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희생
케네디는 말했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종종 회자되는 명언이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쉽게 공감하지 못할 문구다.
누군가는 나라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청춘을 헌납한다. 누군가는 그 시간 동안 공부를 하며 꿈에 한 발 더 가까워진다. 하지만 다시 사회로 나왔을 때, 사회는 같은 잣대를 들이민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공정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의무라는 미명 아래 어떠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다. 한때 도마에 오른 가산점 제도도 반발에 부딪힌 뒤 폐지됐다. 군인이 받는 혜택은 반값 영화 티켓과 에버랜드 무료 입장권뿐이다.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어차피 남들도 다하는 군 생활인데 너만 힘드냐는 것이다. 복무의 의무를 당연시하는 걸 넘어, 그로 인한 모든 손해를 떠안으려는 태도는 어리석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청년의 시간은 귀하다고 어른들은 말하지만 이러한 명백한 희생 앞에선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어쩔 수 없다고 말이다.
군대는 정체기가 아니라고, 오히려 자기 계발을 하며 인생을 바꾼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뱉는 사람들은 현역으로 복무하지 않았거나, 편한 부대에서 복무를 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육군 제2보병사단에서 박격포를 운용하는 전포로 복무했다. 훈련량이 많기로 유명한 부대에서 없는 자유시간을 쪼개가며 자기 계발을 했다. 100권의 책을 읽었고, 틈틈이 전공 공부를 했고, 이런저런 공모전에 도전해 두 번이나 입상했다. 하지만 결코 그것이 쉬웠다고 말할 수 없다. '할 거 없으면 청소라도 시켜'라며 한 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 간부들 틈에서 매일 시달리다 보면 누구라도 만성피로 환자가 된다. 그런 이들 앞에서 자기 계발을 운운하는 건 잔인한 일이다.
군인들을 향한 대우는 어떤가. 설레는 마음으로 첫 신병 위로휴가를 나가던 날, 터미널에서 사기를 당했다. 할아버지가 돈이 없다고 해 지하철 표를 사드렸는데 계산하는 사이 주머니에 든 현금을 싹 털어간 것이다. 막 국민을 수호하는 사명을 받은 대한민국 이등병에게는 너무나도 큰 상처였다. 외박을 나갈 때마다 간부들은 우스갯소리로 군인의 주적은 국민이라는 말을 했다. 무슨 원한이 있는지, 휴가 나온 군인의 행동거지를 찍어 신고하는 ‘군파라치’가 득실댄 까닭이었다. 땀이 차 잠깐 모자를 벗고 횡단보도를 건넌 일병도, 버스 뒤에서 다리를 꼬고 잠든 상병도 군파라치의 희생양이 되었다.
전역한 지 일 년 반이 지났다. 이제는 뉴스를 통해서만 가끔 군대에 관한 소식을 듣는다. 자유시간에 휴대폰도 쓸 수 있고, 위수지역도 확대되었다고 한다. 군대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희생을 강요당하는 청년들을 위한 당연한 조치지만 이를 두고 '군대가 맞냐'는 등 조롱과 냉소가 판치고 있다. 변호는커녕 오히려 군필자들이 더 역정을 내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군대가 보수화되는 이유와도 관련이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상대적 박탈감이라 할 수 있겠다. 일례로 ‘나 때는’을 입에 달고 살던 한 선임은 '폭언은 기본이었다'며 혼만 내도 마음의 편지로 역살(?)을 맞는 작금의 현실을 한탄했다. 그런 그가 입대하기 전은 구타가 만연하던 시기였다. 세대를 건너 모두가 ‘나 때는’을 외치는 걸 보니, 분명 군대는 발전하는 중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발전해야 한다.
이제라도 꼬인 시선을 거둬들이고 이들을 응원해주자. 미국처럼 지나가면 박수를 친다던가, 일등석 승객보다 먼저 태워준다던가 하는 대우까진 못해주더라도, 그들의 희생을 알아주고 캔커피라도 하나 쥐여주는 사회일 때에야 비로소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청년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