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간의 도전 끝에 남은 것들

버리는 시간은 없단다

by 현우주


33433. 대리운전 번호로 쓰면 딱 좋을 수능 성적표를 받아 들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현실을 부정하고 게임 속으로 도망치는 일밖에 없었다. 재수학원에 들어갔지만 자습을 빠지고 PC방에 갔다가 걸려 일주일 만에 쫓겨나고 말았다. 우울한 날들이 이어졌다. 부모님 눈치가 보여 게임은 하지 않았고, 부모님도 그런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쁜 마음을 품지는 않을까 걱정하신 나머지 어느 날 강아지를 데려오셨다.


한 번은 부모님을 마루에 앉혀놓고 가수가 되겠다고 했다. 아빠는 피식 웃으시고는 그럼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들려달라고 했다. 그때는 진심을 알아주지 않아 서운했지만 돌아보니 그만한 콩트도 없다. 한편 엄마는 입시를 포기하지 않았다. 처참한 수능 성적표를 들고 온갖 입시 설명회를 전전했다. 아들 몰래 발품을 팔아 서울 S 대학에 정시로 지원했고, 3차 추가 발표 끝에 기어이 합격을 통보받고야 말았다.


S 대학 지원 사실을 알게 된 건 2차 추가 발표가 난 직후였다. 예비 15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정보통신 관련 학과에 문을 닫고 들어갔다. 날아갈 듯 기뻤다. 마침내 공부로부터 해방됐다는 생각에, 말로만 듣던 캠퍼스 라이프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말이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입시를 내 노력으로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 자격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학 생활은 기대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학점은 매번 바닥을 쳤고, 친구는 사귀지 못했다. 야식을 하도 먹은 탓에 몸무게는 90kg까지 늘었다. 다시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오전에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은행에서 현금 만 원을 뽑고 PC방으로 향했다. 충전한 10시간을 다 쓰면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집에서 나를 쫓아내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종국엔 반쯤 포기한 채 졸업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엄마는 몸이 아픈데도 판교역까지 나를 태워다 주셨다. 3번 입구로 내려와 1번 출구로 나가는 긴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PC방에 가기 위해서였다. 멀리 잿빛 하늘이 보였다. 삭막한 풍경 때문인지 차가운 손 비비며 운전하고 있을 엄마가 떠올랐다. 그러자 마음 한켠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눈시울을 적시는가 했더니 뚝뚝 흘러내렸다. 중독과 자기 연민에 빠져 보낸 지난 일 년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파노라마라고 할 것도 없었다. 매일 같은 장면의 반복이었으니까. 스스로가 한심했고, 불쌍했다.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역사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깊은 곳으로부터 무언가가 북받쳐 올라왔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다. 다만 그날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됐다. 반수를 해야겠다고.


엄마는 두 시간 만에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내가 당돌하게 뱉은 반수 선언에 놀란 듯했다. 엄마는 일단 시간을 두고 고민해보자고 말했지만 나는 기다릴 수 없었다. 이미 수없이 많은 다짐과 실패 끝에 '결심이 서자마자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공식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기숙사형 재수학원을 뒤져 지원서를 제출했다.



수능 등급은 낮았지만, 인서울 대학 출신 반수생이라 그런지 레벨이 높은 반에 배정을 받았다. 레벨이 높을수록 더 유명한 강사가 들어왔으니 다행인 일이었다. 교실의 분위기는 5년이 지났는데도 잘 잊히지 않는다. 들숨과 날숨, 종이가 스치는 소리와 딸깍이는 펜 소리가 전부인 그곳의 분위기는 공부를 만만하게 여긴 나를 완전히 압도했다.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더는 가족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버텼다.


반년이 흘러 무더운 여름이 되었을 때, 나는 학원을 나왔다. 그 사이 주먹다짐을 해서 쫓겨난 친구도 있었고 연애편지를 몰래 주고받다가 걸려 쫓겨난 친구도 있었다. 내가 나온 이유는 대인관계 때문이었다. 룸메이트들과 관계가 틀어진 뒤부터 하루 열 마디도 안 한 날이 많아졌다. 엄마는 말이 어눌해진 나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학업을 동시에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왔다.


마침 동생도 고3이었기에 방학 동안 동생과 학원을 전전했다. 독서실에 등록해 독학하기 시작했다. 마음은 편했다. 이제 혼자와의 싸움만이 남아있었으니 말이다. 원할 때 잠깐 나가 산책도 하고, 원할 때 밥을 먹으러 집에 돌아오고. 정 힘든 날에는 늦잠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전적대를 휴학 상태로 걸어두고 반수를 시작했지만,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그쳤다.


만만하게 본 독학은 상상도 못 할 만큼 힘들었다. 외적으로, 내적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단 하루도 제대로 된 변을 본 적이 없었다. 반년이 지나자 몸무게는 15kg이나 줄어있었다. 머리카락은 손가락으로 한 번 휘감아 당기면 뭉텅뭉텅 뽑힐 만큼 약해졌다. 정신도 피폐해져 갔다. 한밤중에 괴성을 지르며 탄천을 달리기도, 물고기들에게 하소연하며 울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고, 수능 날은 밝았다.


엄마와 동생, 아빠와 나. 두 팀으로 나뉘어 각각 시험장으로 향했다. 마지막 도전이라는 생각에 긴장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아빠는 수험장과 조금 떨어진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웠다. 별다른 말 대신 조용히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셨다. 이젠 수능 날에 대한 기억이 많이 없지만 그 따뜻한 손길만은 잊히지 않는다.



대학 간판을 바꿨다. 하지만 대가는 컸다. 단기간 모든 걸 쏟아부은 탓에 번아웃이 와버렸다. 대학에 와서 공부해야 하는 양은 늘어났지만 도통 의욕이 나질 않았다. 일 년 만에 대학을 바꾼 경험은 무슨 일이든 미뤘다가 한 번에 해결하려는 버릇으로 이어졌다. 한 방에 뒤집을 수 있다는 안일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허비했다. 인생의 단계에서도 뒤쳐졌다. 하나둘 취업에 성공하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은 조급해져만 간다.


엄마는 늘 말했다. 버리는 시간은 없다고. 너무 멀리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이 말을 되새기려고 노력한다. 그 겨울 판교역에서 내린 결단과 치열했던 일 년이 훗날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를 내 힘으로 이뤄낸 경험과 그 과정에서 발견한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응원과 사랑은 평생에 걸쳐 자산으로 남을 것 같다. 이를 발판 삼아 다시 힘차게 도약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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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경제부 직업 기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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