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한한령 해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중 콘텐츠 산업 현장에서 10년 이상 일하며 관찰해온 시각에서 한한령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2. 먼저 한한령의 특이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6년 사드(THAAD) 배치 이후 시작된 한한령은 어떤 명문화된 법령이나 규정이 아닙니다. 중국 정부가 한국 콘텐츠에 대한 심의를 실질적으로 중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했죠. 마치 문이 열려있지만 들어갈 수 없는 상황처럼, 법적 근거 없이 실질적인 제재가 이루어진 겁니다.
3.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한한령이 모든 콘텐츠에 동일한 강도로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중국 정부의 콘텐츠 규제는 크게 세 가지 층위로 나뉩니다:
1) 순수예술/문학 영역: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별 다른 제재 없이 진행, 청소년 영향력이나 대중문화와 구분되는 영역
2) 영화/드라마/게임: 심의를 통한 선별적 규제, 자국 산업 육성과 균형을 이루는 영역, 특히 영화/드라마는 영향력 통제가 주요 목적
3) K-pop (특히 아이돌): 가장 강력한 규제 대상, 청소년 문화 영향력에 대한 근본적 거부감, 자국 내 육성 의지도 낮은 영역
4. 이러한 차등적 규제는 흥미로운 사례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게임 산업의 경우, 한한령 기간 동안 판호 발급이 중단되었다고 알려졌지만, 같은 시기 중국 자국 게임들도 판호 발급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한국 게임들의 중국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죠. 이는 한한령이라는 프레임으로만 현상을 바라보면 놓치는 부분입니다.
5.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한한령을 둘러싼 인식의 왜곡입니다. 일부 기업들은 한한령을 자신들의 중국 시장 실패에 대한 일종의 알리바이로 활용했습니다. 특히 국내 언론과 일부 기업들의 프레이밍은 한한령을 마치 중국 시장 전반을 봉쇄한 전방위적 제재처럼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산업별로 그 강도가 매우 달랐고, 일부 영역에서는 규제 자체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러한 과장된 프레이밍은 오히려 기업들의 중국 시장 진출에 대한 불필요한 위축을 가져오기도 했죠.
6.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진정한 한한령 해제의 리트머스 시험지는 아이돌 콘서트가 될 것입니다. 이는 직접적인 정부 승인이 필요한 영역이자, 청소년 문화에 대한 정책적 태도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K-pop은 가장 강력한 대중문화 파급효과와 함께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기에, 이 분야의 개방은 한중 문화 교류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7. 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한-중 5000년 역사에서 역설적이게도 중국이 한국을 가장 두려워했던 시기가 바로 한한령 직전인 2010년대가 아니었을까싶습니다. 중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한국 문화에 열광하고, 한국의 소비재가 중국 시장을 휩쓸며, 중국인들의 한국 방문이 끊이지 않던 그 시기는 어쩌면 한국이 문화적으로 중국을 가장 강하게 압도했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결과적으로 한한령이라는 강력한 제동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죠.
8. 향후 중국은 '선별적 개방'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영향력이 큰 아이돌 문화는 여전히 경계하면서도, 산업적 가치가 있는 영역은 단계적으로 개방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이러한 중국의 문화정책 기조를 이해하고, 각 영역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9. 물론 2010년대와 같은 일방적인 문화적 영향력의 시대가 다시 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는 보다 정교하고 균형 잡힌 한중 문화 교류의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이는 단순한 콘텐츠 수출입의 재개가 아닌,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관계 설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한한령은 단순한 외교적 보복 조치가 아닌, 중국의 문화정책과 산업정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앞으로의 한중 문화 교류는 과거의 찬란했던 순간을 되새기되, 보다 지속가능하고 호혜적인 관계를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양국의 문화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진정한 길이 될 것입니다.