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만 되면 공부가 안 되는 이유
이번 학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 주 월요일이면 마지막 시험이 끝난다. 그러고 나면 방학이고, 새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공부에 매진해야 할 때다. 그런데 여유롭게 글이나 쓰고 앉아 있다. 밀린 강의도 아직 다 듣지 못했고 복습해야 할 양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공부가 손에 잡히질 않는다. 항상 이런 식이다. 평소엔 잘하다가도 시험기간만 되면 갑자기 모든 의욕이 사라진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려고 아등바등하는 학생들을 보며 위기의식을 느끼면서도 결국엔 될 대로 되라고 포기해버린다. 천성이 게으른 것도 맞지만, 그 이면에 깔린 심리가 궁금하다. 노력을 해도 역부족이라는 걸 알게 될까봐? 피 말리는 경쟁이 싫어서?
인생이 힘들어도 다들 꾸역꾸역 버텨내는 건 언젠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점수로 표현되지 않는 실력이 있다는 믿음, 숨겨진 재능이 있다는 믿음, 노력만 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는 믿음 등등. 만약 이런 믿음이 없었다면 내일을 바라보며 살기란 더 팍팍했을 것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거나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도 실패한 순간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한 번 '벽'을 느끼고 나면 더는 시간을 바쳐 무언가를 해보기가 두려워진다. 잠재력이 있다는 믿음으로 위안을 삼으며 냄비 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도태되어가는 것이다.
매번 시험기간만 되면 공부를 놔버리는 것도 비슷한 심리이지 않을까 싶다. 밤을 새워 공부를 했는데 마지막에 B학점이 찍힌다면 정말 허탈할 것 같다. 그럴 바엔 현재를 즐기고 C를 맞고 말지. 어리석은 마음가짐인 건 알지만 학점에 미련이 별로 없다. 엥? 그렇다면 원인은 바닥이 드러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그냥 학점에 신경을 안 쓰기 때문 아닌가. 취업을 해야 되는데 학점은 왜 놓은 건가. 이것도 앞서 말한 실력에 대한 믿음에 기인한다. 현직자들은 학점 대신 실력을 쌓고, 다양한 활동을 하라고 입을 모아 조언한다. 나는 남들과 피 말리는 경쟁을 하지 않고도, 다른 부분에서 구별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럼 다른 부분에서 남들과 구별될 만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어느 한쪽을 정하면 올인을 해야 하는데 양쪽에 발을 담그고 각을 재고 있다. 둘 다 동시에 챙길 순 없는가. 너무 늦었다. 나이도 나이지만, 전공과 무관한 진로를 정한 이상 둘 중 하나는 포기하다시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최소한은 지켜야 하므로 시험기간에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다만 이런 복잡한 감정들이 무의식 속에서 얽히고설켜 내 몸뚱이를 이렇게 조종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었으면 한다. 누가? 곧 성적표를 받아들 우리 엄마가. (하필 우리 대학은 자녀의 성적표를 부모에게 문자로 발송한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이 있다. 시험공부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온갖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결국은 도망치겠다는 말 같아 뒷맛이 쓰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거창한 다짐보다 당장 내일 있을 시험부터 잘 준비하면 좋을 것 같다. 벼락치기여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시험기간마다 찾아오는 무기력증의 원인을 알아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시작은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