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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Mar 22. 2023

죽음이 일상인 쪽방촌에서

수습기자가 만난 진짜 이야기


한밤중에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도시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1월 중순,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가 불어닥친 그날 밤도 그랬다. 수습기자 교육의 일환으로, 밤에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신문에 쓸 만한 이야기를 동냥하고 있었다. 보통은 아무런 이야기도 얻지 못할 때가 많고, 그날도 별 수확이 없을 줄 알았다. 휘황찬란한 빌딩들이 빼곡한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허름한 쪽방촌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면이 유리로 둘러싸인 세련된 경찰서 건물로부터 걸어서 1분도 걸리지 않는 쪽방촌에서,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신문에 실을 만한 이야기를 얻으려 경찰서를 돌았지만, 정작 세상에 전해져야 할 '진짜 이야기'는 경찰서 뒤편에 있었다.


정일영(가명) 씨를 처음 만난 건 자정이 다가올 무렵, 서울 중구의 한 경찰서 앞에서였다. 정 씨는 만취한 노숙인을 집으로 돌려보내려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 경찰관과 정 씨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가득한 걸 보니 꽤 오래 사투를 벌인 듯했다. 정 씨는 저 노숙인이 갑자기 자기 집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고 했다. 그래서 주거침입 현행범으로 붙잡아 직접 경찰서로 끌고 왔다고 했다. 노숙인은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고분고분 말을 따르다가도 다음 순간 회까닥 돌변해 사람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경찰서에서 한 시간 넘게 난동을 부린 노숙인은 결국 출동한 경찰관들 손에 붙들려 인근 파출소로 호송됐다. 정 씨는 오늘은 피곤하다며,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한 뒤 연락처를 남겼다. 그 일은 금방 잊혔다.


정 씨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뒤였다. 정 씨는 다짜고짜 자신의 얼굴과 이름이 신문에 실렸다며 내가 그런 건지 물어왔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구청이 발간하는 구정소식지 '이 사람을 조심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정 씨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고 한다. 정 씨는 자신은 동의한 적이 없다며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문제의 정소식지는 구할 수 없었다. 정 씨는 자신을 찾아오면 어디서 볼 수 있는지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정 씨와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알지 못했다. 한겨울에도 벌레가 들끓는 쪽방촌과 그곳에서 수없이 반복돼온 고독한 죽음들. 정 씨가 신문에 실린 이유가, 그가 얼마 전 출소한 살인 전과범이었기 때문이란 사실도. 모두 안개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쪽방촌은 경찰서 바로 뒤편으로 이어지는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경사가 가팔라 중턱부터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멀리서 손을 흔드는 정 씨가 보였다. 주변에서 음료수라도 사려 했지만 언덕 위에는 흉물스러운 건물 두 채만 떡하니 서 있었다. 정 씨는 추우니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며 건물 안쪽으로 종종걸음했다. 정 씨를 따라 바닥이 안 보이는 어두운 계단을 오르고 어깨를 비틀어야 지날 수 있는 좁은 복도를 지났다. 2층에는 발로 차면 푸석거리며 부서질 듯한 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마치 오래 버려져 방치된 감옥 같았다. 정 씨가 그중 하나를 열어젖히자 말린 건어물 냄새와 비슷한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거절할 틈도 없이 한 평 남짓한 비좁은 방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정 씨가 방바닥 전체를 덮고 있는 솜이불을 발툭툭 치자 아래서 자고 있던 할아버지가 신음소리를 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성한 이가 없고, 발톱마다 굳은 때가 엉긴 걸 보니 그가 불쾌한 냄새의 원인인 듯했다. 그는 현관문 쪽 벽에 몸을 기댔고, 정 씨는 안쪽 벽 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방 한가운데 아빠 자세로 앉을 만한 공간이 생겼다. 나는 아무것도 몸에 닿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앉았다. 방바닥에는 설거지를 안 해 음식물 찌꺼기가 남은 그릇들과 정체 모를 쓰레기들이 쌓여 있었다. 그릇들 사이로 새끼손톱만 한 날벌레가 뽈뽈대며 기고 있었다. 정 씨가 담배를 권했다. 거절하자 정 씨는 혼자 불을 댕겼다. 두세 모금 정도 내뱉었을 때 방은 이미 매캐한 연기로 가득했다. 정 씨가 재를 털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뭐가 궁금해요?"


정 씨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이곳에 사는 노인들은 문을 잠그고 살 수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문을 잠갔다간 한참 뒤에 발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노인들은 오래 방치돼 부패한 시체들을 많이 봐왔다. 이들은 죽음 자체보다 그 이후가 더 두렵다고 말한다. 매일 아침, 복지사와 목사가 각 방을 방문해 상태를 점검한다. 잠겨있으면 문을 몇 번 두들기다 돌아간다. 외출을 한 건지 문 너머에 시체가 있는지 저들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발견되기 위해 문을 항상 열어놔야 했고, 노숙인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쪽방촌에는 고독한 인생이 모인다. 이곳에서 고독하지 않은 죽음은 없다. 어차피 이 한평 남짓한 좁은 방에는 곁을 지킬 자리도 없다. 대신 죽음에 순서가 있다. 작년에는 3층 살던 형님, 저번달에는 태극기, 며칠 전에는 이 방에 살던 ○이였나. 그리고 다음... 바로 저 놈!


정 씨가 할아버지를 향해 손가락을 튕기며 "다음은 너야 이놈아"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희미한 미소를 띠고는 "나는 아직 팔팔해"라고 답했다. 하지만 짧은 몇 마디에도 끓어오르는 가래에 고통스러워했다. "내가 오랫동안 봐와서 잘 아는데 저 놈은 잘난 척하다가 금방 갈 놈이야" 할아버지역공을 펼치자, 정 씨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장히 비현실적인 대화였다. 누가 죽는다는 말 마치 어릴 적 술래잡기에서 "너 술래야"고 하듯이 가볍게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상이 죽음 같은 이 허름한 쪽방촌에서는 죽음마저 일상이 된 듯했다. 들은 기억을 되짚으며 누가 언제 몇 호실에서 죽었는지 읊기 시작했다. 어떤 추억도, 그리워하는 기색도 없이 날짜와 장소와 이름만 오르내렸다. 이곳에서 죽음의 무게는 젊은 기자가 감당하기에 너무 가벼웠다.


한바탕 설명이 끝난 뒤, 정 씨는 자신이 살인 전과이며 얼마 전 출소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주먹으로 때려 죽였는데,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 친구 마누라한테 음담패설을 날리는 놈을 보고 욱했다고. 정 씨는 담배를 태우며 험난하고도 험악했던 과거를 풀었다. 원래 목사 안수를 받으려 했으나 인생에 큰 불행이 닥치며 의욕을 모두 잃고, 이런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내용이었다. 겉으로 온화해 보였던 정 씨에게, 그런 과거가 있을 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충격을 받은 터라,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정 씨는 이곳은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자신이 이곳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 같다고. 정 씨의 왼손 손등에는 죽을 사(死)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다시는 이 손으로 사람을 때리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새겼다고 했다.


정 씨의 아들은 국립 현충원에 묻혔다고 한다. 군대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정 씨는 액정이 산산조각 난 휴대폰을 한참 뒤져 현충원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냈다. 똑같이 생긴 수백 개의 묘지 중에서 아들이 묻힌 곳을 단번에 찾아냈다. 사진을 보여준 뒤로 정 씨는 부쩍 말이 없어졌다. 담배가 떨어지며 대화도 끝이 났다.


정 씨의 이야기는 결국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 범행 사실이 알려지면, 오히려 쪽방촌이 범죄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럼에도 정 씨와 만났던 현장, 나눴던 대화는 오래 마음속에 남을 듯하다. 오늘도 고독한 죽음을, 빨리 발견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다리는 사람들. 언젠가 그들의 죽음의 무게가 달라질 수 있도록 글을 쓸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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