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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Jan 23. 2023

언론고시를 돌아보며

수습기자의 따끈따끈 언론사 입사시험 후기


수습기자가 되고 전형후기를 써보려니 왜 그렇게 정보글이 없었는지 이해가 된다. 언론판이 그리 넓지 않고 알 만한 사람은 서로 다 알다 보니 부끄러운 거다. 또한 짧은 기간이지만 굉장히 실력 있는 기자들을 만나다 보니 내게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나 위축되기도 한다. 언론사 입사시험을 준비한 기간도 길지 않았다. 체계적으로 전략을 짜며 준비했다면 해줄 말이 많았겠지만, 나도 이게 맞는지 전전긍긍하다가 붙은 케이스다. 결과론적으로 맞다는 걸 알게 됐을 뿐, 처음부터 확신을 갖고 준비해 성공한 이들과는 궤적이 다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정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접은 적이 없다. 내가 언론고시를 준비할 때 제일 아쉬웠던 건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토막글이라도 동기부여를 얻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이 글도 그런 글이 됐으면 좋겠다.


①언론사 입사시험은 '고시'일까

대학 커뮤니티에 "언론사 입사시험을 왜 고시라고 부르냐"는 글이 올라온 적 있었다. 별로 어렵지도 않은 시험이 '고시'라고 불릴 자격이 있냐는 게 글쓴이의 요지였다. 글은 꽤나 많은 공감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유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우선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학생이 줄고, CPA나 LEET를 준비하는 학생이 늘어난 영향이라 생각했다. 또한 종류가 달라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절대적인 공부량은 전통 고시류가 훨씬 많은 게 맞다. 동생이 비스무리한 시험을 봤는데, 같은 고시로 불린다는 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불리는 건, 형체가 없는 시험이 주는 막막함 때문일 거다.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라는 건지. 정해진 범위가 없고, 진도가 없다. 공부한 게 쌓이지도 않는다. 중간 세이브가 없는 RPG게임을 하는 기분이다.


언론사 입사시험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준비 과정도 천차만별 다르다. 명확한 커리큘럼이란 게 없고, 그냥 알아서 이런저런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정식 루트라 할 만한 게 몇 가지 있긴 하다. 모 언론사에서 진행하는 논술작문 수업을 들을 수도 있고, 아예 대학원처럼 운영되는 저널리즘 아카데미를 다닐 수도 있다. 나도 막 만들어진 조선저널리즘 아카데미를 잠깐 다녔다.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 비율을 따져보면 혼자 준비해야 할 부분이 훨씬 많다. 따라서 언시판에서는 이런 전형 후기나 토막 정보글의 중요성이 커진다. 참고를 하든 반면교사로 삼든, 이정표 자체가 귀한 허허벌판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미리 일러둘 건, 이 전형 후기는 채용황금기라 불린 2022년을 기준으로 작성됐다. 예년 같았다면 나도 붙을 수 있었을까, 확신은 서지 않는다.


②풀리지 않는 문제, 전공·학점·토익

언론사 입사시험을 준비하면서 한 번쯤은 묻게 되는 게 전공·학점·토익의 중요성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게 면접에서 이와 관련한 지적을 들어본 이들이고, 중요하지 않다는 쪽은 그 반대다. 경험으로만 판단해보자면, 우선 학점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난해 하반기에 총 8개의 서류를 냈고, 이중 7개에 붙었는데 서류에 적었던 학점이 2.56이었다. 서류는 문제없이 통과했고, 면접에서도 "공부를 아예 안 했네요, 허허"라며 농담거리로 삼을 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물리학과'라는 특이정성이 단점을 보완했을 수도 있겠으나 인문계 출신 중에서도 학점 낮은 사람들이 많았다. 토익은 잘 모르겠다. 나는 점수가 괜찮았다. 다만 들어보면 일정 점수(900점 정도) 보다 낮으면 면접 도중 질문이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더라.


전공의 중요성도 사람마다 말이 다른데, 나는 특이전공으로 수혜를 받은 입장이라 중요하다고 말하겠다. 나는 언론이 '배경의 다양성'을 중시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세상만사를 다루기 때문이다. 가령 메르스 사태 당시 많은 언론사가 '음압 병실'을 '음파로 공기를 항상 병실 안으로만 흐르게 하는 병실'로 오보를 낸 적 있다. 보도를 만들고 검수하는 과정에서 이공계 전공자가 있었다면 금방 잡을 수 있었던 오류다. 의료나 법학 관련 활동을 한 지원자들을 우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학벌은 합격자 통계만 보면 중요하다고 여길 수 있는데, 인풋 비율을 모르니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모 방송사에서 학벌 블라인드로 지원자를 뽑았는데 오히려 SKY 출신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던 걸 보면 그냥 지원 비율이 높다고 봐도 될 듯하다.


③서류전형을 위한 '필살기' 만들기 

취업 관련 노하우를 전하는 유튜버 '면접왕이형'이 항상 강조하는 내용이 있다. 자신만의 필살기를 만들고, 전형과정 중에 계속 우려먹으라는 조언이다. 수많은 지원자 중에서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나는 모든 지원서에서 내가 탐사보도에 강한 사람이라고 박박 우겼다. 물론 나름의 근거도 있었지만, 해봐야 대학언론사 경험밖에 없는 애송이가 뭘 알겠나. 그래도 이거 하나로만 밀어붙이니 글도 점점 나아지고, 서류 합격률도 만족스럽게 나왔다. 단순히 내가 이걸 잘한다고 어필하기보단, 언론산업이 나 같은 인재를 필요로 한다는 쪽으로 설득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나는 인터넷이 발달하며 정보전달보다는 깊이 있는 보도를 원하는 독자들이 늘고 있으니, 나 같이 탐사보도 잘하는 인재가 앞으로 중요해질 거라고 우겼다. 


언론인을 꿈꾸게 된 계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특히 '물리학과인데 왜 기자를...' 류의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때마다 학보사 활동을 하다 보니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이란 걸 알게 됐다고 답했다. 엄청 웅장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반면 실패 경험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언론계 이슈가 '주니어 기자들의 퇴사를 어떻게 막을지'인데 실패를 극복한 과정을 풀며 단단한 멘탈을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 브런치 글에서도 다뤘던 실패담을 적었다. '법적다툼까지 갈 뻔했던 경험이었는데, 이런 경험을 하고도 여전히 언론인을 꿈꾼다'라고. 덧붙여 대부분 언론사가 인턴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 어렵게 뽑았는데 안 맞는다고 나가버리는 지원자들이 많아서라고. 퇴사 이슈를 늘 염두에 두면 좋겠다.


④필기시험과 인적성검사 준비

언론사 입사시험 내내 인적성검사는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다. 절반도 못 풀 때가 많았다. 그런데 어떤 시험은 붙고 어떤 시험은 떨어졌다. 반면 글을 못 썼는데 붙은 경우는 없었다. 결국에는 필기시험이 당락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한다. 인적성을 못 봐서 떨어졌다는 건 핑계라고 생각하고, 나 역시 필기시험에서 낙방할 때마다 내 부족한 필력을 탓했다. 따라서 NCS 같은 책을 사서 공부하기보다는, 그 시간에 최신 이슈를 하나 더 팔로업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위험한 추측이지만, 필기시험에 이런 전형을 끼워 넣는 건 이의제기를 막기 위함인 듯했다. 어차피 인적성 시험은 시간 안에 푸는 게 불가능하도록 설계된 만큼, 지원자에게 확실한 탈락의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적성 때문이겠지' 생각하며 필기 결과에 무조건 승복하도록 만드는 거다.


논술 시험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를 나열하면 된다고 들었다. '내가 이 주제를 이만큼 공부했고, 알고 있는 내용을 다 담지 못해 너무 아쉽다'라는 뉘앙스를 풍기면 글은 좀 부족하고, 문단 간 연결성은 부족해도 무난히 붙었다. 반면 관련 지식이 부족하면 '글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어김없이 탈락했다. 논술 쓸 때도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양한데, 정석은 먼저 이슈를 정리하고 원인과 대안으로 들어가는 구성이라 한다. 나는 도입에 논제와 연관된 재밌는 비유, 일화를 넣고 끝에 다시 비유를 사용해 수미상관으로 마치는 구성을 주로 사용했다. 어떤 논제에도 이 구성을 쓸 수 있도록 탈무드와 이솝 우화 수십 편을 외웠다. 효과는 잘 모르겠지만 항상 눈에 띄는 글을 낸 건 확실하다. 한편 작문은 정말 글발이 맞다고 한다. 브런치가 큰 도움이 됐다.


⑤실무전형 '야마'를 독창적으로

언론사 실무전형 시험을 정석으로 본 적은 없다. 여기서 정석이라 함은, 언론사 공채 중 일정 시간을 주고 한 편의 기사를 완성하게 하는 시험을 말한다. 대신 인턴 과정 중 3일 연속 서로 다른 주제를 주고 르포기사를 써내라는 평가를 받은 적은 있다. 결과가 좋았는지 나빴는지도 모르지만 나름 내 전략이 괜찮았다고 믿는다. 일단 실무전형의 목적은 탄탄한 기사를 완성하는 능력보다 얼마나 독창적으로 야마(주제)를 잡을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함이라고 판단했다. 어차피 기사 작성 능력은 입사한 뒤로 매일 연습하면서 늘게 돼 있다. 하지만 독특한 주제를 떠올리는 능력은 한 사람의 배경지식과 경험, 사고방식에 기인하고, 이는 노력을 한다고 쉽게 얻을 수 없다. 곧 죽어도 남들과 다르게 주제를 잡자고 다짐하고 3일 내내 평가에 임했다.


좋은 예시 중 하나가 '물가'다. 만약 당신이라면 물가라는 주제를 듣고 어떤 현장으로 뛰어가겠는가. 대부분 대형마트를 떠올렸을 테고, 일부는 전통시장으로 향했을 테다. 더 좋은 현장이 많지만, 시간이 매우 촉박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나는 물가가 오른 항목 중 식용유의 상승률이 제일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들어가 식용유를 검색하고 빠르게 훑었다. '폐유(폐식용유)'라는 단어를 발견했고, 곧바로 폐유수거업자들에게 전화를 돌려 3시간 동안 동행 르포했다. 식용유값이 오르면서 폐식용유를 취급하는 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조명했다. 직접 무거운 말통을 옮겨보고, 폐유값을 흥정하는 장면을 본 덕에 생생한 기사를 낼 수 있었다. 남들이라면 어떤 걸 쓸지 상상해보고, 한 번 비틀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⑥쫄보는 면접을 어떻게 보나

언론사 입사시험 모든 전형을 통틀어 제일 어려웠던 게 면접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자신 없다. 온몸이 덜덜덜 떨리고 머릿속이 하얘지다 못해 눈앞에 반짝이들이 내려오고, 귀에 울릴 정도로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따로 팁이라 할 만한 게 없다.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예상 질문과 답변을 뽑아 대비했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는데도 매번 준비하지 못한 질문이 들어왔고, 말을 절었다. 답변을 잘한 경우도 물론 있다. 내가 서류에 적은 내용에 대해 질문이 들어오면 혀가 풀리면서 대답을 곧잘 해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내용이니 말이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할 때, 쫄보들이 면접에서 선방하기 위해서는 서류 전형에서부터 자신을 부풀리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팁 아닌 팁은 면접 전 '인데놀'을 먹는 이들을 몇 명 봤다. 효과가 아주 좋다고.




언론사 입사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이 점점 줄고 있다고 한다. 앞서 말했듯,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관련 정보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단계를 밟아야 할지 너무 막막하다 보니 고민만 하다가 좀 더 준비 방법이 잘 드러나 있는 길로 빠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그나마 학보 경험을 바탕으로 비비다가 여기까지 왔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면 얼마나 막막할까. 수습기자로 바쁜 매일을 보내는 중에 짬짬이 이런 글을 쓴 이유 중에는 이렇게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는 이유도 있었다. 물론 여느 조언 글이 그렇듯 한 개인의 매우 좁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만큼, 적당히 걸러들으며 참고만 하면 좋겠다. 혹시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작가에게 제안하기'로 연락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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