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이상하게 보진 말아요
내 방 창틀에는 못 자국이 하나 있다. 어릴 적 그곳에는 녹슨 못이 박혀있었고, 그로 인해 창문은 한 뼘밖에 열리지 않았다. 그 못은 아빠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박은 못이었다. 나는 어릴 적 강박증을 심하게 앓았고, 괴상한 행동을 많이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밤마다 창문을 열고 12층 아래 바닥을 쳐다보는 일도 그중 하나였다. 떨어질까봐 무서워 심장이 요동치는데도 상반신을 쑥 내밀고 아래를 보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온 몸이 간지럽고, 숨이 막힌 듯 답답했다. 그런 고충을 안 아빠가 창틀 바깥쪽에 못을 박은 것이었다. 그 외에도 괴상한 강박이 많았는데 대부분은 나이가 들며 사라졌다. 하지만 그중 '글자 강박증'은 아직도 남아있다. 글자 강박증은 한마디로 글자가 예쁘지 않은 걸 참지 못하는 강박 증세다.
엄밀하게 따지면 글과 관련된 강박증은 글씨 강박증과 글자 강박증으로 나뉜다. 글자 강박증도 글자와 단어, 문단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이것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경험했다. 먼저 글씨 강박증은 손글씨와 관련된 증상으로, 고3 때 특히 심하게 앓았다. 글자의 굵기와 모양이 일정한지, 문장의 수평이 맞는지 등을 집요하게 따졌다. 당시 문제집을 펼쳐보면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페이지의 절반이 수정테이프로 덮여있기도 했고 아예 페이지가 뜯긴 경우도 있었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고3에게 글씨 강박증은 치명적인 문제였다. 공부하는 시간보다 글씨를 고치는 시간이 많아져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노트 대신 이면지에 문제를 풀었고, 다 풀면 바로 버렸다. 어차피 버릴 종이니, 글씨를 신경 쓰지 말라는 일종의 자기주문이었다. 다행히 효과 만점이었다.
대학에 와서는 손으로 직접 쓸 일이 많이 없었다. 한글 파일에, 정해진 폰트로 글을 쓰니 강박이 들어설 여지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오히려 글자를 원하는 대로 고치지 못하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쓰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 쓰지 않는 '못생긴 글자'를 나열하면 이렇다. '게, 깨, 것, 그, 크, 저, 제, 최' 등등. 폰트에 따라 못생긴 글자 목록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브런치에서 '그, 크, 최'는 봐줄 만하다. 나머지는 어떻게든(단어 중간에 들어간 경우엔 괜찮다) 바꾸는데 정 대체할 말이 없을 땐 그냥 쓴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문장 맨 앞에 쓰면 안 되는 글자도 있다. 아래는 윗 문단을 캡처한 사진이다.
문장의 첫 글자를 보면, 모두 '뚱뚱한 글자'로 구성돼 있다. '시, 기, 지' 같이 어딘가 비어 보이고 곡선이 들어간 글자는 문장의 시작에 두지 않는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을 땐 그냥 두지만 볼 때마다 괴롭다. 더군다나 브런치는 글을 발행할 때 글자 배열이 달라져 이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버린다. 모바일로 봐도 말짱 도루묵이다. 매번 이 모든 걸 다 신경 쓸 순 없으므로, 타협을 했다. 발행한 이후엔 그대로 두고 참자고. 마지막으로 나는 문단의 두께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 글도 보면 위에서부터 7줄, 7줄, 6줄로 구성돼 있다. 도입이나 결론을 제외하면 한 문단은 최소 4줄 이상이 돼야 하며 문단 간 두께가 비슷해야 한다. 그래야 전반적으로 글의 모양이 예쁘다. 나는 이런 과정을 거쳐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
글자 강박증을 단점으로만 여겨왔다. 참아보자니 괴롭고, 일일이 고치자니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글자 강박증의 장점을 체감했다. 강박증이 없었다면 그냥 내버려 두었을 단어를 이리저리 바꿔보면서 표현력이 풍부해진 것이다. 문단의 두께를 맞추기 위해 문장을 늘리거나 줄이는 과정을 통해 (한 문단 안에서) 문장의 리듬이 어떻게 형성돼야 하는지도 배워가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강박증을 없애려고 버둥대지 말고 더 멋진 작가로 거듭나기 위한 자양분으로 삼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