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빚투의 대가

선량한 피해자는 없다

by 현우주


"국내 주식 말고 미국 주식에 투자해보려는데 어떤 책 읽어?"


올봄 결혼하고 집을 나간 동생한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인공지능 버블 논란으로 미국 증시가 위아래로 요동치고 있을 때였다. 그동안 손도 못 댈 정도로 무섭게 올랐던 주식들이 대거 조정을 받자, 이들을 값싸게 쓸어담을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한 개미 투자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던 시기였다. 동생도 가만히 있다가는 뒤쳐지겠다는 생각에 해외 투자를 결심했다고 한다. 평생 주식에 관심 없던 사람이 갑자기 주식에 뛰어들면 위험 신호라고 했나. 그 직후 국내 증시 수익률이 미국 증시 수익률을 앞질렀다는 뉴스가 도배된 걸로 봐서는 동생도 인간지표로 꽤 쓸 만할 것 같았다.


쓴맛을 봤지만 동생은 나름대로 건강하게 투자를 시작하는 편이었다. 대출 없이 모은 돈으로 주식을 했고, 막무가내로 지르기보단 먼저 책을 읽고 공부해보는 쪽을 택했다. 원래부터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성격이었고, 요행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동생처럼 거저 얻는 걸 경계하는 건 아니다. 빚을 내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국내 증시 신용융자(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증권사에서 빌린 투자금) 잔액은 투자 광풍이 불었던 2021년보다 5000억 원이나 많다고 한다. 주가가 폭락하며 주식을 강제처분 당하는 '반대매매' 규모도 빠르게 늘고 있다.


빚투 자체는 좋고 나쁨이 없다. 투자를 잘하는 사람이 레버리지를 써 수익을 더 내는 건 남들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과도한 대출을 당기는 '묻지마 빚투'가 늘 때 생긴다. 예를 들면 유튜브 같은 데서 주워들은 종목에 확신을 갖고 몰빵한다던지. 건강한 시장도 때로 조정을 받아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진다. 이때 상승에 베팅했던 주식이 반대매매를 당하면서 저가로 쏟아져나오면, 그로 인해 낙폭이 더욱 커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빚투가 금융위기를 앞당기는 촉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시장이 무너지면 감당 못할 정도로 빚을 낸 이들은 물론, 가진 범위 내에서 정직하게 투자했던 이들도 피해를 입는다.


묻지마 빚투가 얄미운 건, 그들의 욕심에 대한 리스크를 다른 사람들이 함께 지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매매 물량으로 시장이 임계점을 넘어 빠르게 무너지면 사회 전체가 막심한 피해를 입는다. 굳이 금융위기를 가정하지 않아도 빚투 실패의 대가는 이미 사회가 분담하고 있다. 이번 정부를 포함해 모든 정권은 집권 초기 채무탕감 정책을 시행하는데, 탕감해주려는 빚이 투자 실패로 생긴 빚인지 (심지어 도박 빚인지도) 알 방법이 없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주식 실패로 생긴 빚도 정부가 세금으로 갚아주고 있다는 뜻이다. 금융당국은 20년 넘게 같은 방법으로 해왔다고 밝혔다. 이 정도면 빚투를 안 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빚투 실패로 밑바닥에 떨어진 사람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상에 동정 대신 조롱이 날아든다. 그들이 욕심에 눈이 멀어 사회의 신용을 담보로 삼았다는 사실이 괘씸하기 때문 아닐까. 반대로 빚투 실패로 무너진 투자자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맞선다. 월급은 안 오르고 물가와 집값만 오르는 세상에서 어차피 가만히 있다간 도태될 뿐인데.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은 상황에서 그래도 한 번은 질러봐야 하지 않겠냐는 항변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내집마련이 버거운 젊은 층 사이에서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ARM)이 늘고 있다고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금융 상품 중 하나다.


원숭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이런 상승장이 올 때마다 빚투로 많은 수익을 낸 '야수의 심장'들은 신중한 사람들을 바보 취급한다. 벌어들인 수익은 모두 자신의 실력이며, 리스크를 질 용기가 있었던 덕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리스크는 혼자 진 게 아니다. 언젠가 올 하락장에서 그들의 욕심 만큼 커진 변동성은 대다수의 선량한 투자자들도 집어삼키게 되므로 모두에게 빚진 셈이다. 투자자 보호를 전면에 내세운 정부는 정작 빚투는 자산 증식이 절실한 젊은 세대를 달래는 수단 정도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정부 관계자가 "빚투도 레버리지의 일종"이라며 빚투를 조장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머리를 숙였다.


미국의 금융위기를 다룬 영화 <빅쇼트>를 오랜만에 다시 봤다. 영화는 위험한 대출 상품으로 수익을 쓸어담는 월스트리트 사람들과 그런 대출 상품으로 여러 채의 집을 사들이는 서민들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그 중에는 집주인의 강아지 이름으로 대출을 받은 히스패닉 가정도 있고 레버리지를 끌어당겨 다섯 채의 집을 사들인 스트리퍼도 있다. 영화는 월가 사람들만 탐욕스러운 악당으로 비추면서 빚투로 파산한 이들을 피해자로 대비시켰지만 이번에는 그들도 공범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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