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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Jul 06. 2024

시민의 길, 기자의 길

대형 참사 현장의 딜레마


"야 여기로 와 봐. 사람들 많이 쓰러져 있어. 한 열 명?"


1일 밤, 당번 근무를 마치고 나온 선배가 술집에 거의 다 왔다고 전화해 마중을 나가던 참이었다. 1분 뒤 다시 전화가 걸려왔는데, 선배 목소리가 좀 전보다 다급했다. 편의점 앞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고 했다. 술집에서 멀지 않은 편의점이었다. 막 불을 붙인 담배를 튕겨 끄고 종종걸음으로 골목을 나와 왼쪽으로 다. 곧장 경찰차와 구급차의 요란한 사이렌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인도를 따라 사람들이 누워있었고, 몇몇 소방대원들이 무릎을 꿇고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오토바이 보행자 가드레일은 박살 나있었다. 웅성대는 들 틈을 헤집고 쓰러 사람들 곁으로 다가갔다.


시신들의 상태는 참혹했다.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자세 묘사 없지만, 한눈에 봐도 살아있지 않다는 건 확실했다. 현장 사진들과 함께 여덟 구의 시신이 널려 있다는 보고를 팀방에 올렸다. 휴대폰을 쥔 손이 떨렸다. 사고가 발생한 지 6분이 지난 시각이었다.



경찰·소방차들이 현장에 속속 도착했다. 현장 책임자로 보이는 대원이 나와 "얼른 천으로 시신들을 덮으라"고 외쳤다. 술을 조금 마신 상태였고, 이 모든 상황이 현실 같지 않았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고, 몸이 먼저 움직였다. 곧장 현장을 돌며 목격자를 수소문했다. 역주행 차와 충돌한 차의 운전자 일행을 만나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우회전해서 골목으로 들어가려는데 검은색 승용차가 골목 안쪽에서 빠른 속도로 사람들을 치면서 나왔고, 사거리 한복판에 멈춰 선 뒤 남녀가 걸어 나왔다고. 손으로 반파된 검은색 제네시스를 가리키며 저 차라고 다.


현장이 통제되기 시작했다. 사거리를 가로질러 제네시스 차량으로 다가갔다. 운전자의 아내가 경찰에게 사고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었다. 대원들은 아내도 병원으로 이송하려 했다. 찰나의 순간에 아내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었다. 아내는 차량이 급발진했으며, 운전자인 남편은 시내버스 운전사라 그날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네시스는 앞부분이 찌그러진 채로 횡단보도와 교통섬 경계에 서 있었다. 핸들은 왼쪽으로 꺾여 있었고, 조수석에는 꽃이 놓여 있었다. 대원들이 차량 배터리 제거 작업을 진행했다. 경찰관이 "관계자가 아닌 사람들은 사거리 밖으로 나가달라"고 했고, 현장은 완전히 통제됐다.


현실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적나라한 현장을 보면 받은 충격이 점점 살아나는 듯했다. 전화로 취재 상황을 보고하는데 말이 잘 나오지 않고 더듬거렸다. 위에서는 트라우마를 걱정했는지 곧바로 현장에서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담배를 반 갑 넘게 피웠다. 그날은 잠을 설쳤다.



용산 이태원 참사 때도 나는 현장에 있었다. 그땐 아직 인턴 기자 신분이었는데, 할로윈 축제 클럽 마약 단속 동행 취재에 나선 동기를 기다릴 겸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처음 '압사 사고가 난 것 같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땐 얼마나 큰 사고인지 감이 안 왔다. 하지만 사상자 수는 실시간으로 늘어 세 자릿수를 넘겼고, 그제야 보통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나는 참사 현장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골목에 갇혀 있었다. 안쪽에서 장정들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의식을 잃은 사상자를 들고 나왔다. 그 호각소리에 맞춰 인파가 가득한 골목 한가운데 길이 생겼고, 발걸음이 묶여 있던 시민들은 그 길을 따라 대로로 빠져나갔다.


두 갈래길이었다. 인파를 따라 대로로 빠져나갈 수 있었고,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 긴박했던 참사 현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나는 전자를 택했고, 두고두고 그 선택을 후회했다. 현장에 직접 가본 사람만이 그 참상을 더 정확하게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큰길로 나온 뒤로는 목격담을 일부 전해 들었을 뿐, 신속하고 정확하게 참상을 알리는 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두 갈래길에서 발걸음을 망설게 한 건 명분이었다. 당장 현장에 가려는 건 사람을 살리려는 게 아니라 사진 몇 장 찍고 목격담을 듣기 위해서 아닌가. 기자라는 직함을 달았다고 갑자기 죽어가는 이들을 앞두고 그렇게 행동할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망설여졌다.


참사 현장에서 기자들이 부딪히는 딜레마였다. 당장 생명을 구하고 사고를 수습하는 일이 중요한데 기자들의 역할은 현장을 기록하는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름의 명분은 있다. 참상을 정확하게 알려야 문제의 본질이 드러나고, 본질드러나야 대안이 명백해진다는 명분이다. 대중들의 관심이 모여야 정부로부터 신속한 대처와 물적인 지원을 끌어낼 수 있다는 명분이다.  얇고 가느다란 명분 때문에 기자들은 사상자 옆에 무릎 꿇는 대신 카메라와 녹음기를 켠다. 명분 때문에 빈소에 찾아가 허망해하는 유족들에게 명함을 건넨다. 2년 전 었던 그런 고민 후회가 이번 참사에서 현장 한가운데로 발걸음을 옮기도록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지자체들은 인파 관리 시스템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했다


시청역 역주행 참사의 원인도 점차 밝혀지고 있다. 언론에서는 보행자용 가드레일 내구성 강화와 자동 제동 장치 탑재 의무화와 같은 대안들 제시고, 정부와 서울시도 이에 호응하고 있다. 실제로 무엇이 어떻게 변할진 알 수 없지만 충격이 컸던 만큼 뭐든 변할 다.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많은 제도와 장치들이 도입됐다. 인파 통제는 더 효과적으로 변했고, 관련 사고도 없었다. 이런 일련의 변화를 두고 기자들의 명분을 내세우는 건 억지일까. 기자들의 노력이 모여 어떤 총체적인 진실이 드러났고, 끝내 이러한 변화 만들어냈다고. 호소력은 없다. 우리는 사고가 난 뒤에야 예방하지 못했다는 걸 알아챌 뿐 일어나지 않은 사고를 예방했다곤 믿지 못하니까. 결국 기자들의 명분이란 증명되지 않은 상태로 남게 되고, 앞으로도 기자들은 그 두 갈래길 앞에서 늘 망설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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