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에 대한 생각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불리한 자료를 삭제한 혐의를 받는 산업부 공무원 3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원전의 경제성을 일부로 저평가해 탈원전의 당위성을 지키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공무원들의 저의가 무엇이든 관심 없다. 하지만 원전이 정치놀음에 자꾸 휩쓸리는 걸 보며 눈살이 찌푸려진다. 원전은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 중 하나일 뿐이고, 다른 발전소와 마찬가지로 장·단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과 환경단체는 원전을 옹호하는 사람을 '생명은 안중에도 없는' '돈에 미친' 냉혈한으로 몰아갔다. 그 결과 원전은 입에 담아서도 안 될 불경한 단어가 됐다. 매년 도로에서 수천 명이 죽어나간다는 걸 알면서도 운전대를 잡는 건 생명을 경시해서가 아니다. 위험성과 효율성을 모두 고려한 끝에 내린 합리적인 판단이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위험성을 진단하고, 이를 보완하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무섭다고 그냥 싹 다 없애버리자고 하는 건 비합리적인 처사다.
원전사고와 교통사고의 무게감이 다른 건 안다. 하지만 원전사고에 대한 우려는 지나치게 과장됐다. 통계를 살펴보면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이 방사능 피폭으로 죽을 확률보다 훨씬 높다. 국내에서만 1년에 3천 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죽는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관련 사망자는 5년간 1368명(2017, 문 대통령 연설)이었다. 전 세계 500기 안팎의 원전이 가동 중이지만 인명피해로 이어진 사고는 두 번뿐이었다. 원전은 첨단 기술의 집약체이며, 과학자들은 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한다. 언론의 과도한 이슈몰이가 대중에게 필요 이상의 경각심을 심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광기에 가까운 공포가 모든 담론의 불씨를 짓밟아 끄고 있다. 시인 에머슨은 말했다. "공포는 무지로부터 나온다"라고. 찬성이든 반대든 우선 원전을 바로 알고 불필요한 감정을 버릴 때 비로소 합리적인 논의가 시작될 거라 믿는다.
대부분의 발전소는 전자기 유도 현상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한다. 발전기 내 선풍기처럼 생긴 터빈을 돌리는 게 발전의 핵심인데 이때 무슨 힘을 사용했냐에 따라 발전소의 종류가 달라진다. 바람의 힘을 이용하면 풍력발전이 되고, 물의 낙차를 이용하면 수력발전이 되는 식이다. 화력발전소는 석탄을 태워 물을 끓인 뒤 이때 발생한 수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원전은 화력발전소와 발전 방식이 유사하다. 다만 석탄을 태우는 대신 우라늄, 플루토늄이 핵분열할 때 나오는 열을 이용해 물을 끓인다는 차이점이 있다. 석탄을 쓰지 않는 원전은 이산화탄소 등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미세먼지도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방사성 폐기물'이다. 핵분열의 찌꺼기로 세슘, 스트론튬 등 인체에 치명적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나오는데, 아직 이들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기술이 없다. 각 원전은 따로 저장고를 만들어 이를 보관 중이며 아주 깊은 곳에 묻거나 우주에 던져버리는 방법이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원전도 다 같은 원전이 아니다. 냉각과 감속에 사용되는 재료와 원자로 내부 구조에 따라 원전은 다양하게 분류된다. 원전의 발전 과정을 순서대로 살펴보며 그 분류를 알아보자. 원자력 발전은 핵폭발을 잘 제어해 에너지를 뽑아내는 기술이다. 먼저 우라늄 원자에 중성자를 적절한 속도로 쏴 핵분열 반응을 일으킨다. 이때 중성자의 속도가 너무 빠르면 반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속도를 낮출 감속재가 필요하다. 감속재로는 흑연, 경수(H20), 중수(D20) 등이 사용된다. 핵분열이 일어나면 열에너지와 중성자가 나온다. 중성자는 다시 다른 우라늄 원자와 충돌해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열에너지는 물을 끓이는 데 사용된다. 물을 끓여 증기를 발생시키는 방식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비등경수로(BWR)는 냉각수를 직접 끓여 증기로 만드는 반면, 가압경수로(PWR)는 원자로와 분리된 증기발생기 속 냉각수를 끓여 증기를 만든다. 냉각수로는 경수(H20) 또는 중수(D20)를 사용한다. 붕소, 카드뮴 제어봉은 중성자를 흡수해 핵분열을 멈추는 역할을 한다.
이제 현대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두 차례의 원전 사고를 살펴보자. 동명의 드라마로 유명해진 체르노빌 원자로의 정식 명칭은 '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RBMK)'다. RBMK가 감속재로 사용한 흑연은 저렴한 대신 가연성이 높아 화재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원인은 복잡하지만, 고온의 흑연이 폭발하며 외벽을 날린 게 결정타가 됐다. 드라마 초반 한 소방관이 거무스름한 돌을 만진 뒤 피폭되는데 이 돌이 바로 노심에 박혀있던 흑연이다. 한편 후쿠시마 제1원전 속 원자로는 BWR로, 냉각수를 직접 증기로 만들어 터빈을 돌린다는 특징이 있다. BWR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냉각수를 펌프로 공급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펌프가 멈추면 냉각도 멈추기에 정전 등의 비상사태를 염두에 두고 철저히 대비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비상 디젤발전기를 지하에 두는 패기를 보였다. 대지진의 여파로 전기가 나가고, 이어 닥친 쓰나미로 지하의 비상 발전기가 바닷물에 잠겼다. 냉각 시스템이 멈추자 고온·고압의 원자로 내 수소가 대량으로 만들어졌고, 결국 수소 폭발이 일어나 건물 외벽이 파괴됐다.
한국엔 총 24기의 원전이 있다. 이중 월성 원전 1-4호기의 원자로는 가압중수로(PHWR)이며 나머지 원전은 모두 PWR이다. PHWR은 감속재와 냉각재로 중수를 쓴다는 점 말고는 PWR과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얼마나 안전한가. 우선 PWR은 물을 감속재로 사용하므로 RBMK처럼 크게 폭발할 염려가 없다. 후쿠시마 원전도 물을 감속재로 사용했기에 더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또한 PWR은 바닷물의 대류 작용을 이용해 냉각수를 순환시키기에 전력이 차단돼도 끄떡없다. 발전 과정에 쓰이는 물과 냉각수가 분리돼 있어 유사시 대처하기도 쉽고, 방사능 유출 가능성도 적다. 내진설계 수준도 높다. 국내 원전은 리히터 규모 6.5 지진을 버티도록 설계됐다. 2017년 포항 지진(리히터 규모 5.4)보다 30배 강한 지진이 일어나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기상청 공시 자료에 따르면 집계 이래 국내에서 발생한 가장 강력한 지진은 5년 전 경북 경주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이었다.
원전을 분류하고 안전성을 따져봤다. 물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만큼 원전의 안전성을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근거 없는 불안과 혐오는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됐다. 보다 성숙한 담론을 통해 더 합리적인 방안이 도출되길 기대해본다.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원전의 친환경성과 경제성을 강조하며 탈원전 정책을 비판한다. 하지만 이 둘은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노후 핵시설 폐쇄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고려하면 발전 단가는 그리 낮지 않다. 두 번의 원전 사고로 대기와 해양으로 방출된 방사성 물질이 아직도 곳곳에서 검출되는 걸 보면, 아주 친환경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간과되고 있는 건 탈원전이 인재(人災)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강행한 뒤로 KAIST 등 유수 대학 내 핵물리학 전공자가 대폭 줄었다는 뉴스를 봤다. 원전이 사양산업으로 낙인찍히며 전문가 및 전공자의 이탈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운용 중인 원전의 남은 수명과 통상적인 수명 연장 기간을 고려하면 앞으로 3-40년은 더 원전을 운용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전문가의 공백이 생길 확률이 높다. 드라마 '체르노빌' 중 위급한 상황에서 매뉴얼을 펼친 연구원을 기억하는가. 우리도 그러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맹목적인 정책 밀어붙이기를 멈추고 중장기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탈원전이 워낙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에 마지막 문단을 쓰는 순간에도 발행이 망설여졌다. 원전 마피아, 돈 받고 찬양 기사를 쓴 언론 등 친원전 진영의 추태를 많이 봐온 까닭에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일부 시민들의 독선과 아집이 우리의 삶을 쥐고 흔드는 모습을 손 놓고 바라볼 수도 없었다. 나는 한국 사회가 탈원전이라는 늪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발을 담그는 순간 바닥을 향해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늪. 발버둥을 쳐도 의미 없다. 논리로 감정에 맞서는 일은 에너지만 소모할 뿐이다. 흑백 진영 논리와 반지성이 모든 담론을 지배하게 된 절망적인 상황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건 늪에 돌을 던지는 일과 같다. 그것도 금방 가라앉을 테지만 쌓이고 쌓이면 딛을 바닥이 된다. 이 조잡한 글도 작은 돌멩이였으면 좋겠다. 자갈, 아니면 모래 알갱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