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형 글쟁이들의 고민
브런치 심사를 한 번에 통과했다. 당시 '작가님이 궁금해요' 란에 이렇게 적었다. "학보사에서 기자로, 뉴스레터 스타트업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기사를 쓰고 아티클을 다듬는 일만 하다 보니 정작 내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가 없었다. 아직 실력은 부족하지만, 이곳에서 당당하게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라고. 대충 에세이를 쓰겠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된 후 어연 스무 편이 넘는 글을 발행했다. 하지만 가끔씩 예전에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이게 일기인지 에세이인지, 칼럼인지 분간되지 않을 때가 많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글인지, 무언가를 주장하려는 글인지 스스로도 구분 짓지 않은 것이다.
이제 막 글을 배워가는 일개 대학생이지만, 나름대로 글의 분류를 정의해보면 이렇다. 우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글이 있다. 일기와 에세이(수필)가 여기에 속한다. 차이가 있다면 일기엔 느낌이 가득하다. 무엇이 좋다, 힘들다, 재밌다 등등. 반면 에세이는 경험을 그대로 보여주고 독자로 하여금 그걸 알아서 느끼도록 한다. 수필이 문학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여백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은 무언가를 주장하는 글이 있다. 칼럼(논설문)이다. 주장에 대한 근거가 탄탄하고, 결론이 뚜렷하며, 문단 간의 논리적 이음새가 매끄러운 글. 누구나 한 번쯤은 멋드러진 칼럼 한 편 써내는 걸 꿈꿀 정도로 잘 쓰면 뭔가 달라 보이는 글이다.
장르를 넘나드는 글을 쓰게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첫 번째 이유는 가진 걸 모두 보여주려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다. 에세이를 쓰다 보면 왠지 교훈을 담고 싶어지고, 칼럼을 쓰다 보면 왠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분별없이 이것저것 넣다 보니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짬뽕탕이 되고 마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글의 개요를 짜지 않기 때문이다. 도입과 본론, 결론은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당연히 글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편 에세이가 일기가 되는 건 게으름 때문이다. 오감이 살도록 구체적으로 상황을 묘사해내는 건 굉장히 어렵고 지난한 일이다. 친구와 무엇을 하며 놀았다고 설명하는 대신 '재밌었다' 한마디로 퉁치면 편하다. 쉽게 쓰려다 보니 일기가 되는 것이다.
문제점은 이러한데, 그렇다면 이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나를 파악하는 일이 먼저다. '대통령의 글쓰기'로 일약 스타가 된 강원국 씨는 글 쓰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영감형은 곰곰이 생각하다 툭 써낸다. 글을 쉽게 쓰는 편이다. 즐기기까지 한다. 그러나 편차가 심하다. 어떤 글은 잘 쓴다. 아이디어도 좋고 기발하다. 하지만 어떤 글은 아예 못 쓰겠다고 포기한다. 잘 쓰기 아니면 못 쓰기다. 허점도 자주 노출한다. 결정적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다. 관찰과 사색을 글쓰기 무기로 쓴다. 그에 반해 편집형은 자료에 많이 의지한다. 진땀을 빼며 쓴다. 부지런하다. 어떤 경우에도 써낸다. 쥐어짜내 써낸다. 그러나 자칫하면 짜집기가 될 수 있다. 글 쓰는 시간을 넉넉하게 줘야 가능하다. 평균 이상은 해내지만, 뛰어난 것은 기대할 수 없다. 글쓰기 무기로 모방과 독서를 활용한다. -강원국 <강원국의 글쓰기> 中
그의 분류에 따르면 나는 영감형에 가깝다. 이렇게 매일 글쓰기를 해낼 수 있는 이유도 한 번 영감이 찾아오면 별 무리 없이 글을 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감형의 장점은 뚜렷하다. 툭 써내는 편이기에 평균적으로 편집형보다 글의 양이 많다. 쌓여가는 글을 보며 재미 붙이기도 쉽고 그만큼 습관을 들이기도 편하다. 하지만 단점은 강원국 씨도 말한 바, 편차가 심하다. 이 글도, 열에 아홉은 부끄러운 글이 나와 든 좌절감에서 비롯된 글이다. 업로드를 한 뒤 퇴고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 쓴 글을 모조리 뜯어고치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편집형의 방식을 일부 차용하기로 했다. 간단하게라도 메모장에 글의 개요를 짠 뒤 살을 툭툭 붙여나가기로. 더불어 욕심을 내려놓고, 열심히 쓰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공들여 쓴 글이 한낱 일기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글의 개요를 짠다고 모든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어떤 해답을 내기 전에 중요한 건, 역시나 꾸준히 쓰는 일이다. 만약 브런치에 쌓은 글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글의 양이 늘면 그에 맞는 고민이 시작되는 것 같다. 마치 게임에서 레벨에 따라 다른 퀘스트를 받는 것처럼 말이다. 글감이 떨어져 가는 매일 글쓰기 9일차, 새로운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그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