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없는 과학

쓸모 있는 공학

by 현우주


① 과학의 쓸모


방금 태어난 아기가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네 명의 물리학자 중 한 명인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자석이 움직이며 전기를 유도하는 현상)의 쓸모를 물어오는 정치인들을 향해 던진 말이다. 곧 세금을 매길 수 있겠죠,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그는 유유히 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200년이 지난 지금, 패러데이는 전기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의 발견에 빚지지 않은 기술을 찾을 수 없다.


800px-faraday-michael-christmas-lecture-detail_resize_md.jpg 과학은 기술을 통해 그 쓸모를 만난다 photo by @InterestingEngineering


많은 경우 과학은 기술을 통해 그 쓸모를 만난다.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는 발전기 터빈을 돌리는 기술에 활용되며 에너지 분야에 크게 기여했다. 헤르츠 역시 자신이 발견한 전자기파가 아무 데도 쓸모없다고 여겼지만 그가 없었다면 마르코니는 무선 통신을 발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학은 기술의 근본이기에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지만 요즘엔 주객이 바뀌어버린 듯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이 돈이 되다 보니 당장 쓸모를 찾지 못한 과학 분야는 푸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대기업들은 특허를 따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아예 기술 특허만 다루는 직업인 변리사도 인기다. 공학자가 늘수록 과학자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근래 과학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두 사건이 있다.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 입자’의 발견과 아인슈타인이 예언한 ‘중력파’의 관측이 그것이다. 발견의 주인공인 피터 힉스 교수와 킵 손 교수가 바로 다음 해(원래는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할 만큼 대기열이 길다) 노벨상을 거머쥘 정도로 의미 있는 발견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두어 번의 뉴스 보도된 게 전부였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 쓸모라도 물어본 영국의 정치인들보다 못한 모습이었다.


물론 당장 삶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어 보인다. 획기적인 기술로 이어질 가능성도 희박하다. 힉스 입자는 대형 입자가속기 속에서 잠깐 나타나 흔적만 관측할 수 있을 뿐이고, 중력파는 파장인 너무 긴 탓에 우주를 관측하는 용도 외 달리 응용할 방도가 없다. 이어 나타날 발견들도 대부분 과학자들끼리만 좋아 죽는, 그런 발견일 공산이 크다. 하지만 우리는 앞선 사례를 통해 과학의 쓸모를 예단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게 되었다. 매번 우리를 놀라게 하는 과학의 쓸모를 안다면 과학자에 대한 대우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② 과학과 대중


대중이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대중이 투표를 통해 정부를 움직이고 소비를 통해 기업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을 위해 대중의 관심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현대 과학은 아무리 천재라도 홀로 땅을 파서 이뤄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예전이라면 가능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범국가적인 지원과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과학에 뜻이 있는 사람은 학문적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어떻게 대중의 눈높이에 맞출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train-2373323_1920.jpg 과학의 발전을 위해 대중의 관심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photo by @pixabay


먼저 소개한 두 발견이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은 대중의 잘못이 아니다. 어떻게든 바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과정이 마케팅이라면, 마케팅을 모르는 과학자의 탓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특히 과학과 대중 사이의 괴리가 큰 것 같다. 과학 분야 대중 저술가가 부족한 까닭이다. 노벨상 발표 시즌마다 모든 언론이 앞다투어 과학과 대중의 단절, 괴리를 꼬집지만 그 순간뿐이다. 이제는 과학자들이 앞장서 과학의 대중화를 이끌어야 한다.



③ 남겨진 과제


토마스 쿤은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한 번 천동설→지동설과 같은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생기면, 다음 천재가 패러다임을 부수며 등장하기 전까지는 현재의 패러다임을 공고히 다지는 무수하고도 지루한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젊은 학생들이 과학에 매료되는 이유는 과학이 가지고 있는, 혹은 가지고 있다고 믿는 창의성과 역동성 때문이다. 하지만 전공서적을 펼치는 순간 맞닥뜨리는 것은 낡고 헤진 '정상과학'이다. 우리가 과학을 하는 이유는 현재의 패러다임을 더 확실히 다지기 위해서고, 진정한 과학의 쓸모는 천재를 위해 남겨진 과제인 것이다.


하지만 천재가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위대한 발견은 허름한 골방이 아닌 거대한 규모의 실험실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평범한 과학도에게 남겨진 과제는 정상과학을 수행하며 천재의 길을 미리 닦아놓는 한편, 과학의 마케팅을 통해 대중의 관심과 투자를 모으는 일이다. 무릎을 굽혀 대중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언어로 과학을 말하는 일이다. 『코스모스』를 집필해 과학의 대중화를 이끈 칼 세이건처럼 말이다.




순수과학이 기술을 통해서만 제 쓸모를 찾아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 대학 물리학과 학생들은 2학년 때 회로이론과 관련된 실험 수업을 필수로 들어야 한다. 전공 수업시간에 배우지도 않는 이론을, 인터넷을 뒤져가며 혼자 공부하고 레포트까지 써내야 하는 것이다. 한 번은 교수님이 실험 수업을 들어보니 어떠냐고 물어온 적 있다. 나는 이걸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물었고, 그녀는 늘 받는 질문이라는 듯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 거라고 답했다. 순수과학을 가르치는 교수님들부터 공학자를 길러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vancouver-4923159.jpg 과학이 가져올 혜택은 결국 우리들의 몫이 된다 photo by @pixabay


연구자가 될 생각은 없지만 평생에 걸쳐 과학을 공부하고 이를 쉽고 재밌게 풀어내는 일을 하고 싶다. 관심이 쏠리면 돈이 모이고, 돈이 모이면 연구가 활발해지며 다시 관심을 불러 모으는 선순환을 알기 때문이다. 관심은 리스크가 없는 투자다. 하지만 리턴은 매우 크다. 우리들의 작은 관심이 모여 과학의 발전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세상이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뀐다면, 그 혜택은 결국 우리들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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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경제부 직업 기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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