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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Jul 28. 2022

법정에 선 사람들

방청이 취미인 인간


일반적으로 법원에 간다는 건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다행히 그동안에는 법원을 찾을 일이 없었다. 경찰서도 잃어버린 휴대폰을 되찾으러 가본 게 전부였기에, 법은 나와 무관한 일로 여겨왔다. 그러다 얼마 전 난생처음 법원에 들어가봤다. 물론 이번에도 잘못을 하거나 어떤 사건에 휘말려서는 아니었다. 재판연구원에 지원하는 동생이 서류를 내러 간다길래 따라갔을 뿐이다. 우중충한 날이었다. 교대역 10번 출구로 나와 긴 오르막을 올랐다. 법무법인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웅장한 법원 외관에 감탄하고, 법복과 양복을 입은 법조인들의 위엄 있는 모습에 감탄했다. 한창 구경하다 어느덧 재판이 열릴 시간이 됐다.


법정들이 모여있는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보안검색대 앞에 섰다. 혹시 가방에 이상한 게 들지 않았을까 순간 당황했지만 검사는 그리 엄격하지 않았다. 어차피 안에도 수감자를 호송하는 요원들이 많이 지나다니기에 난동을 부리기는 어려운 구조였다. 방청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그냥 재판이 진행 중인 법정 아무 데나 들어가서 앉으면 됐다. 별도의 절차는 없었다. 다만 증인 신분으로 출석했을 수 있기에 앞에 앉아 있는 직원이 어떤 경위로 왔는지 묻는다. '방청이요' 말하고 들어가면 그다음부터는 투명인간이 된다. 다만 재판이 비공개로 열리는 경우도 있어, 문을 열기 전 법정 전광판을 잘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어떤 법정은 뾰족한 장우산도 금지한다.


우리가 처음 들어간 법정에서는 특수폭행 관련 재판이 이어지고 있었다. 재판은 10분에서 20분 정도로 짧게 끝났다. 구속된 피고인은 보안요원과 수갑을 차고 들어왔고, 불구속된 피고인은 방청석에 함께 앉아있다가 차례가 되면 나갔다. 방청석에 어떤 사람이 울고 있길래 폭행사건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기소된 피고인이었다. 무언가 억울한 사연이 있는 표정이었다. 여러 사건 중에서 욱해서 절친 동료를 폭행한 죄로 징역형을 받게 된 일용직 노동자의 이야기와 만취한 손님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나 법정에 서게 된 노래방 종사자의 이야기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재판을 주관하는 판사의 태도, 표정은 대리석보다 차가워 보였다.


동생은 점심을 먹고 돌아갔다. 오후 재판은 혼자서 봐야 했다. 재판은 오전보다는 오후에 더 볼 게 많은데, 보통 증인 신문이 오후에 있는 까닭이다. 증인 신문은 법정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만큼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대본 없이 진행하는 절차이기에 (나머지 변호인, 검사 측 의견진술은 대부분 서면으로 진행됐고, 법정에서는 간략한 요지만 말하고 끝났다) 예상외 전개가 이어질 때가 많았다. 어떤 증인은 중요한 순간에만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말하며 검사를 난감하게 했다. 어떤 증인은 건들거리며 판검사에게 말대꾸했는데 그 모습이 영화 캐릭터처럼 독특했다. 양쪽이 증인으로부터 유리한 진술을 끌어내려고 분투하는 모습에서 비장함이 전해졌다.


오후 내내 법정을 돌았다. 열댓 개의 재판을 방청했다. 특수폭행, 코인 사기, 미성년자 성폭행, 마약, 국가보안법 위반 등등. 원래 이런 건지, 운이 좋은 건지 다양한 재판을 볼 수 있었다. 또 이날은 한동훈 검사를 독직폭행한 혐의를 받는 정진웅 검사의 항소심 재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법원은 바쁘게 돌아갔고, 그만큼 볼거리도 많았다.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살인 재판이었다. 한 젊은 남자가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가족을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변호인이 나와 피고인 입장에서 사건을 정리했다.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살인은 우발적이었고 참작의 여지도 많았다. 남자는 사과문을 읽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진심으로 후회하는 듯했다.


법정에 선 사람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저들은 드러난 모습처럼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범행 순간으로 돌아갔을 때 다른 선택을 내릴까. 만약 그렇다면 법 앞에 설 때의 두려움을 사람들이 미리 알게 할 순 없을까. 이날 법정에 있던 시간은 반나절이 채 안 됐지만,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날것의 감정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높이만 다를뿐 저마다 벼랑 끝에 서 있었고, 더 잃을 게 없는 사람은 굳이 감정의 스펙트럼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인간의 마음과 본성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법정에 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기자, 작가가 되기 위해선 '인간공부'가 필수적이다. 재판 방청도 괜찮은 취미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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