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각자만의 때가 있어요, 그러니 여유를 가져요
UFC 하이라이트나 몰아보며 새해를 맞으려 했다. 만족스럽지 않은 해를 굳이 기념할 필요는 없었다. 내년에는 바이러스가 물러가고, 나라는 사람도 달라지길 막연하게 바랄 뿐이었다. 저녁 9시가 되자 마루에선 송구영신 예배가 시작됐다. 마루와 꼭 붙은 내 방에도 감사와 경외의 노래가 흘러들었다. TV 음량은 윗집에서 들릴 정도로 컸다. '이제 예배가 시작됐으니 어서 나와서 앉거라'라는 부모님의 전언이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은가누의 피니시 스페셜'을 이어봤다. 영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빠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아들 아까 예배드리기로 했지? 빨리 나와서 앉아"
대놓고 거절하기는 싫어 '알아서 나가겠다'라고 말한 것이었지만 아빠는 진의를 파악하는데 서툴렀다. 그래서 이번에는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예배를 안 드리겠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빠의 표정이 굳어졌다. 방금 내 입에서 나온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미간 사이엔 짜증이 묻어있었다. 잔소리가 시작됐다. 예배를 안 드리는 게 말이 되냐고, 누워만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냐고. 언성이 더 높아지려는 찰나, 엄마가 아빠를 말렸다. 그렇게 스물일곱 살이 되기 3시간 전, 예배를 안 드린다고 혼났다.
부모님은 두 분 다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매주 일요일, 수요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건 물론 교회에서 여러 직책도 맡고 있다. 물론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선 굉장히 긍정적이다. 두 분이서 지금껏 큰 문제없이 화목하게 지내는 건 분명 종교의 영향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십 대 후반에 접어든 아들에게 화를 내면서까지 예배를 강권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 믿음의 유산은 그런 식으로 전해질 수 없는데 말이다. 나는 인생과 마찬가지로 신앙도 각자만의 때가 있고, 시계를 돌리는 건 잔소리가 아닌 시행착오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한때는 매일 새벽기도를 가고, 3일간 금식을 할 정도로 신실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세뇌를 하듯 주입돼 온 믿음에 대해 반감이 들기 시작했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정말 그렇게 믿어서인지, 지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방황'이 모든 신앙인들이 거치는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이며, 특히 모태신앙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믿는다. 누구나 길을 벗어나며, 다만 얼마나 멀리 돌아가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엄마는 누누이 말했다.
"믿음은 나선형으로 자란대. 때로는 초신자처럼 불타오르고, 때로는 무신론자처럼 돌아서고. 이 과정이 매번 반복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러면서 위로 성장하게 된대. 돌아보면 그렇대"
방황도 신앙이 성장하는 과정의 일부라면 조급할 필요는 전혀 없다. 따지고 보면 차지도 덥지도 않은 모태신앙의 신앙생활이 더 문제다.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로 죄책감을 달래고 나머지를 무신론자처럼 살 바엔 차라리 잠시 떠나는 것이 낫다. 누가복음의 탕자도 오랜 방황의 시간을 거쳤기에 맨발로 달려 나온 아버지의 마음을 더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다 각자만의 때가 있는 법이다. 그걸 앞당기는 건 우리의 역할이 아니다. 예배를 안 드린다고 얼굴 붉히는 건 조급한 마음에서 비롯된 욕심이다.
보신각 종소리 없이 새해가 밝았다. 평소라면 옹기종기 모여 '해피 뉴 이어'를 외쳤을 테지만 올해는 엄마만 마루로 나와 무안한 인사를 건네고 돌아갔다. 나는 꼭두새벽까지 UFC를 보다 잠들었다. 다음날 엄마는 만둣국을 먹으라고 나를 부르고는 아빠한테 사과하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뭘 잘못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예배를 드리지 않아서? 그건 아빠가 아니라 직접 하나님한테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자식에게 좋은 걸 물려주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이 쌓여야 얻게 되는 지혜가 있고, 잔소리를 해도 건너뛸 수 없는 시행착오가 있다. 모든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언젠간 내게도 스스로 깨우치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