 성취는 도리어 독이 됐다. 헤밍웨이도 너무 이른 보상은 작가를 망친다고 하지 않았나. 작가들이 왜 보상을 경계해야 하는지, 며칠 동안 빈 화면 앞에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뼈저리게 느꼈다.


브런치 구독자가 많아지고, 그들 중 현실의 나를 아는 지인도 포함되면서 글을 더 멀리하게 됐다. 글은 일종의 페르소나다. 실제 당신의 모습이 어떻든 글 속에서 보여지는 모습을 포장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가령 '현대인을 위한 월든'이라는 글에서 휴대폰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했다. 적어도 그 글 속에서 나는 휴대폰 사용시간을 잘 절제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중독이라고 해도 무방한 상태였다. 글과 다른 삶을 사는 데서 오는 죄책감은 거의 없었고, 있더라도 금방 잊혔다. 이처럼 글쓰기는 현실과 쉽게 괴리되며, 그 틈속에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숨길 수 있다는 점은 글쓰기의 동력이 된다. 독자들이 늘며 그 동력을 잃은 셈이었다. 글 뒤에 숨은 나를 꿰뚫어 볼 거란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커진 탓이었다.


공백기의 이유는 이밖에도 많다. 글자 강박증(이전 글 '강박증 환자의 글쓰기' 참고)도 말썽이었고, 코로나 후유증으로 생긴 브레인포그(친구는 그런 건 없다고 했지만)의 영향도 있었다. 디지털 허무주의(클릭 한 번에 사라질 SNS에 시간을 투자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유로도 발행을 향한 욕구를 막을 순 없었다. 그동안 써온 글이 다음 글을 써야 할 이유가 됐다. 글쓰기를 방해하는 마음들에 잠시 밀렸을 뿐, 달라진 건 없었다. 내게 필요한 건 청소기 먼지통을 비우듯 펜 위에 켜켜이 쌓인 부담을 털어내는 일이었다. 그래도 한동안 쉬어서인지 발행 버튼을 누르기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갈림길에서 무수히 많은 글을 지워왔지만, 눈 딱 감고 올린다. 당분간 완벽함보단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말을 되새기며 대충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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