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의 끝없는 구분짓기
일부러 관심 없는 척했다. 괜히 초대장을 달라했다 무안해질 바엔 처음부터 무관심한 척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몇 달 전 열댓 명 친구들 중 두 명이 클럽하우스라는 오디오 기반 SNS에 진입했다. 이들은 평소에도 '얼리어답터'로 트렌드에 민감한 친구들이었다. 이들에게 주어진 초대권은 총 4장. 둘 다 여자친구에게 1장을 줄 테니 남은 건 2장이었다. 승산이 없었다. 나보다 중요한 사람은 많았고, 대기열은 길었다. 하지만 다행히 며칠 뒤 나는 한 장의 초대권을 손에 쥐게 됐다. 클럽하우스 본사에서 폐쇄성 문제를 해소하고자, 이용자에게 초대장을 추가로 지급한 덕이었다. 한 친구가 5장의 초대권을 받았고, 나는 다행히 예비번호 5번 안에 들었다.
당장 그날은 즐겁게 클럽하우스를 이용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어쩌다운 좋게 발언 기회를 얻어 자기소개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진행자의 진행이 조금만 어설퍼도, 발언이 조금만 길어져도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이 몰려들었다. 영혼 없이 방을 전전하다가 앱을 종료했다. 이후로 심심할 때 한두 번 정도 더 둘러보긴 했지만, 이전보다 더 큰 실망감을 안고 빠져나와야 했다. 토크온, 디스코드, 그룹 보이스톡 등등. 전에도 오디오 기반의 플랫폼은 많았다. 클럽하우스만의 메리트라고 할 만한 건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는, 폐쇄성을 바탕으로한 희소성이 전부였다. 문득 허니버터칩이 떠올랐다.
허니버터칩 대란이 일어난 2014년 말, 나는 마침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고 있었다. 늦은 밤 혹은 이른 아침 아버지로 보이는 이들이 피곤한 몰골로 재고를 묻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왜들 이렇게 난리일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과자를 진열하다 하나를 뜯어먹었다. 그다지 맛있지 않았다. 희귀하기 때문에 원하는구나. 그 뿐이었다.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남들과는 구분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기에 다들 이렇게 목을 맨 것이었다. 대란이 끝난 뒤 허니버터칩을 본 기억은 손에 꼽는다. 클럽하우스와 허니버터칩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희귀한 무언가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그 이면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구분짓기'가 있었다.
평등을 바라는 우리의 시선은 아래를 향해 있지 않다. 보통 우리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동등한 대우를 요구한다. 하지만 자신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자신과 동등해지는 건 바라지 않는다. 혹자는 이기적이라고 욕할지 모르나 어쩌면 수직서열화된 사회에서 당연한 바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래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구분지으며 자리를 고수하려 든다. 현대인의 피로는 대부분 제 위치를 보전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러한 피로는 남들과 구별되는 경험, 즉 평범함으로부터의 일탈을 통해 잠시나마 해소될 수 있다. 클럽하우스와 허니버터칩은 그 경험을 제공했다.
내세에 대한 믿음이 있든 없든 짧게 살다가는 현세에서 우리는 평범함을 참을 수 없다. 타인을 통해서, 어떤 물건이나 경험을 통해서 남들과 구별되고자 한다. 자연스러운 욕구인만큼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순 없다. 다만 별다른 노력 없이 주어지는 특별함에 취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열풍과 함께 금방 시들어버리고 마는 감정은 더 충동적인 소비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불과 석 달 전 돈을 주고 초대장을 살 정도로 큰 인기를 끌던 클럽하우스가 망해간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희소성이 떨어지자 순식간에 또다른 먹잇감을 찾아 나선 또래의 모습이 요즘따라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