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년 전 늦봄 추위가 꺾일 무렵이었다. 정부가 ‘건폭(건설폭력배)’을 때려잡겠다는 강경기조를 밝히고 노동단체들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거의 매일 집회가 이어지던 시기였다. 내가 집회 취재를 맡은 그날도 붉은색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남색 조끼를 걸친 조합원들이 한창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 삼각지역 주변에 모여 집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무대가 설치되고 전광판에 불이 들어왔다. 인도를 따라 늘어선 단체기 수십 장이 바람에 나부꼈다. 거대한 크레인 끝에 매단 대형스피커는 포경선이 잡아올린 고래 사체 같았다.
맨처음 무대에 오른 조합원은 배에 공기를 빵빵하게 채워넣고 힘차게 '투쟁'을 외쳤다. 집회 참가자들이 복창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마이크 음량에 비해 턱없이 작았다. 조합원들의 연설에는 음절마다 분노가 꾹꾹 눌러 담겨있었다. 핵심 인력을 목소리로 선발하나 싶을 정도로 우렁찼다. 대형스피커 아래에 서니 엄청난 파동이 몸을 흔들었다. 오래 서있다간 청력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경찰과 시위대도 그 앞을 피했고, 지나가는 시민들은 갑작스럽게 닥친 ‘소음 폭탄’에 놀라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종종걸음했다.
집회가 절정으로 치달을 즈음, 시위대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다가가보니 경찰관들이 한 젊은 여자의 둘러싼 채 진정시키고 있었다. 여자의 손에는 두 뼘 남짓한 길이의 작은 망치가 들려있었다.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녀가 갑자기 시위대에게 다가와 '제발 조용히 좀 하라고!' 외치면서 망치를 휘둘렀단다. 여자는 자신을 만류하는 경찰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려 했지만 집회소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곧 체념한 듯 점퍼 주머니에 망치를 넣고 연신 눈물만 닦았다. 경찰은 탈진한 듯한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여자는 길 건너 건물 2층 꽃집으로 돌아갔다. 따라붙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 같진 않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납득되는 행동은 아니었다. 우락부락 남자 수십 명이 결집한 현장에 작은 망치 하나 들고와서 뭘하겠다는 건지. 시간이 지나 더 많은 집회를 보고, 더 많은 피해자를 만난 뒤에야 여자의 심정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집회소음은 현장을 지나치는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불편일 뿐이었지만, 그 일대에 사는 이들에게는 삶의 터전이 무너질 정도의 큰 고통을 주는 재앙이었다. 문을 닫고 커튼을 내리고 물수건으로 틈을 막아봐도 집 전체를 울리게 하는 소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주말에 가게 문을 닫자니 당장 생계가 문제였다. 내일이면, 다음주면, 다음달이면 괜찮아지겠지. 버티고 버티다 응축된 감정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 폭발력은 앙상한 여자가 망치를 들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법 전문가들은 집회소음을 '헌법적 가치를 위해 감내할 수 있는 사소한 불편'이라고 설명한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되는, 그러니 시민 다수가 불편을 겪더라도 반드시 보호해야 하는 신성한 가치란 전제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불편한 수준을 넘어 삶의 터전을 앗아간다는 지적에 대해선 애써 눈을 돌리고 있다. 경찰은 집회소음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없었다. 지난해 경찰청의 한 과장은 '강제로 확성기를 뺏는 조치'가 1년 전에 비해 몇 배나 늘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통계를 받아보니 2023년 전국에서 1건 있던 게 지난해 6건으로 늘었을 뿐이었다.
법은 잘 모르지만 집회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시민들이 가장 먼저 잃은 것은 목소리였다. 대통령이 한밤 중 기습 계엄을 선포하고 가장 먼저 뺏으려 한 것도 목소리였다. 집회는 불특정 다수에게 목소리를 전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시민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광장에서 주로 열린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하지만 헌법이 만들어졌을 때와 지금 크게 달라진 게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며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굳이 무대나 마이크가 없어도, 인터넷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호응을 얻어 공론화시킬 수 있다. 구호를 복창해줄 세력도 필요 없다. 인터넷 공간이 광장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지 오래다.
오히려 요즘 집회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며 시민들의 반감만 산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마이크를 들고 거리로 나가 빽빽 소리를 지른다. 경찰의 경고방송까지 더해지며 집회 현장은 순식간에 데시벨 폭주의 장이 된다. 법원은 등을 돌려 신성한 집회의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상습적으로 집회가 열리는 지역은 유령도시가 돼간다. 특히 탄핵 정국 이후로는 집회가 더 늘어 서울로 나설 때면 꼭 한 번씩은 어르신들의 샤우팅을 듣게 되는 것 같다. 요즘은 시위대보다도 시위대 뒤에 줄지어 늘어선 건물들이 눈에 밟힌다. 지금도 저 안에선 누군가 눈물을 흘리며 망치를 쥐었다 놓았다 하고 있을 것만 같아서. 우리는 언제까지 그들의 고통을 '사소한 불편'이라며 외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