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우주 Jul 25. 2022

테린이가 되어봐요

진정한 테니스의 매력을 맛보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른 새벽 두툼한 테니스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서는 건 아빠였다. 매일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기계음에 일어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잠들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반대가 됐다. 현관 불을 밝히는 건 내 임무가 됐다. 나는 같은 시간에, 같은 테니스채를 들고, 같은 자전거를 밀며 집을 나선다. 반대로 아빠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잠이 부쩍 많아졌다. 그래도 내가 집에 돌아오면 출근 준비를 하다 말고, 감동한 얼굴로 연습이 어땠는지 묻는다. 아들과 테니스 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해왔던 아빠였다. 집을 나서 향하는 곳은 탄천공원 어느 다리 밑에 마련된 벽치기 연습장이다. 이 주변에 사는 '테린이'라면 어디인지 모를 수 없다. 연습은 간단하다. 벽을 향해 공을 치고, 돌아오는 공을 받아치며 자세를 익히고 또 익히는 게 전부다.


테니스 레슨을 받은지 반 년이 넘었다. 아직은 어디 가서 '테니스 친다'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그래도 구력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좀 치는 수준인데, 초등학생 때 짧게 테니스를 배워놓은 덕이었다. 아빠는 아들과 테니스를 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일찍이 내 손에 채를 쥐어줬다. 하지만 한창 잠이 많을 나이에 새벽마다 일어나는 건 엄청난 고역이었다.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나가기 싫었다. 특히 레슨이 끝나면 쭈그려 앉아 수십 개의 공을 담아야 했는데, 이게 결정적으로 테니스를 그만두게 된 원인이 됐다. 평생 테니스를 안 칠 줄 알았지만, 역시 DNA는 속일 수 없는 법. 지난해 말, 아빠를 졸라 레슨을 등록했다. 다시 배우려니 몸이 잘 안 따라줬지만 금방 예전의 감을 되찾았다. 진정으로 테니스에 입문하는 순간이었다.


전에는 몰랐던 테니스의 매력. 우리는 왜 테니스를 칠까. 우선 있는 힘껏 공을 때리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는 건, 누구나 공감하는 테니스의 매력이다. 공이 라켓 정중앙에 맞아서 쭉 뻗어갈 때 드는 쾌감은, 그걸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잊을 수 없다. 다양한 자세를 기반으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보통 테니스를 배우는 순서는 스트로크, 발리, 서브·스매쉬, 슬라이스 순이다. 더 많은 자세를 연마할수록 다채로운 플레이가 가능해진다. 프로 레벨의 경기를 보면 이해가 쉽다. 하지만 테니스의 진정한 매력은 따로 있다. 테니스를 매개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테린이 매칭 커뮤니티에 들어가 경기를 뛰면서 알게 된 즐거움이다. 주로 네 명이서 경기를 하는 만큼, 친해지지 않기가 더 어렵다.


내가 가입한 테린이 오픈채팅방에는 150명이 들어와있다. 그중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멤버는 어림잡아 오십 명이 넘는다. 이미 서로 친해진 멤버도 있지만, 처음 오는 사람도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다. 오픈채팅방의 주요 기능은 매칭이다. 누군가 주변 테니스 코트를 잡고 일정란에 올리면 시간이 되는 멤버들이 선착순으로 '참석'을 눌러 참여하는 시스템이다. 주로 복식으로 진행되기에 네 명이 모이면 마감된다. 예약을 했으면 시간에 맞춰 코트를 찾아가 즐기면 된다. 나는 이제까지 세 번 매칭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실력이 낮아서 게임을 망칠까봐 걱정도 했다. 하지만 애초에 구력이 낮은 사람들끼리 모이다 보니 다들 실력은 고만고만했다. 다양하게 어울리다 보면 특히 경기가 재밌는 날이 있다고 한다. 그날 같이 친 사람들과 계속 치면 된다고.


골프 다음으로 테니스가 유행하고 있다는 글을 읽었다. 주변에 실내 테니스장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라켓 손잡이가 비죽 튀어나온 가방을 멘 또래들이 많이 보이는 걸 보면 정말 그런 듯하다. 내 몇 안 되는 친구들 중에도 세 명이나 테니스를 배우고 있거나 배울 곳을 알아보고 있다. 하지만 그 열풍에 비해 테니스를 꾸준히 즐기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진입장벽이 높은 까닭이다. 경기를 뛰려면 공을 잘 넘기는 건 기본이고, 서브와 발리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단계에 도달하려면 최소 반 년이 필요하다. 그때까진 던져주는 공을 받아치는 훈련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너무 지루해 포기한다고.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오며, 겪어본 바 낙이 아주 크다. 따라서 입문을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눈 딱 감고 반 년만 배워보길, 그 즐거움을 맛보길 권한다.


작가의 이전글 질투하는 이유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