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무중력자

#1 윤고은 『무중력증후군』

by 현우주


윤고은 작가의 장편소설 『무중력증후군』은 달의 개수가 늘어난 비현실적인 세계 위에 우리 사회의 모습을 투영한 소설이다. '지독하게 정체된 사회에서, 더 이상 새로운 건 기대할 수 없는 사회에서 한순간 모두의 삶을 바꾸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다면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된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윤고은 작가는 달의 개수가 늘어난 상황을 바탕으로 상상을 전개한다. 주인공 '노시보'의 눈을 빌려 정치, 언론, 일상 등 사회의 여러 단면을 관찰하고, 그 변화 양상을 세밀하게 기록한다.


두 번째 달이 출현한 이후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진다. 종말론이 등장하고, 지구를 떠나 달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스스로를 '무중력자'라고 부르며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등의 기행을 저지른다. 또한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직장인들은 일터를 떠나고 주부들은 집을 떠난다. 달의 분열이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이들의 촉매가 된 것이다. 부동산 회사에서 땅을 파는 일을 하는 주인공 노시보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온다. 달을 구경하러 간다며 홀연 집을 떠난 엄마, 몰래 사법고시 대신 요리를 공부하는 형. 허황된 꿈을 꾸는 친구 구보와 특종에 목말라 별짓을 다하는 기자 송영주. 노시보는 평소와 다름없는 삶을 영위하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영향으로 그도 점점 광기 어린 사회에 동화되어 간다.




달이 번식한 후, 지구 곳곳에 두더지처럼 숨어 있었던 무중력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아니, 숨어 있었다는 표현보다는 적응하는 척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그들은 본심을 숨기고 지구에 동화돼왔으니까. 그들의 본심이란 물론 중력을 거부하는 것이다. (...) 그 수는 꽤 많았다.


중력과 무중력의 대비는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장치다. 보통 중력은 속박하고 옭아매는 현실을, 무중력은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 이상을 상징한다. 중력의 모습은 다양하다. 직장, 가정, 어떤 이에겐 삶 자체가 중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달의 증식과 무중력은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집과 일터를 떠난 또는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 무중력자들에게 달의 번식은 핑계일 뿐이었다. 그들의 본심은 그저 중력을 거부하는 것, 곧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무중력자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꾸역구역 버티면서 자신의 일상을 파괴해줄 어떤 이벤트를 기다리는 사람들. 뉴스를 보며 설레는 사람들, 자켓 한 편에 사직서를 장전해둔 채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 모두 잠재적 무중력자들이다. 이들은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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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멈추지 않았다. 달이 과잉된 미래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발끝에 툭툭 차이는 달, 쓰레기봉투 속에 꾸역꾸역 묶여진 달, 꼬깃꼬깃 구겨진 달,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달. 난무하는 달의 이미지 속에서 나는 종종 달이 하나뿐이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달이 하나뿐이던 시절에는 모든 지구인들이 하나의 달을 바라봤을 텐데. 지금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달이 다르며, 동쪽과 서쪽의 달이 다르고, 위층과 아래층의 달이 달랐다.


달이 이상을 상장한다면 달이 과잉된 미래는 왜 아름답지 않았을까. 왜 주인공은 달이 하나뿐이던 시절을 그리워했을까. 이 세상에는 안정된 사회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있고, 변화무쌍한 사회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 달이 하나뿐이던 시절은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던, 즉 상식의 시대였다. 나와 옆 사람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우리는 대부분 같은 달을 바라봤다. 하지만 패러다임이 변했다. 이제는 각자 옳다고 믿는 이상이 다르다. 발에 툭툭 채일 정도로 많아진 달. 우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옆 사람의 소매를 붙잡아 자신의 달을 가리키려 든다. 주인공은 달이 과잉된 미래에서 달이 하나뿐이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러면서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한다. '숨을 잘 쉬지 못하고, 목덜미가 뻐근하고, 턱관절이 이상해지고, 위가 쓰리기도 하는...' 작중 묘사된 '무중력 증후군'의 증상이다. 우리 주변에도 무중력 증후군 환자가 많은 건 달이 과잉됐기 때문일까.




눈을 꾹 감았다 다시 떠도 마찬가지였다. 폴라로이드에서 갓 뽑아낸 사진처럼 허공에 대고 몇 번을 흔들어도 똑같았다. 내 가슴속에는 하얀 원형의 이미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던 것이다. 누가 의심할 것도 없이 그것은 달이었다.


윤고은 작가의 『무중력증후군』을 읽다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들었다. 달이 늘어난 세상과 판데믹이 휩쓸고 지나간 세상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은 까닭이었다. 달의 분열 대신 바이러스를 대입하니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단한 보고서로 봐도 무방했다. 허황된 꿈을 좇는 젊은이들,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언론과 혼란을 틈 타 한몫 챙기려는 사람들. 2008년 세상에 나온 작품인데도 그 안에 담긴 통찰은 날카로웠다. 소설의 결말에서 달의 분열은 없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아쉽게도 바이러스는 그렇지 않다. 이 소설 같은 현실의 다음 장은 우리가 써내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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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경제부 직업 기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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