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MO를 견디는 법
언론에서 벼락거지란 말을 처음 쓴 건 코로나19 팬데믹 때였다.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같은 투자 자산들이 맹렬하게 오르던 시기였다. 이미 주식이나 집을 갖고 있으면 앉아서 돈을 벌 수 있었고, 월급을 꼬박꼬박 모으던 사람들만 바보가 됐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주식과 코인에 몰빵한 뒤 몇 배를 벌어 은퇴했다는 뉴스가 포털 사이트를 뒤덮을 즈음에는 투자를 한 번도 안 해본 이들도 '이러다 나만 벼락거지가 되겠다'는 불안에 휩싸여 투자 행렬에 가담했다. 눈먼 돈까지 빨아들이면서 광풍은 더욱 거세졌다. 결국 남들보다 먼저 용기를 낸 야수들은 수저색을 바꿨다. 끝까지 투자를 망설였던 새가슴들은 절치부심하며 그다음 상승장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만 뒤처졌다는 불안감, 이른바 '포모(FOMO)'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불과 5년도 안돼 벼락거지란 말이 다시 들려오고 있다. 주식, 코인, 금·은, 부동산 등 모든 투자자산이 날마다 신고가를 경신하는 전례 없는 상승장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 지수가 오를 대로 올랐고, 거품이 곧 빠질 것이라는 비관론을 가볍게 부수며 자산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커뮤니티에서는 '돈복사'라는 말이 유행이다. 돈을 넣어두고 자고 일어났더니 알아서 몇 배로 불어있더란 말이다. 직장인들이 올리는 수익 인증글에는 잘못 봤나 싶을 정도로 큰 숫자들이 적혀있었다. 이렇게 아무거나 잡아도 오르는 상황인데도 투자를 망설이는 이들은 겁쟁이를 넘어 바보로 매도된다. 팬데믹 상승장에서 포모에 시달렸던 이들은 이번 상승장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며 적금과 청약통장을 깨며 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투자자산 가치가 오르는 만큼 현금 가치는 떨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도 오르면서 원화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벼락거지가 되고 있다. 아직은 체감이 안 되지만 상승장이 끝나고 고수익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을 마치면 불어난 자산이 집값과 물가를 끌어올리게 될 것이라 한다. 그렇게 되면 한강변 아파트는 다시 신고가를 찍으면서 젊은 층 주거 사다리가 끊겼다는 뉴스가 포털창을 뒤덮을 것이다. 그때는 '붕어빵 한 마리당 1000원'도 좋았던 시절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월 400, 500만 원을 벌어도 연민의 시선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는 시대가 좋아져서 경제를 잘 몰라도 글 몇 개만 읽고 이런 '벼락거지 메커니즘'을 간파할 수 있다. 이런 류의 정보는 많은 사람들의 포모를 부추겨 투자판에 발을 들이게 만들고 있다.
경제부 기자는 포모에 취약한 직업 중 하나다. 남들 잘 되는 꼴 보는 건 괴롭지만 관심을 끌 수 없다. 장대양봉으로 시벌건 주식창을 보면서 입사 직후 월급 대부분을 만기 3년짜리 정기적금에 걸어버린 걸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쌓인 이자를 포기하면서 적금을 깰 순 없는 노릇이었다. 주식 공부도 안 해봐서 포기한 이자만큼 수익을 올릴 자신도 없었다. 그렇다고 역사에 길이 남을 대상승장을 앞에 두고 손가락만 빨 수 있나. 급한 마음에 명절 상여금을 긁어모아 단타를 쳐봤지만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아무런 분석도 없이 실시간 수익률과 차트만 노려보고 있자니 마치 도박을 하는 기분이었다. 이유를 모르는 투자는 투기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혼자만 뒤쳐지고 있다는 감정이 그동안의 원칙과 판단을 모두 흐리고 있었다.
원칙이라 하면 이런 것이었다. 땀 흘리지 않고 쉽게 돈을 벌면 결국 일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져 장기적으로 불행해진다는 것. 실제로 팬데믹 직후 일을 그만두고 전업투자자로 전향했다는 직장인이 많았다고 한다. 커뮤니티에도 '하루에 월급만큼 버는데 왜 일을 해야 하느냐'는 푸념글이 많다. 불로소득은 노동에 대한 관념을 망쳐놓아 일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물론 기업을 분석하고 시황을 팔로업하는 투자 활동은 노동이 맞지만, 일반인 중에서 포모를 견디면서 가치투자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당장 큰 수익을 올려도 명확한 원칙 없이는 결국 모두 잃게 될 거란 신념도 있었다. 천천히 준비하고 확신이 생길 때 투자를 시작해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의 대상승장 앞에서는 모두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돌아보니 포모에 괴로워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워런 버핏이나 피터 린치 같은 투자 대가의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탄다. 조회수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대형서점 재테크 매대에는 늦게라도 발을 담가보려는 직장인들이 끊임없이 기웃거린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투자 관련 책을 읽고 있는 이들도 요즘 더 늘어난 듯하다. 경험해보니 혼자서만 가만히 뒤처지고 있다는 감정은 참 견디기 어렵다. 밤늦게까지 실눈 뜨고 차트를 보게 만들고, 새벽에도 눈 번쩍 뜨고 컴퓨터 앞에 앉게 만든다. 지금이라도 묵돈을 넣으면 마음은 편하겠으나 늦깎이 투자자들은 '사면 떨어질까' 무섭다. 안 사자니 벼락거지가 될 것 같고. 이렇게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에서 투자 공부라도 깔짝대지 않으면 불안감을 덜어낼 수가 없다.
투기 아닌 투자를 하고 싶다면 당장은 포모를 떨쳐내고 버텨야 했다. 나름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건 잔인하지만 남들의 불행이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투자 실패로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한탕을 노리다가 순식간에 파산한 이들의 삶은 비참했다. 수년 전 일인데도 어제 일처럼 괴로워했다. 다른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본인의 선택이라 더욱 그랬다. 그들의 공통점은 한때 투자로 많은 수익을 올렸다는 것. 시장을 맹신하고 수익을 실력으로 자만하면서 레버리지를 한계까지 끌어쓰다가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지금 당장 투자에 뛰어들어 번다 한들 원칙이 없다면 결국 저들과 똑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 포모에 괴로울 때면 투자에 실패한 사례를 본다.
막상 뚜껑을 까보면 개인 투자자들의 수익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주로 외국인이나 기관들이 재미를 많이 보고 있다. 개미들은 잡주에 기웃거리다가 물리기도 하고 함부로 인버스 펀드(하락장에 수익을 얻는 펀드) 같은 걸 들어갔다가 무참히 털리기도 한다. 물론 주변에서 버는 사람이 훨씬 많아진 건 맞지만, 나만 빼고 모두가 벌고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여유를 갖고 본인의 투자 성향을 파악하기 좋은 시간이다. 투자 대가들은 '주식 때문에 잠이 오지 않으면 주식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뜻이다. 어떤 상황에도 원칙에 따라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인지, 부화뇌동할 사람인지 알고 시작해도 늦지 않다. 주식시장은 1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열려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