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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Oct 03. 2022

출퇴근 광역버스 대란

목숨을 건 도박, 방치된 시한폭탄


멀리 붉은색 버스가 보인다. 내가 타야 하는 버스다. 하지만 출입문 쪽에 누군가의 등과 엉덩이가 보인다. 그렇다. 이번에도 만석버스다. 아저씨는 손을 휙휙 흔들더니 정류장을 곧장 지나쳐 버린다. 다음 버스를 타라는 뜻이다. 벌써 몇 대째 그렇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설레는 개강 첫날, 지각은 확정이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 갈 수나 있을지 걱정된다. 혹시나 해서 여유롭게 나왔는데 의미 없게 됐다. 정류장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다음 버스가 정류장에 섰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출입구로 몰려들었다. 다행히 나는 앞쪽에 있었기에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내 뒤의 아주머니는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다가 포기했다. 버스는 매정하게 문을 닫고 다음 정류장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내 등과 엉덩이를 출입구에 전시한 채.


우스꽝스럽게 묘사했지만 과장은 없다. 이미 출퇴근 광역버스 대란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의 주목도 받고 있는 일이다. 사당역 앞에는 대기줄만 200m 늘어질 정도라고 한다. 넉넉 잡아도 200명 정도, 배차 간격을 고려하면 적어도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사실 출퇴근 광역버스 대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 대란도 어느 정도 예고된 일이었다. 일단 2년 동안 이어진 팬데믹 속에서 광역버스 대수가 줄었다. 엔데믹에 접어들고, 재택근무가 줄며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늘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기름값이 폭증하며 직장인들은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학이 전면 대면 개강하며 대중교통을 찾는 학생들이 추가됐다. 증차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당장은 어렵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현재 경기도 광역버스는 '준공영제(공공버스)'로 운영되고 있다. 버스 노선은 경기도가 소유하고, 버스는 민간운수업체가 운영하는 구조다. 정책자료집과 인터뷰를 종합하면, 공공버스 수익구조는 이렇다. 일단 우리가 내는 버스비는 모두 경기도로 흘러간다. 경기도는 수리비와 기름값, 인건비 등을 업체에 지급한다. 경기도가 일종의 원청인 셈이다. 흑자는 비수익노선 적자를 보전하는 데 쓰인다. 모자라면 시도 예산으로 메꿔준다. 경기도는 준공영제를 도입해 민간운수업체의 무분별한 노선 통폐합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 단점도 분명하다.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탄력적으로 배차를 조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경기도가 증차를 하려 해도, '차량총량제' 같은 복잡한 장치들에 또 제동이 걸리고 만다.


출퇴근 대란이 방치되는 동안, 시민들은 천장에 달린 손잡이에만 의지한 채 질주하는 버스에 몸을 맡긴다. 고속도로 전용차선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는 버스가 충돌을 하거나 급정차를 할 경우 앞으로 튕겨져 나갈 위험이 크다. 실제 몇 년 전 한 여고생이 급정차로 넘어지며 요금통에 머리를 부딪혀 전신마비를 입은 일이 있었다. 시내에서 그다지 빠르지 않은 속도로 운행하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고속도로는 훨씬 위험하다. 속도 변화 폭이 큰 건 물론, 뒤에서부터 도미노처럼 넘어지며 무게가 누적될 수도 있다. 물론 오늘도 수천 대의 버스가 안전수칙을 준수하며 문제없이 운행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 사고 없이 운행돼 왔더라도, 당장 내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입석을 방치하는 동안 발생하는 모든 인명사고는 인재(人災)일 수밖에 없다.


얼마 전부터 승차 정류장을 바꿨다. 시간은 오래 걸려도, 굳이 회차지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버스를 탄다. 그렇게 하면 앉아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손잡이를 잡는 대신 신문을 볼 수 있고, 옆사람 눈치를 보는 대신 책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안심이 된다. 사고가 나도 머리를 부딪히는 정도로 끝낼 수 있다. 안전벨트를 하면 그마저도 피해 갈 수 있고.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선 채로 버스를 탄다. 좌석 옆면에 엉덩이만 간신히 붙인 채 양손으로 휴대폰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사시 손잡이를 잡을 수나 있을까. 입석은 목숨을 건 도박이자, 방치된 시한폭탄이다. 광역버스 입석 운행은 이미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정책이 마련된 건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였다. 역사는 기억되거나 반복된다고 하는데. 결국 사고가 터져야 우리는 우리의 불감함을 깨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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