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되고 싶진 않아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까짓거

by 현우주


작년 4월,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졸업을 할 순 없다는 생각에 학보사에 지원했다. 동아리에 지원하자니 나이가 너무 많았고, 소모임을 꾸리자니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고민을 하다 학보사 모집 공고를 봤고, 망설임 없이 지원해 합격했다. 처음엔 2년 동안 조용히 글만 쓸 심산이었다. 친구를 사귀고픈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이미 동아리 활동을 해본 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건 내 능력 밖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사히 활동을 마치고, 자소서에 적을 문장 몇 줄만 건질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른다고. 그만 편집국장이 되고 말았다.


이왕 된 거 당당하게 선출됐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 기수의 인원 구성을 살펴보면 일곱 명 중 나만 남자다. 나이도 스물여섯인 내가 압도적으로 많다. 막내 기자와 여섯 살 차이고, 이전 편집국장보다도 두 살이 더 많다. 이공계열도 나와 다른 한 기자가 유일하다. (성비를 알게 된 뒤 무척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면접과 필기시험을 나름 잘 봤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남성할당제의 수혜를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차기 편집국장으로 선출된 건 이런 인원 구성의 영향이 컸다. '이런 자리는 남자가 맡아야 한다'는 무의식의 발로였는지는 모르나, 처음 편집국장이 되고 싶다던 동기들은 하나둘 야망을 내려놨다. 막판엔 자신이 그 자리를 맡으면 안 되는 이유를 누가 더 설득력 있게 말하냐의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나마저 내빼는 건 보기 좋은 그림이 아니었다. 마지막에는 힘을 빼고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결과적으로 모집하는 순간부터 차기 편집국장이 될 만한 재목으로 따로 뽑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직도 잘 납득되지 않는다. 일 년 동안 많은 실수를 했다. 내게 무슨 기대를 했을지는 모르나, 나잇값을 못해도 한참 못했다. 술 먹고 말실수를 한 적도 있고, 글을 멋있게 쓰려고 욕심을 내다 혼쭐이 난 적도 있다. 자신감 없는 언행으로 주변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아무리 봐도 리더가 되기엔 한참 모자란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편집국장이 됐다. 리더 아닌 리더로. 넉 달 뒤면 정식으로 부임하게 되는데, 집행일을 앞둔 사형수처럼 초조하기만 하다.


도망치고 싶다. 늘 그래 왔듯이. 대학은 어차피 다시 안 보면 그만인 사람들과 피상적인 관계를 맺는 곳이었기에 애써 실수를 만회하기보다는 도망치는 쪽이 편했다. 장문의 글을 남기고 단체 카톡방을 나오는 일, 같은 과 동기들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길을 빙 돌아가는 일. 내게는 그런 일들이 더 익숙했다. 하지만 학보사는 동아리가 아닌 학교로부터 돈을 받는 부속기관이어서, 마음대로 나갈 수 없었다. 나가는 순간 모든 활동 내역이 사라져 그간의 노력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전 편집국장을 불러내 술을 마시며 고민을 털어놨다. 나는 이런 걸 할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다고. 잠잠히 푸념을 듣던 그는 곧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역시 처음엔 주변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대신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 방학 동안 매일 도서관에 다니며 공부했다. 아는 만큼 자신감이 생겼고, 돌아보니 준비한 만큼 결실을 얻게 됐다고. 그의 요지는 단순했다. 준비하지 않으면 잘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못난 성격만 탓하며 이 당연한 이치를 잊고 있었다. 도망만 다니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엔 정면돌파다. 방학 동안 열심히 준비해보기로 했다. 도전해보기로 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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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경제부 직업 기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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