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노동자의 얼굴

일용직 노가다 취재기

by 현우주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 일용직으로 잠입해 취재할 일이 있었다. 몸은 좀 힘들어도 어렵지 않은 취재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시도해보니 진입부터 난관이었다. 일용직 전용 구인구직 앱을 통해 수백 군데 넘게 지원했지만 모두 '서류 탈락'이었다. 나이 든 아저씨들밖에 없는 노가다판에서 나 같이 젊고 유능한 인재는 드물 텐데,라는 생각은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동네 인력사무소장에게 공손하게 일 좀 달라고 문자도 넣어보고, 나중가서는 구걸하다시피 일을 구했지만 연락은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건설 경기가 안 좋아지며 일자리가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경력 많은 인부들을 선호하다 보니 나 같은 신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취재 기한은 다가오는데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계속 이렇게 거절만 당하다 포기하느니 직접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서 부딪혀 보기로 했다. 전국에 첫서리가 내린 작년 10월 어느 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인력사무소가 몰려있는 모란시장으로 향했다. 작업화 대용으로 신은 군화소리가 텅 빈 골목에 울려퍼졌다.


모란시장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부터 일자리를 얻지 못해(전문용어로 '데마를 맞는다'고 한다)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 옮기는 인부들이 있었다. 문 닫힌 인력사무소를 몇 군데 전전하다가 불이 켜진 사무소를 찾아 무작정 밀고 들어갔다. 그 안에는 등록을 마친 인부 50명 정도가 오와 열을 맞춰 앉아있었다. 맨 앞에 앉은 인력소장은 일감을 찾기 위해 바쁘게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인부들은 기대 없는 얼굴로 뉴스가 틀어진 TV를 봤다.


인력소장이 전화를 받더니 인부 대여섯 명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이름이 불린 인부들은 짐을 챙겨 밖으로 향했다. 아직 일을 못 구하고 앉아있는 동료들을 놀리면서. 짜증섞인 목소리로 인부들을 대하던 소장에게 쭈뼛대면서 다가갔다. 그는 내 몰골을 훑더니 누그러진 목소리로 나이와 일해본 경험을 물었다. ‘젊은 사람이 꼭두새벽에 인력시장에 올 만한 사연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일감 목록을 훑은 그는 난감한 얼굴로 “일단 앉아서 기다려보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뒤 내 이름이 불렸다. 족보 없는 신참에게 순위를 밀린 인부들의 따가운 시선이 뒤통수에 꽂히는 걸 느끼며 잰걸음으로 인부들을 따라나섰다.


두 명의 인부들과 같은 현장에 배치됐다. 둘은 이미 서로를 오래 알고 지낸 듯했다. 한 명은 덩치가 산 만했고 옆모습이 배우 최무성을 닮았다. 웃을 때 특히 더 그랬다. 다른 한 명은 말랐지만 반무테 안경을 써 나이 든 인부들 사이에선 그나마 인텔릭한 분위기를 풍겼다. 한쪽 손에 휴대전화가 들려있는데도 굳이 긴소매를 걷어 금테시계를 쳐다보길 반복했다. 둘 사이 공통점이라곤 모두 앞니가 없었다는 점밖에 없었다. 이 조합에 나까지 더하니 교집합이라고 할 만한 게 아예 없었다. 우린 마을버스를 타고 위례의 신축 아파트로 향했다. 지하주차장에서 청소를 돕는 간단한 일이야, 금테시계가 말했다. 그들의 나른한 대화소리를 듣다 깜박 잠에 들었다.


삼십 명 정도 인부들이 모두 모이자 점호가 시작됐다. 나와 다른 나이 든 인부는 청소 대신 다른 하청업체 일을 돕게 될 거라 했다. 새롭게 주어진 역할은 목공 보조였다. 흑백요리사의 '에드워드 리' 셰프를 닮은 목수(그도 앞니가 없었다)를 따라 리프트에 올라타 4~5m 높이의 천장에 나무를 덧대는 일이었다. 낡은 리프트가 앞뒤로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심장이 덩달아 요동쳤다. 콧등에 멍이 들 정도로 강하게 코와 입을 조이는 방진마스크를 썼지만, 먼지가 많아 금방 목이 칼칼해졌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그만둘 순 없었다. 인력소장에게 안 좋은 평가가 들어가면 더는 일을 안 맡길지 몰랐다. 그러면 취재도 '올스톱'이었다.


금테시계와 최무성은 종종 내가 일하는 곳으로 다가와 일은 맞는지 걱정해줬다. 그들은 내 이름이나 사연을 묻지 않았지만, 내가 첫날 일을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듯했다. 금테시계는 같이 점심을 먹는 내내 자식자랑을 했다. 잘 나가는 세무사라 했던가. 내가 자기 아들 같다고 말하며 웃는 얼굴은 적 어딘가 쓸쓸했다. 나도 굳이 그런 아들을 두고 노가다를 뛰러 나온 사연을 묻지 않았다. 최무성은 옆에서 웃기지 않은 ‘아재 개그’를 남발하며 혼자 박장대소했다. 언제 저 빈 앞니들 사이로 밥풀이 발사될까 조마조마해야 했다.


둘과 정이 들 때즈음 일이 끝났다. 그래도 그들 덕에 모든 게 낯선 곳에서 조금이나마 마음 편히 일할 수 있어 고마웠다. 내일 또 만나자는 인사를 건넸는데 언젠간 다시 보자는 인사가 돌아왔다. 일용직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법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인력소장에게도 믿고 일을 맡겨주셔서 감사하다고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문자를 남겼다. 답장은 없었지만, 그런 노력이 어여쁘게 보였는지 다음 날에도 내 이름을 불러줬다. 그렇게 경력직 사이에서 몇 번 더 현장을 따내며 다양한 일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일용직을 뛰어보면 철이 든다고 했나. 아쉽게 철은 못 들었지만 새로운 경험을 해보니 다르게 보이는 게 있다. 거의 매일 같이 나오는 노동자들의 산재 기사들. 그동안 ‘늘 있는 일이지’라며 무표정으로 넘기던 기사들이었는데 더는 그렇지 않았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공사장에서 노동자가 추락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50대 노동자’란 단어에서 떠오르는 얼굴들이 생겼다. 그들도 그날 아침 인력사무소를 나서며 동료의 등을 찰싹 내리치며 약올리지 않았을까. 빈 앞니 사이로 밥풀을 튀기며 되지도 않는 개그를 남발했을까. 금테시계나 에드워드 리처럼 자식자랑 늘어놓을 줄밖에 모르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춥고 낯설었던 첫 현장을 버틸 수 있게 해준 온기들. 그것들이 활자들 속에서 배어나오며 더는 매일 똑같은, 별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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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경제부 직업 기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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