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살이가 꿈이었던 아주머니는
금융위원회 출입기자증을 발급 받으러 정부서울청사 민원실에 갔을 때였다. 담당자가 한참 동안 전화를 받지 않아 민원실 한구석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있는데 옆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울면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가만 들어보니 금융위원회 직원에게 "정부의 기습 규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읍소하는 내용의 통화였다. 보통 이런 류의 전화는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다가 고성이 오가고, "책임자 누구야, 나오라 해!"라는 고함으로 끝나기 마련인데 아주머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양손으로 휴대전화를 받쳐들고, 중간중간 "열심히 일하고 계신 직원 분들께 뭐라 하고 싶은 게 아니라..."라는 말을 섞었다. 마침 정부의 6.27 기습 대출 규제를 취재하고 있던 터라 아주머니가 통화를 마치길 기다린 뒤 명함을 내밀며 사연을 듣려달라 했다. 아주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는 할 말이 많으니 주변 카페로 가자고 했다.
명함과 사원증을 꼼꼼히 확인한 아주머니는 자신의 딱한 사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혹시나 정부 사람에게 미움을 사는 게 두려워 신분은 '김 씨'로만 밝혔다. 김 씨 아주머니는 오래 전부터 신축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남편과 오랜 시간 준비한 끝에 마침내 분양권 계약금을 치렀다. 그러고는 아파트가 지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정부가 집값 대책을 발표하고 그 다음날부터 6억 원이 넘는 주택담보대출을 못 받게 막아버렸다. 대출을 못 받으면 잔금을 치를 수 없었고, 계약 파기에 대한 위약금만 물어줘야 했다. 정부는 대책 발표일 전 계약금을 치른 경우에는 규제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주택 매매 계약에만 한정된 예외였다. 분양권 계약에 대해서는 발표일 전 계약 신고까지 마친 경우에만 인정해주겠다고 했다. 즉 분양권 계약금을 미리 냈더라도 신고를 늦게 했다면 대출을 못 받는 상황에 처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발표가 난 뒤 뒤늦게 계약을 신고했지만 대출을 6억 원 넘게 못 받는다고 통보 받았다.
정책 피해자를 취재할 땐 반드시 정부에도 이런 피해가 생길 수 있는 게 맞는지 사실 확인을 받아야 한다. 통상 정부는 오랜 의견수렴 끝에 합리적인 정책을 내놓기에, 민원인이 규정을 잘못 이해하고 억울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융위원회 담당자에게 전화해보니 의외로 곧바로 "문제가 맞다"고 답했다. 규정을 이렇게 만든 배경은 알아볼 테지만 아주머니와 같은 피해자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그런 피해자를 위해 어떤 구제책이 마련되고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더 의외였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한두 명 밖에 없어 아직 논의 중인 게 없다는 답이었다. 아주머니가 잘못한 건 없었다. 현행 법에 따라 주택 매매와 분양권 거래 모두 계약금을 치른 날부터 30일 안에만 신고하면 된다. 정부는 집값 상승 열기를 꺾은 이번 대책의 성과를 자찬하고 있었고, 뭉개진 아주머니의 꿈은 그 화려한 성공에 비하면 너무 작은 오점이었다.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마이클 센델 교수의 강연은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선택이 맞느냐는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유명한 사고실험 '트롤리 딜레마'다. 제동 장치가 고장난 열차가 선로를 달리는데 저 앞에 5명의 사람들이 묶여있다. 이대로 두면 그들은 모두 죽는다. 하지만 청중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 선로전환기 레버를 당기면 열차는 경로를 바꿔 다른 선로에 묶인 1명만 치게 된다. 이때 레버를 당기는 게 맞는지 묻는 강연자의 질문에 청중은 쉽게 답하지 못한다. 이렇게 간단한 도식으로 나타냈을 땐 누구도 선뜻 공리주의적 희생이 정당하다고 나서지 못한다. 다만 '만약 그 5명이 가족이라면' '5명이 아닌 1000명이라면' 같은 복잡한 조건이 추가될수록 결정을 내리는 이들이 늘어간다. 집값 안정이라는 어젠다를 포기할 수 없었던 정부는 레버를 당겼다. 선로 반대편에는 김 씨 아주머니 같은 이들의 '내집마련의 꿈'이 놓여있었다.
정책 성공의 열쇠는 단호한 시행과 꼼꼼한 구제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실패한 이유는 구제할 피해자를 사전에 최대한 줄이고자 시행 전 시그널을 흘렸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자기구제를 위해 부여한 유예기간이었지만 부동산 투자자들의 욕심이 비규제 지역으로 번져나갈 틈을 주었다는 분석이다. 이번 정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고 기습적으로 고강도 규제를 시행해 집값의 열기를 식히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구제가 아쉽다. 아주머니를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신음이 터져나오지만 아직 이렇다 할 구제책은 없다. 트롤리 딜레마와 달리 현실에서는 레버를 당기고 남은 1명도 구할 수 있는 시차가 있다. 물론 새 정부의 조직 개편을 앞두고 실적으로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금융위원회가 정책 이면의 사소한 오점까지 보듬을 여력은 없을 테지만,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도 외면하지 않는다는 원칙 역시 새 정부의 철학 아니었나.
물론 6억 원이 넘는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약자로 뵐리 없다. 정부는 규제 하한선을 6억 원으로 정한 배경을 두고 그 이상의 대출을 받는 이들은 상위 10%도 안 되는데, 이들이 집값 상승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무튼 신문에 실리면 알려드리겠다며 김 씨 아주머니와 헤어졌지만 출고한지 보름이 넘도록 연락을 못 드렸다. 정부도 어쩔 수 없대요,란 말을 전할 바에야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정부도 사실상 포기한 상황에서 언론의 불호령보다 차라리 아주머니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더 가망있어 보여서다. 평생 일해 조금 더 좋은 집 살아보겠단 게 그렇게 큰 죄인가요, 중얼거리던 모습이 계속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