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해도 덤덤하게 현실을 살아낼 수 있도록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모르니... 임재범 <비상>
어릴 때 위인전을 즐겨 읽었다. 나이팅게일, 에디슨, 김유신, 강감찬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위인들의 이야기를 지루한줄 모르고 읽었다. (내 또래라면 한 번쯤은 봤을,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반반 나뉘어있는 그 시리즈가 맞다) 다양한 신과 영웅이 등장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삼국지도 겉표지가 해질 정도로 여러 번 봤다. 유독 영웅들의 서사를 좋아한 이유는 상상하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그 상황에 그 사람 대신 나를 대입해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만약 주인공이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쉬운 대목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그가 놓친 사랑과 인정을 독차지했다. 시간이 지나자 책도 필요 없어졌다. 고난을 딛고 마침내 남들의 인정을 받는 식의 서사는 다 거기서 거기였다. 설정만 바꿔주면 몇 번이고 이야기를 곱씹을 수 있었다.
머리로 써낸 수많은 이야기 중 나를 가장 오래 사로잡은 건 마법사 이야기였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망신을 당한 날이면 잠들기 전 마법으로 그들을 응징하며 즐거워했다. 당시엔 '마법천자문'이 유행할 때라 유치한 마법으로 혼내줘야 했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멋지게 구해 시민들의 박수를 받는, 그런 마블틱한 서사도 메인 플롯 중 하나였다. 상상 속의 내 외모는 탑블레이드의 '레이'라는 캐릭터에서 따왔다. 애니메이션에 나온 모습보다 피부는 하얗고 눈동자는 노랗다. (상상할 때 제일 어려웠던 건 2D를 3D로 구현해내는 일이었다. 찰랑이는 머리를 가진 레이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공을 들여 이야기를 완성했고, 완성된 이야기를 무척 아꼈다. 얼마나 마법사의 이야기를 좋아했는지, 군대 훈련소에서도 이걸 끄집어냈다. 나이 스물셋에 말이다.
어른이 되어 현실과 부딪히다 보면 머릿속의 세계도 무너질 줄 알았다. 하지만 설정만 바뀔 뿐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설계된 서사의 기본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마법사라는 설정은 억만장자 또는 천재라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마법을 부릴 수 있었다면'이라는 전제는 '돈이 엄청 많았다면' 혹은 '키 크고 어깨 넓은 훈남이었다면'이라는 전제로 변해갔다. 누군가에게 무시를 당한 날이면 잠들기 전 온갖 '만약'들을 버무려 상처 난 자존감 위에 발랐다. 어느새 허구의 세계 속 나를 대입하던 어린 시절의 즐거움은 현실의 세계 속 허구의 나를 대입하며 찾는 값싼 위로로 전락했다. 상상은 자폐적인 망상이 돼버렸고 머릿속에 세운 왕국은 철옹성처럼 견고해졌다. 임재범의 가사처럼, 되돌아나오는 길을 잊은 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현실에서 대인관계에 번번이 실패하는 건, 언제든 나만의 왕국으로 도망가 자존감을 충전할 수 있다는 안일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왕국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낸 나머지, 초라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살아내는 법을 아예 잊은 건지도 모른다. 상상과 현실의 괴리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이제는 내 머릿속 왕국을 부숴야 할 때가 왔다. 프로이트가 소개한 '초자아'는 자기를 관찰하고 평가하며 이상과 비교하는 또 다른 자아를 일컫는다. 왕국에서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내 초자아는 이제 완벽한 타자가 되어,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다. 초라한 놈이라고, 한심한 놈이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남들 앞에서 말을 자연스럽게 못하는 것도 모두 그의 검열을 거치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라 생각했지만 지금껏 오직 한 사람의 눈치만 봐온 건지도 모르겠다. 왕국을 부수자, 왕을 죽이자. 초라해도 덤덤하게 현실을 살아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