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친구들에게
내가 이 친구들을 처음 만난 건 중학교 1학년 때였으니, 벌써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년이면 우린 인생의 절반을 알고 지낸 사이가 된다. 징그럽게도 오래 알고 지낸 사이지만 여전히 만남이 설레고 대화가 질리지 않는다. 아마도 각자 인생의 단계를 밟아나갈 때 매번 새로운 고민과 이야기들이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들어 우린 사회라는 정글에 던져진 탐험대와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다른 방향으로 각자의 영역을 개척하다 한자리에 모여 경과를 보고하는 탐험 대원들. 멘토가 부재한 사회 속 세상을 이해해나가는, 요즘 젊은이들만의 생존 방식이다.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우리의 대화는 오로지 연애에 집중돼 있었다. 누구를 어디서 만나 사귀게 됐다는 둥,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둥, 어떻게 차였냐는 둥. 영웅담처럼 러브 스토리를 풀어내는 친구들을 부러워했고, 비슷한 처지의 패잔병들을 보며 위안 삼았다. 연애를 하지 않으면 곧잘 대화에 낄 수 없었기에 다들 기를 쓰고 연애를 하는 듯했다. 나는 워낙 뚱뚱했던 시절이라 늘 놀림받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지만, 모인 친구들에게 즐거움과 상대적 우월감을 동시에 안겨주었기 때문에 매 모임마다 빠지지 않고 불려 나가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반수를 마치자 친구들은 군대를 다녀온 자들과 군대를 가야 할 자들로 양분돼 있었다. 모일 때마다 전역한 이들은 왜 군대를 일찍 가야 하는지, 군대를 다녀오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 설교를 늘어놓았고, 입대를 앞둔 이들은 애써 쓴웃음을 지으며 다음 잔을 들이켜야 했다. 군대 얘기는 으레 그렇듯 누가 더 힘들었냐의 싸움으로 치닫았다. 하지만 늘 승자는 정해져 있었다. 월급이 한 달 담뱃값도 안 되던 시절에 복무한 친구들의 가슴은 열기구처럼 부풀어올랐다. 모두가 전역한 뒤로는 군대 얘기를 잘 안 하게 된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다.
이십 대 후반으로 접어든 요즘엔 온통 취업에 대한 얘기뿐이다. 어디 붙었다는 기쁜 소식도 가끔 들려오지만 대부분은 앓는 소리다. 불확실한 시간을 견디기 힘들다, 떨어질 때마다 자존감이 낮아진다, 붙어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등등. 그들을 보며 코로나19가 몰고 온 취업 한파를 새삼 실감하는 중이다. 안타깝지만 먼발치에서 취준을 바라보는 나로서는 변변한 위로조차 건넬 수 없다. 어서 긴 겨울이 지나고 모두 무사히 취준을 마치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아직 졸업도 못한 내 앞가림부터 잘해야겠지만.
'야~ 우리 많이 컸다'
친구들이 면접을 위해 정장을 빼입은 모습이나 운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코찔찔이 시절부터 서로를 봐왔기에 어엿한 어른이 돼가는 모습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이십 대는 연애, 군대, 취업에 대한 이야기로 점철됐지만 몇 년만 더 지나면 결혼, 자녀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또 한 번 훌쩍 자라 버린 서로를 보며 놀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도 어른이 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